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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May 14. 2019

힘줄 때 주고 뺄 때 빼고

미래를 만드는 일상

여고시절 내 별명은 ‘에로’였다. 성인만화 <누들누드>의 여주인공과 닮았다며 새 학기 첫날 붙임성 좋은 한 친구가 붙여줬다. 여학생만 우르르 모인 데다 단어 자체가 자극적이기도 해서 일주일채 안가 나는 전교에서 유명한 아이가 되었다. 그러고 졸업할 때까지 나는 ‘에로’라 불렸다. 뿐인가. 우리 학교에는 얼굴에 오소소 여드름이 돋아난 ‘오이’도 있었고, 똑같은 교복도 남달리 소화하는 ‘모델’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명랑한 작명 센스다.     


더 과거엔 ‘막대기’였다. 중학교 무용 선생님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뻣뻣한 내 몸을 두고 꼬장꼬장한 50대 여선생은 ‘교직 생활 20년 동안 너 같은 막대기는 처음 본다!’고 했다. 내 나이 겨우 열다섯이었는데. 막대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구부러지지 않는다. 다만 뚝하고 부러질 뿐이지. 가뜩이나 몸 쓰는 일에 자신이 없었는데. 하물며 예민한 사춘기였다. 이후, 유연성에 관한 일이라면 그 말에 숨어 해볼 생각도 안 했다. “제가 무용쌤도 인정한 막대기라… 호호!”       


그렇게 20년을 살다 보니 몸이 항거를 한 게 분명했다. 목이 돌아가지 않고 팔이 들어지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선 누웠다 일어날 때 아이고 하면 노인이라던데, 삼십 중반에 입이며 관절 마디마디에서 소리가 삐져나왔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한의원을 다 찾아다닌 끝에 운동이 답이란 결론을 얻었다. 몸 쓰는 일은 꾸준히 해본 역사가 없는 터라 나를 묶어두는 심정으로 6개월 치 요가를 한꺼번에 결제했다. 되든 안 되든 반년은 무조건이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신시가지에 위치하고 있어 회원들의 연령대가 낮다. 주로 20~40대 여성들로 포진돼 있다. 선이 곱고 몸을 쓸 줄 아는 20대와 아이들이 학교에 간 낮 시간을 활용해 십수 년 수련한 40대 사이에서 내 몸짓은 우스꽝스럽게 도드라진다. 앞으로 숙이는 자세를 할 때면 다른 요기니들보다 내 등이 월등이 높게 솟아 있고, 다리를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도 내 다리만 비스듬히 누워 사시나무처럼 후들후들 떨린다.      


평소의 나라면 옆 사람과 비교하며 자책하고 자학할 텐데, 놀랍게도 그런 마음이 들진 않는다.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대신 요가 수업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대화하는데 보낸다. “그래, 20년간 숨 쉬는 것 말고는 운동한 게 없으니 당연하지!” 그리고 사과한다. “등허리야, 무릎아, 그동안 고생 많았겠다. 이 지경이 되도록 외면해서 미안해. 앞으로 잘할게!” 물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못 따라가는 날엔 가끔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엉거주춤한 포즈로 부장가아사나를 하고 있다. 엎드려 누워 가슴 옆에 양손을 짚고 상체를 들어 올리는 일명 ‘코브라 자세’다. 선생님의 허리는 활처럼 휘어 몸이 거의 직각을 그리고 있다. 선생님을 따라 상체를 들어 보려니 엉덩이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엉덩이에 힘 빼셔야 해요. 그래야 후굴이 쉬워져요.” 어느새 선생님은 내 뒤로 와, 내가 엉덩이에 힘을 빼나 안 빼나 유심히 지켜보고 계신다. 아이 참, 민망하게시리!   

   

“요가는 유연성만 있어도 안 돼요. 반다를 잡고, 불필요한 힘을 뺄 줄 알아야 해요.”          


반다 bandha란 ‘연결하다’, ‘꼭 붙잡다’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신체의 일부를 통제한 상태를 말한다. 훌러덩, 풀어놓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의지로 꽉, 묶어놓고 있는 느낌이랄까? 선생님은 반다를 잡고 있지 않으면 너무 유연해도 삐끗할 수 있고 힘이 엉뚱한 곳에(이를테면, 엉덩이!) 무리하게 들어가도 다칠 수 있다며 충고했다.      

굽어지고 휘어지는 것과 정확히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구분하고 강약을 조절하는 것을 내 통제 아래 두는 일. 어디 요가만 그럴까? 우리 인생에도 통하는 법칙이다. 인생은 나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수없이 반복되는 총합이다. 나이를 먹고 역할이 늘며 결정할 일도 그만큼 많아지는데 중심에 내가 없다면 속절없이 흔들리고 휘둘리고 만다. 문제는, 나만 고달프면 끝이 아니란 거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도 힘들다. 그건 차마 보지 못할 괴로움이다.     


선생님은 아직도 내 엉덩이를 겨누어보는 중이다. 나도 힘 좀 풀어보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 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힘을 살살 빼 보세요.” 스으읍, 후우우우. “그렇죠! 잘했어요!” 아- 겨우 이렇게 또 한 동작을 해냈다. 요가도, 인생도 넘어야 할 것 투성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엉덩이에 빠진 힘 딱 그만큼 나는 성장했다는 거다. 그래, 천천히 호흡하면서 내 몸이랑 대화하면서 내 삶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한 발짝 떼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오늘도,     

습습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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