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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한 Mar 28. 2024

이 떡의 맛이 좋으니 밥이랑 바꿔 먹자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나도 한입 먹자, 하며 그녀는 뜨거운 떡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덥석 떼어 입에 넣었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쉰 것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들켰다는 게 부끄러웠고, 괜찮지? 하고 물어가며 동생에게 그걸 먹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고, 지금 이 집에 어른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실은 어느 것을 가장 부끄럽게 여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꼭 다문 입속에 떡이 뜨겁게 엉겨 있었는데 삼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만 주눅이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쉰 떡을 입에 넣었으니 곧 뱉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기네 어머니는 떡을 우물우물 먹으며 살풍경한 부엌을 둘러보고, 설탕을 입에 묻히고 있는 나나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떡을 뱉지 않고 삼킨 뒤,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며 나나와 나를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이날부터 나나와 나는 매 끼니,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종 나기네 밥을 먹었다.



이 문장들을 소리 내 읽으며 옮기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다. 대여섯 번 넘게 원문 대조를 하며 다시 읽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그건 두 번째 읽을 때 알았다. 다만 읽고 싶었고, 읽고 나면 또 읽고 싶었다.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지, 남을 도울 때의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지, 어떻게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지. 그런 걸 다 제쳐두고라도, 뜨거운 이야기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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