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밤 좋은 꿈

by 이계절

문득 그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포도 냄새, 김동률 노래, 달콤하거나 느끼한 음식들, 단정한 셔츠와 슬랙스 같은 게 내 주변에 스치는 순간들. 쉴 새 없이 떠오른다는 말이다.


오늘 낮, 작업하러 간 카페에서 그가 자주 부르던 노래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가 좋아하던 노래는 전부 이별 노래였다는 걸 이제 알았다. 사랑 노래는 고백보다 이별이 많다는 걸 알지만 괜히 사소한 사실 하나에 상처받기를 반복한다. 그에게는 일말의 의도가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운전을 할 때면 그는 항상 조수석에 앉아 노래부터 틀었다. 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는 음악 취향이지만 대부분 발라드였다. 평소 내 취향과는 사뭇 달랐지만 그를 따라 한번 두 번 듣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 그가 없어도 가사를 중얼거릴 만큼.


습관처럼 노래 가사를 중얼거리다가 카페를 박차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가 좋아하던 노래를 혼자 불러보았다.


저 많은 별을 다 세어 보아도
그대 마음은 헤아릴 수 없어요
그대의 부서진 마음 조각들이
차갑게 흩어져 있는 탓에
그댄 나의 어떤 모습들을
그리도 깊게 사랑했나요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좋은 밤 좋은 꿈 안녕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좋은 꿈 꾸라는 말뿐이라는 대목에서 더 부를 수가 없었다. 이게 이렇게 슬픈 노래였던가. 이 노래를 부르던 그가 눈에 훤하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두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부르던 모습. 유난히 소중하게 부르던 노래.


그는 이별과 동시에 나를 잊었을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나보다 쉽게, 빠르게 정리를 끝냈을까. 내 숨소리마저 귀엽다던 그의 사랑이 어쩌다 바닥나 버렸을까.


분명 마음 정리를 위해 쓰는 글인데 매번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손끝으로 푸념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별 시답지 않은 내용을 자꾸 인터넷에 올리는지. 어쩌면 나는, 이 글을 그가 보았으면 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허우적대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내 생각이 난다면 돌아와 달라고.


친구들은 내게 그랬다. 오랜 연인을 한순간에 정리했을 리 없다고. 분명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내게 연락하는 날이 올 거라고.


나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걸 안다. 그는 선택을 후회하는 일이 있어도 번복하지 않는다. 고집이나 자존심과는 다른 그만의 철칙이다. 모든 선택은 최선의 노력 후에 할 것, 그 선택의 책임을 질 것. 그러니 그는 어느샌가 날 잊고 다른 여자를 만날 거다. 나와 사랑했던 것처럼 다른 여자와 사랑하겠지.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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