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밥을 제대로 먹는다. 입 근처만 가도 속이 꽉 막혔었는데 이제는 배도 고프다. 정직한 몸이 허무해서 웃음이 났다. 아직도 마음을 비워내지 못했는데 입으로는 밥을 밀어 넣는 모습이 웃겼다.
정리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일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다. 4년 동안 쓴 일기만 5권인데 차마 내 손으로 버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 정말 내 속에서 그가 사라지는 날 저 일기들도 내 방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가 선물했던 모든 것들은 아직 방 안에 있다. 매일 안고 자는 인형이나 가방에 매달린 배지 같은 것과 자꾸 눈이 마주친다. 처분하기에는 내 삶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물건들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키보드가 그렇다. 매일 글을 쓰느라 손목이 아픈 나를 위해 그가 선물해준 기계식 키보드다. 고작 2주 전에 받은, 내 생일 선물.
생일까지 한 달이나 남았지만 그는 흔쾌히 키보드를 선물했다. 내가 매일 쓰는 물건인 걸 알면서 굳이 선물해주고 떠난 이유는 뭘까. 4년이나 만났지만 아직도 그를 잘 모르겠다.
생일이 있는 달이라 5월을 가장 좋아했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엉망이다. 5월 끝자락에 있는 생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그와 만나기 전에는 혼자 어떤 생일을 보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고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아 할 일이 많은데 손에 잡히지 않아서 문제다. 그토록 염원하던 출판이 코앞인데도 이 모양인 걸 보면 공사 구분하는 프로가 되기엔 한참 멀었다. 주인공의 이름을 그에게서 따온 게 가장 문제다. 이름을 제외하면 그의 특징은 아무 것도 없지만 내내 그의 이름을 소설에서 마주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물건을 제외하면 그의 흔적은 모두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책상 한쪽에 있는 사진첩을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인화 사진을 모아놓은 사진첩이다. 네 컷 사진 속 그와 내가 참 다정했다. 머리띠를 하고, 힘껏 껴안고, 서로의 뺨을 비비거나 입술을 맞대고 있는 사진들.
잘 참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울음이 날 것 같았다. 기껏 잘 차려 먹은 저녁이 속에서 울렁거렸다. 저 사진 속 우리는 아이처럼 웃으며 사랑하고 있는데, 나는 그에게 안부 전화도 할 수 없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사람이니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6시에 퇴근하고 8시에 운동을 시작한다. 9시면 씻고 저녁을 먹는 바른 사람이다.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그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싫다.
아, 생각해보니 하나 더 남은 흔적이 있다. 그의 카카오톡 메시지. 그와 만나며 한 번도 지운 적 없는 메시지들. 거슬러 올라가면 2019년, 그와 처음 나눈 메시지가 나오는 그 톡방. 다른 건 잘만 지웠으면서 이건 지우고 싶지 않다.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항상 맨 위에 고정되어 있던 그의 메시지가 저 아래로 밀려났다. 위로 올라올 일이 없으니 일부러 찾아 들어가지 않는 이상 내 눈에 띌 일은 없다는 거다. 그러니 얼마 간은 남겨 둬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우유부단함이 그를 질리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내게 권태를 느낀 건 언제였을까.
표현이 많은 그는 늘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달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믿는 내 사랑 방식이 그에게는 맞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자기관리에 실패해 살이 찐 게 문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도 모르게 그를 홀대했을까.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명확한 문제가 있었다면 바뀌겠노라 그를 붙잡을 텐데, 뭐가 문제인지 도통 모르겠다.
하루에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바뀐다. 온전히 그의 행복을 빌었다가도 어떤 기척도 없이 통보당한 이별이 황당하고, 얼굴도 보지 못하고 메시지로 전한 이별이 배려 같다가도 괘씸하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자주 바뀌어도 되는 건가.
나를 버린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진심이다. 그가 행복하길 바라는 만큼, 이제 나도 행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도 그에게 얽매여 있을 수는 없으니까. 생각과 달리 애석하게도 그를 잊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