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확인

by 이계절

하룻밤 사이에 다짐을 2개나 어겼다. 어쩌면 세 개일지도.


첫 번째.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만나 술을 먹었다. 헤어지고 처음 먹는 술이었다. 괜찮아질 때까지 절대 술을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 걸 어겼다. 취하지 않을 때까지만 먹자, 하는 어림도 없는 생각으로 말이다.


친구는 준비하던 시험이 끝나 이제 막 자유의 몸이 된 상태라 들떠있었다. 신난 친구를 보니 나도 덩달아 들떴던 걸까. 소주 세 병을 혼자 마시고 난 후 주정뱅이가 되었다.


술집을 나와 친구와 헤어져 집까지 걸어가는데,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 결국 그에게 전화했다. 밤 12시, 술에 잔뜩 취해 전 남친에게 전화라니. 정말 구리다. 처음 두 번은 받지 않던 그가 세 번째 만에 받았다. 나는 “여보세요? 여보세요?”만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다. 통화시간은 고작 4초. 그의 목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그럴 거면 뭐 하러 전화했어. 등신.


아침에 눈을 뜨니 그에게 전화했던 기억만 선명했다. 침대까지 어떻게 누운 건지 기억도 안 나는데 4초 만에 끊었던 전화만 생생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화 기록을 봤더니 4초짜리 기록이 총 세 번이었다. 모두 발신 통화. 내가 술에 취해 전화했다는 걸 분명 알았을 텐데 왜 세 번이나 받아줬을까. 그렇게 안쓰러웠나.

그에게 다시 전화가 오지는 않았다. 내 일방적인 전화에 어쩌면 더 질려 버렸나. 그의 출근 시간에 맞춰 메시지를 남겼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게 하겠다고, 미안하다고. 답신은 없다. 내가 집에 잘 들어갔는지, 속은 괜찮은지 궁금하진 않더라도 미안하다는 내 말에 응, 한 글자는 올 줄 알았는데.

내내 외면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말았다. 그는 정말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내가 술을 먹으면 걱정해주고 집에 잘 들어갔는지 챙겨주던 그는 이제 없구나. 돌아올 생각도 없구나.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었는데...


세 번째 다짐인 ‘울지 않기’는 어겼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든 얼굴에 눈물 자국이 없는 걸 보면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는 건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헤어졌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겠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가 돌아올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서로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우리가 정말 헤어지는 건 말도 안 돼.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올 거야. 그럴 거야.


이제 정말 마음을 정리해야 될 때다. 오히려 답신이 없는 게 확인사살 같아서 마음 정리에 도움이 될지도. 아, 그의 배려였을까. 빨리 본인을 잊으라는.


서랍에 있는 커플링을 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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