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손세차를 했다. 남자친구와 해보고 싶던 일 중 하나였다. 언젠가 함께 손세차를 하러 가자고 물었을 때, 그는 기겁하며 말했었다.
문명의 발전을 두고 굳이 땀 흘리면서 세차를? 보나 마나 후회해.
눈부신 과학 발전으로 우리는 세차를 해주는 기계가 있는데, 뭐하러 힘들게 손으로 닦느냐고 묻던 그. 그래서 혼자 닦았다. 손세차를 겁주던 그는 이제 없으니까.
물을 뿌리고 거품칠을 하고, 다시 물로 세척하고. 일련의 과정이 생각보다 간단해서 놀랐다. 처음에 허둥대던 것도 잠시, 사장님이 친절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수월하게 외부 세차를 마쳤다.
자리를 옮겨 내부 청소를 시작했다. 발판을 걷어내고 먼지를 털었다. 조수석 문을 여니 내가 보지 못한 자국이 많았다. 문 아래, 신발 끝으로 긁힌 자국이다. 구두를 자주 신었던 그의 흔적이 또 나타난 거다. 지치지도 않나. 왜 자꾸 나타나는 거야.
그는 셔츠의 슬랙스, 혹은 면바지를 즐겨 입었다. 신발은 꼭 구두 혹은 워커. 운동화는 가끔. 단정하지만 몸태를 드러내는 옷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조수석 의자를 뒤로 잔뜩 빼야만 그의 다리가 접히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뒤로 기대어 앉아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수석 문을 열고 빠르게 내렸다. 의자를 아무리 뒤로 빼도 차에 오래 앉아있는 건 불편했나 보다.
그와 만난 이후로 한 번도 내부 청소를 한 적이 없으니 문에 난 신발 자국은 전부 그의 것이다. 나는 늘 운전만 하니 조수석을 살펴볼 생각을 못 했다. 세차장에 서서 자국을 바라보며 얼마간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걸 어떻게 지운담.
우선 쓰레기부터 정리했다. 그와 함께 샀던 사탕과 껌 따위가 서랍에서 나왔다. 운전할 때마다 껌을 씹는 날 위해 그가 사다 둔 것들이다. 안쪽에는 그와 함께 알맹이만 빼먹고 버린 사탕 봉지가 잔뜩이다. 손에 쓰레기 자루를 들고 빈 껍질을 전부 쓸어 담았다. 차만 타면 달콤한 냄새가 났던 게 이 사탕 껍질 때문이었나 보다. 그가 먹고 버린 청포도 사탕 껍질 때문에.
쓰레기를 얼추 정리하고 걸레로 문을 닦았다. 코팅에 상처가 났는지 잘 지워지지 않았다. 혼자 끙끙대고 있으니 사장님이 슬그머니 다가오셔서는 스크래치 전용 세제를 뿌려주셨다. 하얀 거품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믿고 잠시 뒤 다시 닦았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가 싶더니 몇 번 더 문지르니 말끔해졌다. 깊은 상처는 한 번에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5년을 탄 차지만 손으로 닦고 나니 광이 났다. 사장님도 새 차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새 사장님과 말을 텄고 단골을 약속했다. 장사를 잘하시는 분이다.
세차를 끝내고 빨아둔 걸레가 마를 동안 안쪽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얼음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히는데, 문득 이걸 그와 함께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차가 있는 나도 처음 해보는 세차를, 면허도 없는 그가 해봤을 리가 없다. 아마 그의 말 대로 후회했을까. 나는 서툴러도 재밌었을 것 같은데. 세차는 엉망으로 끝나도 물과 거품 사이에서 웃는 우리가 추억으로 남았을 것 같은데. 그는 아니었나.
널어둔 걸레를 걷었다. 다 마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젖지도 않았다. 이 정도 물기는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마를 거다. 그럴 거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그의 흔적 하나를 지웠다. 이렇게 천천히 지워가다 보면 언젠가 내 마음속 물기도 마르는 날이 오겠지.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