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참 어려운 존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시간, 에너지, 호기심과 의욕이 모두 무한했던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청춘의 특혜. 이제는 꽤 알아서 뭔가를 시작도 전에 '이건 이리될 것이고, 저건 저리 될 것이고, 나는 이럴 것이고, 상대는 저럴 것이다, 이게 안 되면 어쩌지, 해봤자 그다지 별 것 없을 것이다' 자동연상으로 따라오는 많은 현실적인 이슈들이 보이기 때문에 내 자원을 선뜻 쓰기 어려워진다. 일도, 개인사도, 인간관계에서도 모두. 그러다 보니 나는 하나인데 나를 일으키기 위한 모든 이니셔티브에 각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 까다로워... 나만 그런가?? 아니지 내 나이즈음 된 모든 이들의 공통점. 성취를 많이 해온 사람일수록 그 에너지를 일으키는 것이 너무 어렵다. 열심히 살아오고, 삶의 기준이 높을수록.
이런 생각을 하다 그럼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행복은 드라마틱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아닐 것이다.
우리가 첫사랑과 손잡았을 때의 그 심장이 멎을 듯한 황홀함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을 때의 성취감
첫 월급을 탔을 때의 기억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그 감격
이런 것들은 인생에 한두 번 정도만 오는 강도가 큰 행복이다. 그 이후에 오는 것들은 다 잔잔하여 그 의미를 아는 사람들만 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다.
특히 중년이 되어 행복을 소소히 느끼는 것은 정말 재주이다. '행복의 기원'에서 서은국교수가 얘기한 것과 같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 행복의 기원 : 네이버 도서 (naver.com)
그리하여 중년부터 행복한 이는 평소에 소소한 것들에 피식피식 잘 웃는 사람들인 것 같다. 작은 것에 박장대소하고, 더 작은 것에 감사하는. 이것은 정말 학창 시절 전교 1등 하던 재주보다 더욱 필요한 재주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들만이 각각의 에너지를 찾느라 방황하지 않고도,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아가는 이들.
20대에는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by 폴 발레리)"를 염두에 두며 살았지만
40대부터는 사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게 되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 인내하는 것, 다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삶의 평온과 스스로다움을 지키며 살아가게 해주는 것. 달리 말해 사는 대로 생각해도 괜찮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