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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Nov 26. 2017

마흔의 연애

요즘 내가 나이를 그래도 조금 먹었는지

이십 대의 인턴들을 보고 이런 뜬금없는 꼰대 같은 소리를 한다

"지금은 마흔이라는 나이가 전혀 안 그려지지? 나도 그랬었어. 근데 있잖아. 정말 금방 온다?? 나도 내가 네 나이였을 때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거든...

꼭 나쁜 의미로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마흔이 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팍삭 늙는 것도 이전처럼 불혹이 어쩌니 어른이니 하는 옛이야기에 아랑곳할 나도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정말 휙~ 간 느낌이 드는 것은 맞다. 선배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마흔 즈음을 살아온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는 삼십 대의 속도가 가장 빠르고 가장 알찼다. 결혼, 출산,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크고 작은 성장과 트랜지션이 있었고, 내면의 성장도 가장 큰 시기였다. (물론 이슈가 많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성장이라 고민도 치열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마흔이 되어간다. 


나는 79년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여자 사람으로서는 그저 부모님이 보시기에만 참으로 모범생적인(?) 삶을 살아왔다. 대학을 친구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가긴 했으나 뭐 그것도 평범의 범주에 속했고,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다 그러려니 하는 때에 치렀다. 결혼은 일찍 스물아홉에 했으나 (그때에는 그 나이에 결혼 못 하면 평생 결혼을 못 하는 줄로만 알았다. 사실... 결혼을 못 하면 어떻고 안 하면 어떠랴? 그리고 늦게 하면 어떻고 지금은 결혼이라는 틀 자체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졌지만 이렇게 말하면 미혼의 친구들은 "너는 해 봤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나는 아직이라 동의를 못 하겠다"는 반응도 온다. 뭐 그럴 수도...) 아이는 삼십 대 중반에 낳은지라 아직은 초보 엄마이지만 그래도 내 페이스는 그냥 딱 모범답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범생이로 살아온 인생에는 후유증이 있다. 그간 내 삶을 살아왔다기보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온지라 뒤늦게 '나는 누구인가? 왜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마흔을 두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사십춘기라고 불러야 하나? 이런 때 늦바람이 나는 사람들도 있고 (그 늦바람은 뭇 이성과 나기도 하지만 평소와 취향의 패턴이 전혀 다른 취미이기도 하고, 골똘한 생각이기도 하고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기도 하다) 나 역시 15년 차 직장인, 다섯 살 아이의 엄마로 대변되는 지극히 한정적인 삶의 패턴과 아이덴티티에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리고 이 반항의 시선이 주변 사람들에 꽂히기 시작했다.


물론... 나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다. 대단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실히 피땀 흘려 일군 내게는 소중한 업적이자 현실이라 나 역시 자부심이 있다. 그 부러움 중에는 "그래도 너는 결혼도 해봤고 애도 낳아봤잖니?"의 미혼 사람 친구들로부터의 감정인데. 그렇다 마흔 즈음이 되면 사실 연애나, 그로 인한 결혼 등등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보다 조금은 더 다양한 인생의 경험이 쌓여서 쉽게 들이대기도 힘들지만, 적당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주변에서 소개를 시켜줄 만한 Pool은 더욱더 적어지고, 이것저것 따지는 것은 많아지는데 사실 그 따지는 조건들에 나를 대입시켜보면 저쪽에서는 그럼 나를 왜 만나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안 나오기도 한다. 그게 내가 주로 듣는, 가끔 나를 부러워하는 미혼 사람 친구들 (특히 미혼 사람 여자 친구들)의 푸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흔에도 사랑을 한다. 연애를 한다. 사실 사랑의 종류, 연애의 종류는 참으로 많다. 우리는 '연애'를 미혼남녀가 풋풋하게 나누는 사랑의 감정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 사랑의 종류는 예상외로 다양하며 연애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마흔 즈음에 하는 연애는 어떠한가?


마흔 즈음에 하는 연애

일단 시작이 쉽지가 않다. 왜냐면... 일단 사람이 없다. 그 많던 남자는 여자는 어디로 갔는가?? 주변을 둘러보면 일단 다 결혼을 했거나, 해외에 가 있거나, 없다.. 사람이 없다. 길에서 보는 그 수많은 이성들은 다 그림의 떡. 두 번째 어쩌다가 마음이 쓰이는 사람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더라도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것을 굳이 안 따지려고 해도 스스로가 따지게 된다. 아.. 또 이렇게 시작해도 끝이 뻔할 텐데, 시간도 없고 감정도 에너지인데 에너지도 그렇고 미친 듯이 끌리던 20-30대의 무모한 감정에 머리와 손가락이 개입하여 끊임없이 사랑의 Balance sheet을 작성하게 된다. 그래서 시작이 어렵다. 간만 실컷보다 '아휴 피곤해~'로 시작도 없이 끝을 (혼자서)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에도 사랑을 한다. 연애를 한다. 어떤 경우냐고??

생각보다 마흔 즈음에 하는 연애는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힘든 감정인 경우가 가장 많다. 왜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열심히 일하고 25일 되면 월급과 동시에 빼나 가는 곳이 더 많기에 인생이 헛헛해진다. 그래서 일탈을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이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서 또는 위로를 얻기 위해서 어떠한 이유든 그게 사랑이든 연애든 불륜이든 뭐라고 부르든 정의하기 애매한 감정을 싹 틔우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의외로 되게 많다. 그러나 그 끝이 늘 좋지 못함은 시작하면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돌아오는 이들이 늘어난다. 돌싱 또는 returner라고 불리는 결혼생활을 종료하고 돌아오는 이들이 마흔을 전후로 상당히 많아진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결혼생활이 맞지 않았고 뼈아픈 이별의 과정을 겪은 이들. 다시는 사랑이란, 결혼이란 하지 않으리 다짐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대부분 입을 모아 내게 말했다. "사랑하는 것,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이 감정이다" 그래.. 공감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사랑한다. 어쩌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한 사람들이 이별을 하고 꼭 이별을 딛고 다시 사랑을 연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다.

그리고..... 마흔이 되어서야 이삼십 대에는 몰랐던 진정한 성숙한 사랑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일이든 인생의 어떤 주제이든 그곳에 미쳐있다가 어떠한 계기로든 동반자와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정의하고 이전과는 다른 시전으로 시작하는 감정. 그것을 시작하는 이들이다. 찾기도 쉽지 않고, 만나기도 쉽지 않기에 그들은 만남과 사랑의 의미를 자신의 본질에 대비하여 정의하고 그렇기에 이전과는 다른 연애와 사랑을 한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는 내게 이만큼을 돌려줘야 해. 사랑하니까 이것만은 해줘, 이것만은 하지 말아줘의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감정의 요구가 아닌 대상을 그대로 인정하고 다름과 차이를 존중한 진정한 사랑을 한다. 이것이 마흔의 연애이다. 끝이 두렵지 않을 리는 없다. 이전에 입었던 상처가 되돌아 올 수도 있고 그들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마흔이 하는 진정한 연애는 다르다. 성숙한 철든 사람들의 성숙한 감정의 교감. 그것이 마흔의 연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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