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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Mar 23. 2022

노트북의 부재

 하루 종일 끼고 살던 노트북이 고장이 났다. 정안이 키보드에 물을 쏟은 이후로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충전이 되지 않더니 더 이상 켜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장이   한 달 정도가 되어간다.  기간 동안 뭔가 나의 루틴이 깨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브런치에 글을 업데이트하지 못했고, 유튜브로 백색소음을 틀어놓고 영어 공부도 하고, 넷플릭스  두고 핸드폰을 만지는 자유로운 시간도 있었는데 노트북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막상 노트북이 고장이 나니 글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핸드폰으로도 적을  있고, 지금처럼 데스크탑을 사용해서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낮의 모든 시간을 거실의 식탁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데 노트북이 고장 나니 내 자리가 어딘지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베란다 창문을 향해 있는 커피 테이블을 앞에 두고  소파의자에 앉으니 뭔가 게을러지는 자세가 되었고, 지금처럼 데스크탑을 사용하자면 높은 바 의자에 앉아야 하는데 그것 또한 불편했다. 그러나 다시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데스크탑을 켰다. 커다란 화면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익숙해지겠지. 익숙해지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하나의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늘 사용하던 물건이 갑자기 고장이 난다거나, 어디 들고나갔다 잃어버린다거나 해서 갑자기 그 빈자리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있을 때는 내가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 물건에 얼마만큼의 애정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물건은 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 물건을 대신할 것을 찾아서 빈자리를 메꾼다 해도 만족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예전에 쓰던 것과 똑같은 것을 사는 것이 낫다. 다른 물건을 써보면 그 물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똑같은 물건을 주문해서 그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모양새는 똑같았지 그것과 같은 느낌을 낼 수는 없다. 물건이지만 내 손을 많이 탄 '그 물건'과는 조금 다르다. 얼굴만 똑같이 생기고 성격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다.

 물건에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나는 뭐든 쉽게 질려하는 사람이고, '물건은 물건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해 온 시간이 그 물건에 묻어난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 나의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떠한 물건에서는 거기에 묻어 있는 사람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추억과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나는 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특히나 나는 전자기기를 함부로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고장 나지 않고 3-4 정도를 쓰곤 한다. 핸드폰  내용물이 아닌  핸드폰 자체에 어떤 추억이 있겠냐 싶지만 지금은 남편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 X 보면 나는 많은 일들이 생각난다.  아이폰X 캐나다에 있을  애플샵에서  것이다. 처음으로 인물사진 모드가 들어간 카메라를 만난 터라 카메라에 반했다. 어느  밴쿠버 시티에 있는 노드스트롬(Nordstrom) 백화점에서 신발을 신어보고 구경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어반아웃피터스(urbanoutfitters) 가서 뭔가를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그때 핸드폰이 없는  알아차렸다. '아차!'싶어서 급히 돌아가면서도   번화가에서 잃어버렸으니 찾기는 글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내가 머물렀던 층에 있는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었더니 직원은 기종이 무엇인지, 배경화면이 무엇인지 물어보더니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 2  우리 가족은 호주 브리즈번에 여행을 다녀왔다.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야 했고, 브리즈번에서 가장  기차역 어딘가에 핸드폰을 놔두고 기차를 탔다. 인안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핸드폰은 없었고, 어디서 잃어버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역에 놔두고 왔겠지 싶어 다시 돌아갔다. 내리자마자 만난 청소하시는 분께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어디로 찾아가라고 알려줘서 인포메이션센터 같은 곳에서 보관하고 있던 핸드폰을 다시 찾을  있었다. 너는 어떻게 이렇게 나에게 계속 돌아오는 거니. 그래서  아이폰X 보면 나는  장소가 떠오른다. 당황했던  기분과 찾았을 때의 기쁨과 안도감. 지금은 남편이 사용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X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어떠한 물건이 지닌 추억의 힘에 깜짝 놀랄 일이 자주 생기면서부터 나는 물건이 가진 힘을 믿게 되었다.

 예전에 아가씨 시절 이사를 했을  친구가 선물해  프랑프랑 접시를 나는 지금도  쓰고 있다. 몇 개가 깨져서 없긴 하지만  접시를  때마다 나는 친구가 생각난다. 그리고 결혼 선물로 다른 친구가 포장을 곱게 해서 커피잔 세트를 캐나다까지 택배로 보내  적이 있다.  커피잔 역시 아직  사용하고 있다. 우리 집에 처음 생긴 잔이 있는 컵이었다. 예전처럼 매일 연락을 하지는 않지만, 나는 일상에서 매일 그들을 생각한다. 친구들은 알까 그때의 그 선물들이 나를 매일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가끔 그 접시를 사용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아직도 이거 쓰냐고 웃는 말을 한다. 나는 이 접시가 깨져서 사라질 때까지 다른 접시를 살 생각이 없다. 커피잔도 마찬가지이고.


오래된 사진첩에서 찾은 선물받은 커피잔(위)과 노트북사진(메인사진)


  어떠한 물건을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 그 물건 속에서 누군가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생긴 내가 기특하다. 억지로 심는다고 해서 심어질 것들이 아니다. 살아가며 느낀 것들이 나의 사상에 스며든 것이다. 나는 누가 봐도 다 큰 어른의 몸을 하고 있지만 아직 배울 것들이 많다.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채워질 것들이 아직 많다. 그만큼 부족하다는 말이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노트북의 빈자리를 다른 컴퓨터가 채우곤 있지만 역시나 뭔가 부족하다. 노트북의 빈자리가 더 생각나게 할 뿐이다. 또 다른 새로운 기종을 사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물건을 알아가는 것 또한 피곤한 일이다. 죽어버린 저 노트북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다시 나의 하루를 같이 해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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