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있으니까"
| 오스카 와일드
생일 동안 받는 타인의 축복으로 인한 감사가 두려움으로 변하기까지 몇 해가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행복한 24시간을 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하필 생일에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까짓 사랑 좀 안 받으면 어때'라는 생각을 하기엔 SNS 속 떠들썩한 파티가 나를 자극했다. 변명이지만 그 당시에는 행동하지 않는 사랑과, 말 위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에게 지쳐있던 20대 어느 어느 나이였다. 그 텅 빈 관계로 인해 상처 받는 시기가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덜 자란 성인의 하루하루를 방향 없이 노력하며 흘려보냈다. 그 와중에 흘낏 보는 타인의 행복이 부러운 건 부러운 거였다.
고개 숙인 채로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20대 어느 어느 나이들의 나는 한 덩어리로 뭉쳐져 연도 별로 구별되지 않은 채 기억 속에 구겨졌다.
그러다가 29세가 되었다. 1월부터 이번 생일은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보내자고, 타인의 사랑이 아닌 나의 사랑과 부모님에 대한 감사로 채우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에겐 이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생일에 가져야 할 태도를 각 잡고 다짐하고, 고민할 만한 거리인가 궁금할 수도 있다. 10대도 아니고 다 늙어서 생일 타령이라니. 안타깝게도 나이와 상관없이 결핍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 4인용 식탁을 쓰는 5인 가족의 구성원이었던 사람으로서, 나 또한 이 엉터리 두려움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이번 생일은 혼자 보내기로 결심했다. 아주 행복하게.
다이어트가 일상이기 때문에 케이크를 고르는데 매우 신중했다. 하루만 먹는 건데 화끈하게 맛있는 걸 고르자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맛도 맛이지만 글루텐 프리 케이크를 다양하게 판다는 잠실의 한 카페를 검색으로 알아냈다. 그 전날에 미리 사둔 생일 초와 색을 맞추기 위해 노란 단호박 타르트를 한 조각 사고, 그 옆 가게로 가서 줄까지 서가며 도넛 두 개를 더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콧노래가 나왔다. 만개한 벚꽃과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사랑과 행복이 충족되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지난날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셀프로 채우는 게 이렇게나 쉬웠다니.
겁쟁이라 초에 불을 붙이는 게 쉽지 않았다. 가스레인지에서 옮겨온 불로 어렵게 초에 불을 붙인 뒤 기도를 했다. 급식 먹던 시절, 식전 기도로 하루의 기도를 퉁치지 말라던 친구의 말을 기억하며 짧게 기도하려고 노력했으나, 타르트에 촛농이 뚝뚝 떨어지는 걸 온 신경으로 느끼면서도 기도를 쉽게 끝내지 못했다. 지금은 2인 가족이지만 5인 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까지 빌고서야 초를 불었다.
꽤 커진 불 한 덩어리를 후후 불어 끄고, 타르트를 야무지게 먹었다. 약간 경박스러운 감탄사를 뱉으며 두 조각을 사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기도의 힘인지, 글루텐프리 케이크 덕인지, 이미 나의 상태를 인지하고 고치기로 결심했던 순간 탓인지 나는 충만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꼈다.
저녁 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행복하기로 한 목표를 달성했더니 학창 시절 나의 생일을 축하해줬던 윗집 친구가 보고 싶었다. 둥근 식탁이 있었던 아파트에 친구는 아직도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익숙한 그 아파트는 큰 벚꽃 나무로 유명하다. 두 개의 벚꽃 나무가 만나서 터널을 만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 밑에서 도넛을 든 채로 친구의 퇴근을 기다리니 문득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밥숟가락을 들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 속에 구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