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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인 생일 나기 (上)

by 콩지

꽃피는 3월이면 약간의 공포심이 몰려온다.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설렘 가득한 달. 낭만과 웃음이 따뜻한 봄기운처럼 퍼지는 달. 그 달의 끄트머리에 나의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그렇게 유난 떨 일 없는 생일들의 연속이었다. 크게 불행하거나 크게 행복한 기억이 없다. 동일하게 반복되던 고통이나 좌절이 없는데도 생일만 다가오면 괜히 불안해진다. 엉덩이가 가벼운 수험생처럼 해야 할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생일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샌가 생일을 카운트 다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긁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벅벅 긁어 피가 나는 허벅지를 본 듯, 화들짝 놀랐다. 이유 없는 불안함을 없으리라. 천천히 이유를 찾아 이 불안함을 해결하기로 했다. 3월은 바쁜 달이다. 본격적인 한 해의 시작이다. 꽃도 봐야 하고, 1월에 계획했으나 지켜내지 못한 목표들에 다시 봄이라는 핑계로 숨을 불어넣어야 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결코 낙오되기 싫은 사람으로서 다가오는 생일 따위에 두려워할 시간이 없었다. 다가오는 생일이 두려운 이유를 찾기로 하니 옆 동네에 살았던 학창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정확히는 소박한 우리 집엔 어울리지 않았던 고풍스러운 느낌의 크고 둥그런 4인용 식탁이 떠올랐다.


네 명의 가족과 친할머니, 총 5인이 함께 살았던 아파트에서 4인용 식탁이라니. 식탁만 봐도 단란한 가족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단란함도 물론 없었지만, 시간이 더 없었다. 5인이 다 같이 마주 보고 밥을 먹을 시간이 학창 시절 내내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조차도 믿기지 않아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봤다. 졸업식, 할머니의 생신, 한가로운 저녁, 수능 전 날 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다섯 명이 함께 식사를 한 기억이 없다. 의자가 달랑 네 개였기 때문에 한 명은 밥숟가락을 들고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시간과 서로를 향한 애정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 오빠의 유학, 아빠의 사업 실패, 엄마의 발톱이 빠지는 사고 등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덕분에 감당 불가인 중2병이나, 사춘기는 겪지 못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소용돌이치는 주변 환경 탓에 스스로 흔들리거나 변화할 만큼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집안이었다. “이놈의 집구석”이 우리 가족의 유행어였으니, 후.


생일날 식탁에 둘러앉아서 가족 모두의 축하를 받은 기억이 없다. 물론 아주 어릴 적엔 있었겠지만,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살았던 그 아파트에서는 없었다. 세상엔 평범함이 허락되지 않는 가정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살아온 환경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성인이 된 후 혹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야 알게 되는 경우를 책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종종 봤다.


타고나게 눈치가 없던 터라 나는 운이 좋게도 성인이 돼서야 우리 집이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더니, 식탁엔 어머님이 일 나가시기 전 차려놓은 밥과 반찬이 올려져 있었다.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작은 모기장 같은 덮개와 함께. 그날 나의 대사는 이랬다. “너네 어머니는 밥도 차려주셔?” 대답을 고르지 못했던 친구가 겨우겨우 “응. 나랑 동생 먹으라고.”라고 대답했고. 나는 모기장 같은 덮개를 올리며 말했다. “나도 먹을래.”

작은 동전 돈까스가 아주 맛있었고, 물도 달았던 기억이 난다.


가족과 생일파티를 하지 않았던 나에게 대학생 시절 서프라이즈 파티는 꽤 중독되는 맛이었다. 연습실의 불이 꺼지고, 노랗게 빛나는 초와 함께 등장하는 케이크가 내 거라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서프라이즈를 예상한 날도 있었지만, 정말 이 케이크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건 여러 해 동안 믿기지 않았다. 홀케이크에 초를 꽂아 생일 파티를 하는 건 드라마에서나 봤던 일이다. 그런 내가 졸업을 하고, 만남과 이별을 하고, 남자 친구가 있는 생일과, 없는 생일을 겪으며 생일에 트라우마 비슷한 게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윗집 사는 친구 한 명에게만 축하받던 게 다였던 시절에도 생일을 잘만 버텼는데, 이제 와서 왜?



(下)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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