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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시작 혹은 끝

20대의 마지막 봄이 다가온다.

by 콩지





'시골'이라고 부르는 큰할아버지 댁이 제천에 있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오랜 시간 인천에 한 아파트에 사셨고, 외조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부모님을 포함하여 다른 친척들은 '큰집'이라고 부르는 그 집에서 나는 아궁이에 고구마도 구워 먹고, 여물 먹는 소들의 긴 혀도 구경하고, 집 전체를 감싸는 밤나무 아래에서 벌레 먹은 밤을 주우면서 어린이에게 필요한 감성을 '줍줍'했다. 지금은 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빈집에 세를 줬다고 하니 더 이상 '시골'은 없다.



'시골'은 없을 수 있다. 부모님의 엄마 아빠가 꼭 시골이나 지방에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모두 다 고향이 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 고향이라 하니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곳이 고향일 거다. 애석하게도 나에겐 떠오르는 곳이 없다. 어릴적 우리 집은 수원이었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이다. 엄마의 부모님이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친할머니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인천에서 출산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니 돌 전에 발가벗고 기어 다니는 사진은 다 할머니 집에서 찍힌 사진이다. 오빠의 사진은 다 수원 옛집이던데. 자식 하나는 견딜만해도, 둘은 엄마 혼자 버거웠을 것이다. 그 당시 수원에서 회사를 다니던 사회초년생 아빠가 육아를 잘 도와줬을 리도 없다. 수원에서는 8살 때까지 살고 제천으로 이사를 간 탓에 수원에 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차라리 제천을 고향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내가 너무 커버린 후라 '자란 곳'이라는 고향의 의미가 적용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답을 얼버무렸다. 다 설명하자니 귀찮기도 하고, 셋 중 한 곳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은 '그냥 여기.'라고 대답한다. 가장 오래 산 여기를 그냥 고향이라고 치자. 나도 누군가의 고향이 진짜 궁금한 건 아니니까.



느닷없이 시골, 고향 얘기를 하는 이유는 봄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의미 부여하고 싶지 않아도, 분홍빛 웃음꽃이 번지는 거리에서 나는 진하게 봄을 겪을 것이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바뀌는 환경과 사람을 겪는 동안, 나 또한 끊임없이 바뀌었다. 사건은 기억으로 남아 몸과 정신에 기록된다. '시골'에 대한 기억은 순수성과 이름 모를 감성으로 내게 기록되었다. 사는 동안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10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나는 때마다 바뀌는 공간에서 생존과 성장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그리고 '그냥 여기'가 고향인 나에게 20대의 마지막 봄이 다가온다. 정체성과 경제성, 둘 다 단단해야 할 때가 왔다. 시작이자, 끝인 봄을 통과하며 나는 또 어떤 모양으로 살아남을까.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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