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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가 내게 남긴 것

by 콩지

나도 오타루에 갔다 온 적이 있다.

오타루는 홋카이도 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영화 속 쥰과 마사코 고모가 함께 살고 있는 곳이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겨울엔 춥고, 여름엔 장마가 없다. 내가 계획도 없이 삿포로로 향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 해 8월은 너무 더웠다.


나는 잘 아프지 않다. 마른 체격이긴 하지만 하루 한 끼는 꼭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거의 매일 운동한다. 어쩌면 샌드위치 만들기보다 건강 유지하기가 진짜 나의 취미일지도 모르겠다.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자며 배낭도 가볍게 매고 갔던 게 문제였다. 더위에 헥헥대던 내가 하루 만에 긴팔, 긴바지를 입고 삿포로 시내를 누비고 다녔더니 몸이 당황했는지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가벼운 가방에는 비상약도, 여분의 돈도 없었다. 다행히 파우치 한 구석에서 껍질도 없이 나뒹구는 타이레놀 한 알을 발견했다.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꿀떡 삼킨 후 예정대로 오타루로 향했다.

삿포로는 생각보다 교통비가 비쌌다. 가져온 돈을 족족 이동할 때에 쓰느라 자연스럽게 식비가 줄어버렸다. 하루 3만 원 정도를 식비로 쓰려고 했으나, 2만 원으로 제한해야 했다. 오타루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도 유명하지만, 미스터 초밥왕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2만 원짜리 초밥이 있길 바라며, 무작정 열차를 탔다. 그런데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았다. 열차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의 파도가 울렁임을 더해주어 죽을 지경이었다. 멀미인지 감기인지 모를 고통 속에서 겨우 오타루에 도착한 나는 입맛을 잃었고, 낭만의 도시에서 혼자 쓸쓸히 걷고 걸으며 그저 트림이 나오길, 열이 내리길 바랐다. 그날 이후로 오타루는 나에게 아쉬움이 가득한 공간으로 남았다.


오타루가 배경인 <윤희에게>에서 결국 재회한 쥰과 윤희가 말없이 걷고 또 걷는 모습을 보며 둘의 아쉬움에 대해 생각했다. 신체적인 고통으로 인해 여러 경험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후라, 아쉬움이라는 감정에 공감하기가 쉬웠다. 오타루라는 지역까지 겹치니 더더욱. 하지만 이 것이 날씨의 변화로 인한 컨디션 저조 정도가 아닌, 윤희의 오빠라던지, 가족이라던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모든 욕구를 누르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둘을 보며 상상할 수 없는 아쉬움에 곧 숨이 막혔다. 그 둘의 아쉬움은 어쩌면 둘의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 했을 때, 지우고 지워서 마지막으로 남을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 아쉬움, 그리고 서로의 이름이 각축을 벌이지 않을까.

나의 아쉬움에 몇 갑절이나 될까. 다행이었다. 1을 경험하고 와서 23456배 정도 되는 둘의 아쉬움을 곱하여 상상할 수 있었고, 그만한 크기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내가 하는 사랑을 반추할 수 있었다. 사실 삿포로로 떠나고 돌아오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남자친구에게 화가 나있었다. 삿포로에서 돌아온 후 몇 년을 더 만났는진 모르겠지만 결국 우린 헤어졌다. 나는 사랑하지 못할 때 화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후에 반복되는 연애를 경험하고야 배웠다.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모두에게 사랑이 부족했다고, 참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헤어지는 순간부터 그리움과 평안함을 동시에 느끼는 참 별로인 나였다고.


영화를 보며 주의해야 할 태도는 ‘에이 저건 영화니까’라는 생각으로 내 삶과 동떨어져서 보는 것인데 분명 어느 지점에선 필요하다. 하지만 사랑과 용기에 관해선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다지도 큰 사랑과 용기에 충분히 감탄하고, 끝까지 저 상황에 나를 대입하여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상상하고, 그 기쁨과 슬픔을 느껴야한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 포함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맛 보여 주는 러닝타임만큼의 제한적 시간 동안 이리저리 휩쓸려 보는 것이다. 얼마나 안전하게 시간을 아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가.

<윤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지 않을 때, 나의 남은 인생을 ‘벌’이라고 생각할 만큼 나를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우의 수를 보여주었고, 참 아팠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상대에 대한 집착이 아닌 사랑에 집착해보라고,
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윤희에게>는 내게 말했다.




추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용기를 갖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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