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한 달이 넘도록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녀의 아파트에 들러 길어야 두 시간 정도를 머무르다 가면서 그는 자신이 자꾸만 찾아오는 것에 그녀가 짜증을 느낄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자신이 그녀의 논문에 정말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만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면서 자신이 강의를 준비할 때와 똑같이 그녀의 집을 찾아갈 준비를 성실하게 하고 있음을 깨닫고 한편으로는 재미있으면 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참아주는 동안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만족하겠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 스토너
사랑은 “하나 더하기 하나”나 “황홀한 하나”가 아니라 어떤 “둘의 무대”를 조직하는 데 있다.
무한성의 사랑에도 반드시 절제되어야 하는 실재의 지점이 있다. 어떤 어긋난 무한성에의 유혹, 어떤 치명적인 절대성에의 유혹, 즉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되려는 정념의 유혹이 극복되는 한에서만 사랑은 생존할 수 있다.
ㅡ 알랭 바디우
바디우는 늘 '둘'이라는 표현을 강조한다. 바디우에게 사랑은 '하나'가 아닌 언제나 '둘'이어야만 한다.
비로소 '하나'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 우리의 믿음과 동떨어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은 두 사람이 자신을 벗어 버리고 한 지점에 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서로의 고유한 모습을 깎아내어 하나에 일치시키는 작업과 다를 바 없다.
그 사람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을 나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가 가진 각자의 고유함을 제거시키는 일은, 서로를 하나의 미션이자 목적으로 환원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을 이유로 그 사람을 나에게 맞추려고 한다거나, 약속된 무엇을 맹목적으로 쫓는 일은 사랑을 훼손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가 되려는 노력이 아니라, 나는 너대로의 너를 보려는, 너는 나대로의 나를 보려는 그 노력.
하나로 빨려 들어가는 우리를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물방울 하나와 물방울 하나가 만나 더 큰 하나의 물방울을 지향하는 게 아닌,
서로의 모습은 유지하되,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있는 그 모습으로. 그냥 손을 잡은 것처럼 그렇게.
N극과 S극이 서로에게 끌림은 느끼되, 그 끌림에 붙어버릴 정도는 아닌, 자기의 모습을 지킬 수 있는 그 힘은 유지한 채로.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는 마흔둘에 진짜 사랑을 찾았다.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혹여 자신의 사랑이 부담으로 느껴질까 자신을 자꾸 타이르며 그녀를 배려하는 스토너.
상대방의 자유를 위해 내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것.
내 마음과 상대를 위한 마음이 자꾸 싸운다.
캐서린을 향한 마음은 멋대로 요동치지만, 그녀에게 부담으로 기억되지 않게 타이르는 스토너처럼.
이성복 시인은 말했다.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아이처럼 서툴고 투박해지지만 그 불안정한 내 모습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제 멋대로 뛰어올랐다가, 혼자 실망해서 가라앉기도 하다가, 급발진을 하기도 한다.
전시상황과도 같은 내 마음의 상태는, 상대방에게 전혀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 사람에게는 언제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상대방의 자유가 나를 괴롭고 작아지게 만든다.
사랑이란 언제나 자발적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타의에 의해 결론지어지는 것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김수희 - 애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