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형, 저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퇴사했어요. 그리고 블루보틀 면접도 봤는데, 합격했어요."
예전에 술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말했다.
"아, 그래? 진짜 축하한다. 난 무조건 응원이지."
그 동생은 퇴사 후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이라며, 일본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시간 언제 되세요? 형한테 듣고 싶은 얘기도 많고, 얘기 좀 나누고 싶어요."
우린 금방 날짜를 정했다. 처음에 약속했던 날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곧 다시 시간을 내어 만났다.
이 동생의 본가는 나처럼 의정부에 있고, 직장 때문에 성수동에서 자취 중이다. 술과 안주를 준비해뒀다고 해서, 나는 편의점에서 캔맥주 네 캔과 얼음컵만 사서 가기로 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편의점 옆 버스정류장에 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을 많이 자지 못했던 터라 카페인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무려 5000원에 육박하는 개인 카페의 아메리카노를 사주었다. 내가 이 친구를 형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골목 안, 그 친구의 자취방이 있었다. 겉보기엔 외진 곳처럼 느껴졌지만, 내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감각이 세련된 친구답게 집은 깔끔하고 예뻤다. 위스키와 사케 등 다양한 술도 있었고, 치킨도 미리 주문해두었다. 우리는 캔맥주로 가볍게 시작했다.
컴퓨터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키보드가 어디서 본 듯해서 물어보니, 내가 예전에 쓰던 모델과 같은 걸 샀다고 했다. 그 키보드는 기계식 저소음 적축 키보드인데, 키를 누를 때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아주 조용한 모델이다. 누를 때의 감촉은 뻑뻑한 듯 부드럽고, 소리도 서걱서걱 조용하면서도 어딘가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다.
보통 기계식 키보드 하면 떠오르는 건 찰칵찰칵 소리가 나는 청축인데, 그건 PC방에서 많이 쓰는, 누르면 확실히 존재감 있는 소리가 나는 키보드다. 처음엔 그 소리가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몇 번 눌러보다 보면 금방 질리고, 무엇보다 밤에는 시끄러워서 굉장히 신경쓰인다. 예전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 나에게 왜 하필 저소음 적축을 쓰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내 대답에 분위기가 싸해진 적이 있다.
"저소음 적축은…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상황에서 살짝 새어나오는 소리 같은 느낌이야. 그 소리가 좋아."
내가 봐도 이상하긴 한데, 이상한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변태새끼라며 욕을 했지만,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는 그 말을 긍정한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이 친구와는 대화 주제가 참 다양하다. 영화, 음악, 종교, 정치처럼 가벼운 이야기도 하고, 언제든 깊은 이야기로 전환되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사이. 그러던 중, 그 친구의 포트폴리오를 구경하게 됐다.
그 친구가 다닌 곳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였다. 그런 쪽에서 일한다는 것을 막연히 알고있는 정도였지, 실제 결과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롯데리아, 블루보틀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포트폴리오의 구성 자체가 하나의 내러티브였다. 신입사원이던 시절,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해내던 단계에서 시작해 점차 더 깊고 넓은 눈을 갖춰 나가는 성장의 과정이 구성의 중심이었다.
친구는 하나하나 설명해주었고, 나도 그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내가 느끼기엔, 클라이언트가 추상적이고 간단하게 원하는 방향만 제시해도, 이 친구가 속한 회사는 그것을 구체화해 내는 역할을 하는 듯했다. 그 과정에는 디자이너들만의 미적 감각과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PPT의 분량도 엄청났다. 프로젝트 하나당 150~200장에 이르렀다. 예상보다 훨씬 높은 퀄리티에, 나는 잠시 압도당했다.
이 친구의 연봉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액수였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봐온 결과물들의 퀄리티를 떠올려보니, 충분히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는 늘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왜 그랬는지 그제야 제대로 이해가 됐다.
방대한 양의 작업물 안에는 세심한 디테일이 숨어 있었고, 전체 구성도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보기 좋게 정리돼 있었다. 게다가 그것들을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줄 수 있다는 건, 이미 머릿속에 체계적인 구조가 잡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물은 ‘몰입’이라는 단어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억지로 하거나, 단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에서는 그런 깊이나 디테일이 나올 수 없다. 디테일은커녕 기본적인 완성도조차 위태로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몰입이 없는 작업물은 금세 티가 난다. 구성은 엉성하고, 설명은 어설프며, 무엇보다 ‘왜 이렇게 했는지’에 대한 대답이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몰입해서 만든 결과물은 다르다.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도 이유가 있고, 그 흐름 속에 일관된 방향성과 감각이 살아 있다.
누군가의 몰입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은 없다. 그 몰입의 결과물은 그 사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고, 그 안엔 그 사람만의 고유한 향이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날, 사케를 따라주며 이 동생이 말했다. “이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술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나는 호불호 갈리는 거 좋아해.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건 별 의미가 없잖아.
호불호가 갈리는 것들 중에서 선택한 게 진짜 자기 취향이지. 그리고 그런 취향들의 모음이 그 사람을 만드는 거야. 아무 생각 없이 유행이나 다수의 의견에만 편승하는 것만큼 매력 없는 게 없어.”
진정 중요한 몰입은, 세상 사람들이 다 중요하다고 해서 나도 따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 예를 들어 시험이나 돈을 버는 일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 눈엔 별 의미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유난히 중요한 것. 나도 모르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일. 그것에 푹 빠져 있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 그렇게 나를 잠시 무아의 지경에 데려다놓는 무언가, 그것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몰입일 것이다.
이 친구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 또 다른 몰입을 위해 떠났다. 커피에 관심이 생겨 자신이 관심을 두던 카페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받는 월급의 반도 안 되는 급여와, 처음부터 힘든 일부터 해야 한다는 면접관의 말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했고, 지금 그가 내린 결정이 충분히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잘했어. 뭐 저 정도 포트폴리오면 나중에 다시 다른 직장 구할수도 있을 것도 같고. 현실적으로 돌아갈 곳도 있는 것 같네. 어쨌든 진짜 중요한 건 니가 가진 걸 내려놓고 니가 가고자 하는 다른 곳에 갈 수 있느냐는 거거든. 보통은 무서워서 못해. 그 시간 동안 손해 본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사람은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보수적으로 변하는 거야.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執着이기도 하고. 내려놓지를 못하거든. 근데 잘 알아야 되는 게 무언가를 놓아야 무언가를 잡는거야. 그러니까 무언가를 놓는다는 거는 더 큰 것을 잡기 위함이라고. 무언가를 잡지 않더라도 그 해방감이 더 큰 행복을 준다면 그것도 더 큰 것을 잡은거나 마찬가지잖아.'
나는 계속 말했다.
"사람들은 너보고 욕할수도 있어. 안정적으로 연차 더 쌓아서 더 연봉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왜 그런짓을 하냐고. 넌 심지어 일본 유학까지 생각한다며. 근데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데 내려놓지 못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삶도 없는거야. 죽을때 보면 자기가 진짜 별것도 아닌 것들에 지나치게 쫄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있다고.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행복이 별 거 없다고 하잖아.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것들의 병적인 축적에서 발생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거야.
처음에는 자기의 행복을 찾아서 사는 게 힘들어. 어떤 사람들은 너보고 용기있다고 할 거야. 부러워 한다고.
자기는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못한다고 말해. 근데 용기가 있어서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야. 내가 무언가를 저지르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용기가 있다고 하는거지. 그건 전후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하는 거야."
사실 이건 내 자신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주 많이 좋아졌지만 나 역시 겁이 많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긍정한다는 것은 꽤 많은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일이다. 사회적 기준, 남들의 시선은 우리를 자꾸 건드린다 '너 그거 하면 안돼' , '다 너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 등 어렸을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 이야기들은 우리 자신 안에도 깊이 스며들어 내면화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검열 이라는 문턱을 넘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긍정하며 사는 순간, 사람들과는 꽤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주변에서는 항상 걱정과 만류를 달고 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안다. 자신의 감정을 긍정하기 위해, 남들에게 욕을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건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마 이 친구는, 내가 이런 말들을 해주길 내심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신의 감정을 긍정하려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기 때문이다.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인데,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나라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쓰던 비유나 표현들을, 어느새 본인도 자주 쓰게 되었다고 하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정말 황홀한 일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친구의 결정과, 그 몰입의 세계를 지켜보며 깨달았다.
내가 왜 이 무더위 속에, 잠 한숨 제대로 못 자고도 기꺼이 이 친구를 만나러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고민의 겨를이 없는 관계. 그런 관계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생겨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