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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도청기

<마음 휠체어를 타는 사람 2>

by 세공업자

"20년 전 병원에서 도청주사를 놓았어"

"그때 머릿속에 도청기를 심어 놓은 거야"

"계속해서 머리를 도청하고 욕을 하면 어떻게 해"


형의 진지한 말은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아니라고 하기보다는 병증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형의 머리는 극도로 예민하여 아주 작은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 있겠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마음과 경계성지능장애까지 합세한다면 불안정성은 더욱 증가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신병은 부정적인 마음과 불안정한 정신 상태도 있겠지만 뇌의 이상에서도 온다고 한다. 뇌질병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도 뇌의 구조와 반응이 일반인들과 다르다고 하듯 정신병자들의 뇌 또한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뇌의 장애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뇌구조와 기능이상이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하다 보니 약을 꾸준히 복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 형은 정신병이 언제 낫느냐고 물어온다. 정신병보다는 뇌의 병이 있어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는 편이 형에게 훨씬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

20250112_102506.png 네이버 자료 참조

형은 혼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나라에 혼자 사는 가구수는 35%가 넘는다고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럴 땐 형은 마치 어디 딴 세상에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그 진지함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 같아 보였고 진심으로 믿는 것 같았다. 형의 세계에만 있는 조상택과 김문식이란 사람들이 머릿속의 도청기를 통해 24시간 도청하고 감시한다고 믿는다. 형의 이런 태도는 형의 유일한 가족인 나와 와이프(제수씨)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혼자 살기에 무시당한다고 하면서 혼자살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형은 현실의 다른 사람들과 있는 동안에도 형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감하고 치열하게 다툰다.


상식적으로 봐도 머릿속 뇌에 도청기를 심을 수 있을까? 의학과 AI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미치지 못한 기술이 형의 세계에서는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형을 경계성지능장애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형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기술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형에게 물어본다.


"뇌에 도청기를 어떻게 하면 심을 수 있어요?"

"도청액을 주사하면 되지!"

"도청액? 도청액을 어떻게 주사해요?"

"팔에다 도청액을 주사하면 그게 뇌로 올라가!"

"그게 가능해요?"

"20년 전에 병원에 갔을 때 그렇게 당했어! 그게 아직도 남아서 도청당하는 거야!"

"그게 가능해요?"

"귀에서 소리가 나서 병원에 갔더니 제거해 줬어!"

"그럼 없는 거잖아요!"

"잠잘 때 또 심어놓은 거야!"


형의 진지한 말에 아니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부정하는 순간 부정성은 극대화되어 현실을 혼란하게 만든다. 형의 세계에서는 존재하는 현실이기도 한 것이기에 우리의 현실에서 힘듦을 겪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형의 머릿속 도청기는 지금도 작동하고 있으며 형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들도 도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형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중간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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