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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울 미美

<동행, 마음 휠체어를 타는 사람 2>

by 세공업자

아버님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형은 집안의 장남으로써 어린나이에 세대주가 되었다. 어머님도 장남인 형에게 많이 의지하셨던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나거나 든든한 뒷배가 필요하시면 형과 동행해서 같이 가기를 원하셨고 형의 역할은 그냥 어머니 곁에 서있거나 머물러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언젠가부터 어머님은 형과 동행하자는 말씀을 안 하시기 시작하셨다. 형이 성장하면 더욱 든든하셨을 텐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은 왜 어머니가 같이 가자고 하는지도 이해 못 했을뿐더러 같이 동행해도 어머니 곁에 가만히 있지를 못한 것이다. 든든해야 할 내편이 챙겨야 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던 것이다.


어릴 적 형은 나에겐 우상이었다. 형은 구구단을 척척 외웠고 기다란 막대에 번쩍이는 원형의 커다란 추가 달린 괘종시계의 큰바늘과 작은 바늘을 보곤 시간을 척척 알려주었다. 어린 나는 형에게 어떻게 저걸 보고 시간을 아느냐고 물었고 형은 그것도 모르냐며 놀리기 일쑤였었다. 무엇보다 형은 책도 곧 잘 읽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글을 잘 읽지 못했었다. 어느 날 책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말문이 열리듯 책이 읽히기 시작했다. 구구단도 3학년이 되어서야 원리를 알고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갔다. 내게 형은 우상 그 자체였다. 그런 형의 학교 성적은 대단했었다. 내게 기억하는 형의 성적은 '양과 가'가 대부분이었다. 1,2등을 다툰 것이다. 뒤에서...


형은 학교에서도 말썽꾸러기로 유명했고 크고 작은 사고에 빠지지 않았었다. 몸이 건강한 형은 활동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의 '양과 가'성적은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그러는 줄만 알았다. 어느 날 어머님이 성적표를 보시고는 크게 놀라셨다. 아름답게도 '美'가 있었던 것이다. '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체육이었다. 체육의 실기점수를 만점 맞았던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장애인활동보조 조사관이 방문했을 때 형의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듣던 조사관은 내게 형의 지능지수를 물어왔었다. 그때 깨우친 게 형이 경계성지능장애라는 사실이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에도 경계성지능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의 고충이 그려진다. 형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도 남들보다 2배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경계성지능장애의 지능지수가 나온다.

우린 모두 경계에 서 있다(드라마 대사)

요즘 라디오방송에서 나오는 '위드 슬로우 스타터 캠페인'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조금은 느리지만 사회에 구성원으로서 함께 경제생활을 해 나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존중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당사자들이 본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해 줄 수 있는 주변사람들의 도움이다. 형은 애매하게도 지능지수가 그 경계에 있는 것이다. 형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주변탓을 하기 일쑤였다.


형은 나와의 이해 못 할 상황에 처하면 말버릇처럼 했던 말은 "내가 네 형이야"라는 말과 함께 폭력이었다. 형은 어려서 세대주가 되어 형식상 가장역할을 했었다. 이게 독이 된 것이다. 형은 가장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는데 누리는 것만 생각했던 모양이다. 도통 주변의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했고 자기 하고 싶은 데로만 했다. 형의 말썽에 어머니가 얼마나 속이 썩으셨을지... 어머니가 가끔 하시던 "니 애미 잡아 쳐 먹어라"라는 말씀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아려온다.

드라마 경계성 지능장애 학생이 꿈과 가까운 공항에서 실습 중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경계성지능장애 학생은 항공기 조정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자해를 한다. 다행히도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항공기가 있는 공항으로 실습을 나가게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가 됨으로써 자해를 멈추고 즐겁게 생활하게 된 것이다.

형은 튼튼한 몸을 타고 나 운동을 잘했다. 특히 장거리 달리기를 잘한다. 그리고 또 하나, 골동품 수집을 좋아한다. 형에게도 아름다운 '美'가 있는 것이다. 정신과 치료는 꾸준히 받고 있어 안정감이 있지만 몸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형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때인 것이다. 꿈은 이룸의 결과보다는 이뤄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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