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마음 휠체어를 타는 사람 2>
명절이 되면 평소 못 보던 가족들을 만나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내며 어울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상상된다. 아내는 형님과 아주버님이 잘 대해 주는 편이기도 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이 세상 모든 며느님들이 겪는 명절증후군이 아닐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그해 설, 모처럼 온 가족이 우리 집에 모였다. 온 가족이라고 한다면 우리 부부와 아내의 형님(나에겐 누나)과 아주버님(나에겐 형님)이다. 형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누나는 그런 형에게 아직도 기대감이 있는지 왜 저러고 사는지 영 못마땅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은 외관상 어디 불편해 보이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 그런 형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대화를 나눈다면 어디가 이상하다는 부분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앞뒤 맞지 않는 말들과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들은 금방이라도 분위기를 다운시키기에 충분하고도 과해서 넘쳐난다. 그날도 살얼음을 걷듯 차례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깨졌다. 형은 차례상에 절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형의 말에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형은 귀신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다.
귀신들이라면 부모님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형의 갑작스러운 말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형과 누나는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어려서 아버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 내게 형은 아버지 같았고 남자로서 우상이었다. 그런 형은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고 놀이에서도 따돌렸다. 그래도 형은 언제나 든든한 형이었다. 부모님을 기억하는 추억이 많은 형의 귀신이라는 표현은 마음의 걸림이 되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부모님을 어떻게 귀신이라고 할 수 있어?"
"부모들이 해준 게 뭔데!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죽었잖아!"
"사고로 돌아가신걸 어떻게 하라고!"
"가난하게 살다 죽은 거지 같은 귀신들에게 무슨 절을 해!"
"뭐?"
나는 형의 말을 듣고 잘못 들었나 싶어 순간 시간이 정지한 듯 멍해졌다.
"뭐 가난하게 살다 죽은 거지 같은 귀신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형에게 되물었다.
그때 누나가 벌떡 일어났다.
"뭐 이 새끼야! 거지 같은 귀신이라고! 부모님이 널 낳아 장남이라고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그딴 소리를 해!"
누나는 형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 틈이 없었다.
"뭐 이 새끼야 다시 한번 말해봐"
"이거 안 놔, 아이 C발"
형도 질세라 머리끄덩이를 잡은 누나손목을 비틀었다. 누나도 밀리지 않고 다른 손으로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나는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두 사람은 힘이 장난 아니었다. 나는 급히 형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와 차에 태웠다. 형을 태우고 무작정 달렸다. 형에게 그런 소리를 혹시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다. 형은 그렇다고 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고 물으니 형은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형이 앓고 있는 병이 정신병이라는 것을 말이다. 형을 형집에 데려다 놓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누나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는 심각한 얼굴로 손이 이상하다고 했다. 손목이 화끈거리며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고 했다. 순간 형이 누나의 손목을 비틀던 장면이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나는 기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이 부분은 누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뼈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지 심각했다. 누나를 데리고 응급실을 찾았다. 아니... 설명절에 그것도 자정이 넘은 새벽에 응급실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깜짝 놀랐다. 누나의 손목은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어 3주 깁스 정도면 치료될 것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때 서로 치고받고 하던 기억이 나서였다.
"와~ 두 사람 힘이 장난 아니던데!"
"쌍놈의 새끼가 지 부모한테 그러면 안 되지!"
"아프잖아! 정신이 아픈 건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
누나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힘없이 말문을 열었다.
"알아! 아는데... 그게 잘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