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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노동자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

by 세공업자

형은 음식에 좀 예민한 편이다. 솔직히 말해 예민함을 넘어 광적인 부분이 있다. 제수씨인 와이프가 음식을 정성껏 해서 가져다주면 먹지 않고 냉장고에 가만히 두기만 한다. 남이 해다 주는 음식은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형은 애석하게도 맛난 음식을 제대로 즐길 질 모른다. 형의 냉장고에 열고 닫히는 틈사이에는 항상 청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누군가가 냉장고를 열었었는지 알아보기 쉽게 표식을 해 놓는 것이다. 누군가 냉장고를 열어 청산가리나 신너를 타지 않았을까 항상 조심하고 또 의심한다. 생수와 김치 또한 마트에 가서 본인이 직접 사서 먹어야 한다.

"김치맛이 이상해!"

"김치! 김치가 이상할게 뭐가 있어요?"

"근데 김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니까!"

"어떤 냄새가 나는데요?"

"누가 신너를 탔는지 신너냄새가 나!"

"신너!!!"

"못 먹겠어! 누가 나를 죽이려 하는 것 같아!"

"그럼 먹지 말고 그냥 놔두세요! 내가 가서 먹어보게"


형이 보는 앞에서 형이 건넨 신너가 들었다는 김치를 한입 먹어본다. 적당히 익은 김치의 새콤한 감칠맛이 입안 가득 풍긴다. 김치가 맛있다. 형은 이 새콤한 맛을 신너맛이라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김치가 참 잘 익어서 맛있다며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다. 형은 괜찮냐고 물어온다. 난 괜찮다며 김치는 내가 싸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형은 좋다며 가져가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신너가 들어간 김치는 내가 가져와 아내와 잘 먹었다.


형은 공부에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었다. "아름다울 미"에서도 언급했듯이 형은 학교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성실하게 하거나 꾸준히 하지도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동네형이 운영하는 자동차공업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차량외관을 복원하는 도장파트에서 일을 했었는데 신너가 빠져서는 안 되는 작업들이 많았었다. 이때 신너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들었고 그때부터 신너에 알레르기가 생겼는지 신너 근처에도 가질 않으려 했다. 물론 일도 얼마가지 못해 그만두었다. 그때의 신너 트라우마가 지금껏 따라다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에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연말에 형과 함께 동사무소에 들러 짧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낯가림이 심한 형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하나 더 만드는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사회복지사분은 이번에 라면이 들어온 것이 있는데 20봉 정도 드릴 예정이라고 하며 지난번 김치는 잘 드셨는지 궁금해하셨다. 나는 감사하게 잘 먹었다고 했다. 별 다른 일은 없었냐는 말에 형이 김치에서 신너 냄새가 난다고 해서 애 좀 먹었다고 했다. 애써 챙겨드린 김치에서 신너냄새가 난다고 했느냐고 물어오길래 아차 싶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자신의 직무이기도 하지만 우선 사람이 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복지사로서 신중하게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애써 챙김을 받는 사람이 고맙게 그 마음을 받는다면 그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신너냄새가 난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우리는 흔히 '감정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복지사라는 직무 또한 난이도가 높은 감정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눈이 많이 오는 흐린 날씨라 사회복지사분은 형의 컨디션을 물어왔다. 맞다! 형은 궂은 날씨엔 더욱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다. 날이 좋을 다음날 형이 자신을 찾아오면 챙겨 드리겠다고 했고 만약 자리에 없다면 다른 직원분들이 잘 챙겨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형과 같은 경우 허탕을 치게 되면 쉽게 상처받는 경우라 일일이 세세하게 배려를 하신다. 난 그저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다음날 형은 무사히 라면을 받아왔다.


형은 라면을 맛있게 잘 먹었을까? 정신장애인의 돌봄 또한 난이도가 높은 감정노동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복지사분은 내게 '성격 좋은 동생분'이라고 하신다. 내가 처음부터 '성격 좋은 동생분' 이였을까? 형이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형을 돌봄 하는 고행의 과정에서 생긴 사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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