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3>
형과 만나면 종종 들르는 한식당이 있다. 그곳에 자주가게 되는 이유는 주문즉시 따뜻하고 구수하게 밥을 지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밥 짓는 냄새는 정겹고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배어 나온다. 한마디로 그냥 편안한 냄새다. 밥이 되어지는 시간에 형과 대화를 나눠서도 좋다. 머리를 깎아서 단정해 보인다던지 부지런해야 건강하다던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생활하라던지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나는 형에게 복권은 잘 맞았느냐고 물었다. 형은 두 자리를 맞췄다고 한다. 다음번엔 세 자리를 맞춰보라고 했더니 잘 안 맞는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식사가 나왔다. 1인용 스텐솥의 뚜껑을 여니 구수한 밥냄새가 뿌연 김과 함께 솥의 요정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얀 밥알갱이들을 숟가락에 떠 밥그릇에 담으니 더욱 맛있는 냄새가 올라온다. 솥에서 밥을 덜어 밥그릇에 옮기던 형이 한마디 한다. '밥이 탔어!' 잠시 침묵이 흘렸다. 이내 진지하게 '불합격!'이라고 하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까지 편안하고 따뜻했던 분위기가 싸하게 차가워지는 순간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맞은편에 놓여있는 형의 밥솥 안 누룽지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밥이 많이 눌었지 새까맣게 타지는 않았다. 내 기준으로는 물을 붓고 숭늉으로 먹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는 상태였지만 형의 기준에는 참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tv에서 가끔 보던 '고독한 미식가'가 떠올랐다. 형은 '고독한 미식가'일까? '까다로운 미식가'일까? '예민한 미식가'일까? 이 상태로 있다가는 형은 자신의 세계에 몰입되어 여러 가지 부정적이 상념에 빠져 기분 좋은 식사를 하기 힘들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자신을 무시해서 밥을 태웠다고 할지도, 타서 못 먹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형의 밥솥을 가져다 내 자리에 놓고는 내 밥솥의 누룽지는 괜찮다며 형의 자리에 놓았다. 두 솥에 따뜻한 물을 붓고는 뚜껑을 닫았다. 형의 기분이 금세 밝게 돌아왔다. 실은 누룽지의 상태는 내거나 형 거나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맛있게 식사를 했고 구수한 숭늉으로 마무리를 했다.
지난여름엔 모처럼 와이프와 삼 남매가 모였다. 우리는 맛있는 거 먹자는 누나의 안내에 따라 고깃집에 들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도가니를 여사장님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궤적을 그리며 테이블 중앙에 넣었다. 우리는 거침없이 불을 다루는 여사장님을 향해 와~탄성을 질렀다. 여사장님은 벌 것 없다는 듯 장사 십수 년 해보면 일도 아니라고 하신다. 숯불 위의 석쇠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갔고 분주하게 젓가락이 오가며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형의 젓가락만 고요하게 움직임이 없었다. 왜 안 먹느냐는 말에 형의 대답은 "탔잖아"였다. 분주하게 오가던 젓가락들이 시간이 멈춘 듯 일순간 정지되었다.
나는 고기를 집개로 들어 그으른 끝단 부분들을 가위로 다듬어서 앞접시에 담아 형 앞에 놓았다. 그제야 형이 고기를 집어 미쉐랭 평가단처럼 입에 넣었다. "맛있어" 형의 이 한마디에 멈췄던 젓가락들이 불판을 분주하게 오가면 지글지글 분위기가 맛있게 익어간다.
고깃집 여사장님이 십 수련 불을 다뤘듯 나는 형을 수십 년 경험해 왔다. 형의 말과 행동들이 평범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겠지만 내게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형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힘들 수 있겠지만 고기의 그으른 부분들을 다듬듯 조금만 다듬으면 제법 평범해지기도 한다. 뭐 그렇게 까지 해줘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형의 눈높이에선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며 사람다워지는 학습을 한다. 학습을 통해 인간다워진다고 해야 할까! 반면 기본적인 부분도 쉽게 학습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형도 이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된다. 형은 사람관계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는 경우들이 많다. 예를 들어 같이 길을 걸을 때 혼자 떨어져 간다거나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때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평범한 말을 잘 이해 못 하기도 한다. 이럴 땐 감정이 상하거나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형은 보이지 않는 마음휠체어를 탄다는 것이다.
이럴 땐 형의 마음을 챙기면 된다. 멀찍이 떨어져 걷는 형을 다정하게 불러 같이 가자고 하고 대화의 주제를 잃지 않고 이어가거나 이해가 어려운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 천천히 반복할 수 있으면 된다. 형의 속도에 맞출 수 있는 내가 보폭과 마음을 조절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