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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마음

<동행, 마음 휠체어를 타는 사람 2>

by 세공업자

일요일은 누구나 쉬고 싶은 날이다. 이 하루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쉬는 날이기에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평일 직장에 매여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기다려지는 날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요일 아침 잠깐 봐주기로 한 수리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처음 의뢰했던 상황들은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면 다른 부분들이 제법 많다. 몇몇 일들 중 샤워수전을 갈아주면 되는 일이었는데 하필 선반형이라 수평을 맞추고 타일을 뚫고 달아야 하기에 시간이 더욱 많이 지체되었다. 이러다간 인천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과의 약속시간을 넘기게 생겼다.


마음이 바쁜 터라 보호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했다. 장갑은 손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섬세한 작업을 할 때는 거추장스럽고 둔해 작업속도가 나질 않는다. 정신없이 조립을 하고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흐르는 물줄기에 붉은 물이 석여 흐른다. 아차 싶어 손끝을 살피니 서둘다 부품들에 스치면 베인 곳에서 붉게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뭐 흔한 일이라 신경을 쓰지 않고 인천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가락 끝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잡고 있던 운전대에 끈적끈적 피가 묻어 나온다. 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형은 만나자마자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꿈도청을 해서 잠을 푹 자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tv를 볼 때마다 이거는 어떻고 저거는 어떻고 간섭을 하고 욕설을 해댄다고 했다. 형은 식사를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인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식사 후 우리는 간단하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오른쪽 검지가 결린다며 가리켰다. 문득 아까 작업하다 베인 상처가 생각이 났다. 형에게 베인손가락을 보여줬다. 여기 오기 전 급하게 작업하다 베인 것이라고 말했다. 형이 깜짝 놀란다. 나는 더욱 엄살을 부리며 쿡쿡 쑤시고 아리다고 했다. 형은 약을 발라야 한다고 한다.

형은 테이블 위에 있던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집어 들고 발라야 한다며 건네준다. 형에게도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형은 뚜껑을 열고 잠시 망설이다 바르라고 건네준다. 상처를 감 쌓는 밴드도 포장을 뜯고 붙이라고 건네준다. 형은 내게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옮겨 올까 봐 벌써부터 경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연고를 상처에 발라주고 밴드를 뜯어 상처 위를 감싸주진 못한다. 형은 작은 상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작은 생채기라도 나면 아프다며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고통스러워한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상처를 대비해 상비약을 구비하고 언제든 바를 수 있도록 준비한다.


나는 이런 작은 상처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무는 게 상처이기 때문이다. 작은 생채기는 집중하면 아프고 쓰려 불편하고 커 보이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잊고 있는 동안 금방 아물기도 한다. 형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형과 함께 같은 일을 해도 형은 금세 환자가 되어 있지만 나는 멀쩡한 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도 아프다. 일을 하고 나면 결리고 아픈 곳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시간이 지나야 사라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형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생각될 때가 있었다. 몸을 쓰며 생기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파스를 붙이고 약을 바르고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을 쓰고 생기는 통증은 강해지기 위한 명현과도 같기에 단련된 몸은 그 자극에 더는 심한 통증이 생기지 않게 되기도 한다. 형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생기는 불편함은 약을 먹고 바르며 해결하려 한다.


형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아프고 쓰린 곳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나도 형에게 아프고 결리고 쓰린 곳이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일하다 생긴 생채기를 보여주고 장시간 운전하다 결리는 어깨가 아프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고된 일을 하다 주저앉은 어깨가 아프다고 엄살을 떨며 좀 주물러 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형은 어깨를 만저보더니 "딱딱하게 굳었네" 하면 놀라워한다. 잠깐 거칠게 주물다 힘들다고 그만두면 좀 더 해보라고 엄살을 부려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의 이런 불편함을 말하기 시작하면서(엄밀히 말하면 엄살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형의 병적이던 예민함이 조금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형이 여기저기 아프고 불편하다고 짜증 내며 강하게 말할 때 자칫 "나도 그래! 다 그렇다고!"라며 강하게 대하면 형은 더욱 화가 심해지며 역효과가 난다. 우선 형의 말을 잘 들어주고 나의 아픔을 다정하게 말해주면 형도 공감하기 시작한다. 강하게 경직된 마음에는 오히려 다정한 마음이 통하고 치유되는 것이다.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프다. 내게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당신도 불편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표현하지 않으면 "나만 그런가"!라는 어두운 마음의 벽이 형성된다. 어두운 마음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밝음이 불편해 질수도 있다. 소소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어둡고 불편한 마음을 나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다정한 말과 부드러운 스킨십이 명약보다 더 나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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