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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

by 세공업자

같은 아파트에 몇 년간을 살아도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낯선 사람을 만난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니 그 사이 이사를 왔을 수도 있겠지만 그전부터 거주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 안에 있는 짧은 순간이지만 약간은 어색한 시간이 존재한다. 멀뚱멀뚱 광고모니터를 바라본다거나 올라가고 내려가는 층수 숫자를 바라보기도 한다. 내릴 때도 어색한 느낌은 마찬가지다.


이럴 땐 먼저 낯선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를 한다. 단지 인사만 했을 뿐인데 어색한 분위기는 많이 없어진다. 상대방이 인사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왠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한다면 당황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상대방이 먼저 내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오는 행운이 있을 수도 있겠다.


형은 엘리베이터나 외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인사를 해보라고 하면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받지 않는 것으로 봐서 좋아하지 않거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서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자신을 도청하는 사람들이 알려준다고 한다. 형은 이렇게 상한 기분으로 하루를, 여러 날을 보낼 수도 있겠다.

요즘은 형에게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워볼 것을 권한다. 형은 털이 날린다, 냄새가 난다, 똥을 싼다 등 불편한 부분을 나열하며 강하게 거부한다. 서로 의지하며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형은 어떤 것에 책임을 지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외롭지 않으려면 반려동물이든 사람이든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해도 잘 이해가 가질 않는 모양이다.


형에게 방문할 때는 가끔은 와이프와 동행한다. 아내는 형이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다. 제수씨가 맛있는 밥을 사달라고 하면 형은 우쭐하며 책임감을 갖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의지가 생긴다. 그 순간만큼은 챙김을 받아야 하는 돌봄의 대상이 아닌 남을 챙기고 돌보고 책임지는 사람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 일은 형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갖는 일이다.


형에게 부탁할 일은 많지 않겠지만 형의 위치에서 책임감을 갖고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형이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열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형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책임 지는 일이 있을 때 자신감과 활력이 생겨 정신건강에도 좋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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