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풍미
오후의 햇살이 부엌을 따뜻하게 물들일 때, 정육점에서 막 가져온 등뼈의 무게가 손에 묵직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물에 등뼈를 담그니 맑은 물은 서서히 붉게 변했다. 식초 두 스푼을 넣고 조용히 기다린다. 핏물을 빼는 시간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그러하듯, 묘하게 정적이 감돈다.
베란다 문을 열어두니 들어오는 바람이 미세하게 커튼을 흔든다. 물속에 담긴 등뼈를 바라보며 손끝으로 둥근 도마를 쓸었다. 오랜만에 떠오른 감자탕의 기억은 구수한 국물이 입안에 감기 듯 혀끝을 간질인다. 칼날로 생강을 얇게 썰며, 언제부터였을까, 생각에 잠긴다. 기억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의 감정만은 여전히 생생하다.
뼈에서 핏물이 다 빠지기를 기다리는 두 시간, 기다리는 동안 양념을 준비한다. 된장을 풀고, 고추장을 녹이고, 다진 마늘과 생강의 향이 부엌에 퍼진다. 시간은 흐르고, 재료들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하얀 그릇 위에 고춧가루가 붉은 물결을 만든다. 홀로 요리하는 시간은 생각의 짐을 내려놓고 명상을 하게 된다. 칼질하는 손과 달리, 마음은 자유롭게 흘러간다.
곰솥에 물을 붓고 불을 켜자, 수면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에 등뼈를 조심스레 넣었다. 첫 만남은 늘 조심스럽다. 물과 뼈가 만나는 순간, 작은 거품들이 표면에 하나둘 떠올랐다. 과거의 찌꺼기가 떠오르는 것처럼 국물이 끓기 시작하자 탁한 거품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끓인 물은 탁하다. 뼈에서 불순물이 우러나와 국물을 흐리게 만든다. 첫 번째 국물은 버려야 한다. 뜨거운 물에 잠시 익힌 등뼈를 건져내 찬물에 담갔다. 순간 물 표면에 퍼지는 기름의 무늬가 만화경처럼 아름답다. 마치 기억 속 불필요한 상처를 씻어내듯 등뼈를 손으로 가볍게 문질러 남은 불순물을 씻어낸다.
새 곰솥에 깨끗한 물을 붓고 씻은 등뼈를 다시 넣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다. 깨끗해진 뼈는 진정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기억의 문이 열리는 듯 냄비 위로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둥근 테이블을 둘러싼 그릇 소리, 국물을 수저로 떠먹는 소리, 웃음소리는 기억의 가장 강력한 문지기다.
다시 끓기 시작한 국물에 생강과 마늘을 넣었다. 지금부터는 기다림의 시작이다. 오래전 차가운 겨울날, 바깥의 추위를 잊게 했던 그 온기를 떠올리게 하듯 코끝을 뜨거운 김의 향기가 스쳤다. 뚜껑을 덮고 중 약불로 천천히 끓인다. 사람이 삶에서 정말 배우는 것은 느림의 가치가 아닐까. 첫 번째 물을 버리고 두 번째 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삶에서 필요한 정화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맛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 아래 숨겨진 세계가 드러나듯 냄비 뚜껑을 들어 올렸다. 끓는 물속에서 춤추는 재료들, 마치 사람들이 인연의 끈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처럼 물 위로 떠오른 기름방울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한 시간이 지나자 국물이 서서히 뽀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또는 흐릿한 기억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남은 거품을 거품기로 걷어내는 동작이 마치 마음속 쓸데없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명상과도 같다.
생각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큰 목소리로 농담을 주고받던 순간들, 국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아, 이맛이지!" 라며 고개를 끄덕이던 표정들, 함께했던 식탁 위로 퍼지던 온기, 추억은 향신료와 같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맛이 아니다. 적당한 양의 기억이 삶의 맛을 낸다. 칼날이 도마 위에서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내듯 감자를 깎아 네모나게 썰었다. 그 소리는 문득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익숙한 리듬은 마치 함께하는 시간이 우리를 비슷하게 만드는 것처럼 도마 위의 감자들은 모두 다른 크기지만, 같은 냄비에 들어가 함께 익어간다. 콜라겐이 녹아들어 우윳빛을 만들어내듯 국물이 이제 완전히 뽀얗게 변했다. 베란다 창문에 서서히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밖과 안 사이의 온도 차이가 만들어내고 손가락으로 습기 찬 창문에 작은 원을 그렸다. 원 안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이 왜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걸까.
무를 썰어 냄비에 넣으며 잠시 멈칫했다. 누군가는 무를 좋아했고, 또 누군가는 감자를 발라 먹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각자의 취향이 모여 하나의 식탁을 이루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이제는 그 취향들을 기억해 줄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없지만, 마치 의식처럼, 혹은 침묵의 대화처럼 여전히 모든 재료를 넣는다.
마치 편지의 끝에 이름을 쓰는 것처럼 마지막 준비를 했다. 나의 흔적, 나의 손맛, 나의 기억이 모두 이 국물에 녹아든다. 그렇게 모든 요리는 조금씩 다르다. 같은 이름의 요리라도, 같은 손에서 만들어진 요리라도, 오늘의 감자탕은 어제의 그것과 다르다.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니 뽀얀 수증기가 얼굴을 감싼다. 눈을 감으니 그 온기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화기애애했던 대화, 밥공기를 비우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던 소리, 젓가락을 부딪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기억은 묘하게도 온도를 가지고 있다. 그날의 온기, 그 손의 온도, 그 목소리의 따스함이 선명하다.
포크로 찔러보니 쉽게 관통하듯 감자가 부드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날카롭던 모서리가 시간에 의해 닳고 마모되어 이제는 쥐고 있어도 아프지 않은 형태가 되었다. 국물이 서서히 깊은 맛을 내기 시작했다. 푹푹 끓으며 콜라겐이 녹아들어 국물에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 마치 시간이 우리의 마음도 숙성시키는 것과 닮았다.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깊어지는 육수처럼, 삶의 순간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십여 년을 함께했던 기억들과 헤어지고 나서야 관계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중간중간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 너머로 조금씩 기울어가는 해. 모든 것은 변화하는데,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려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뼈에서 천천히 우러나오는 맛처럼, 지나간 순간들의 의미도 서서히 내 안에서 우러난다. 불과 몇 개월 전에는 아파서 바라보지 못했던 기억들이 이제는 따스한 추억으로 변해 있었다.
간을 보기 위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올렸다. 맛은 혀끝에서 시작해 목구멍을 타고 가슴까지 내려간다. 소금을 조금 더 넣으며 생각했다. 상실의 고통은 시간이라는 연금술사의 손에서 서서히 지혜와 깊이 있는 회상으로 변한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픔이 의미 있는 부재로 바뀌는 과정이 요리와도 닮아있다.
햇볕이 서서히 부엌 창틀에서 사라져 갔다. 빛의 각도가 변하며 부엌 바닥에 그림자가 길어졌다. 시간은 늘 흐르고 있었다. 다시 한번 거품을 걷어내며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강렬했던 햇살이 부드럽게 변하는 저녁의 빛처럼, 감정도 시간 속에서 변화한다. 국물 위로 떠오른 기름의 얇은 막이 마치 시간이 봉인한 기억의 단면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매캐한 고춧가루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맵고 아린 감각은 눈물을 부르기도 한다. 이제 맵지만 달콤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한때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는지, 양파를 썰 때 눈물 나듯 매웠던 기억이 언제부턴가 구수하고 달콤한 향으로 변해있었다.
혼자서 요리하는 시간이 이렇게 나를 돌아보게 만들 줄 몰랐다. 무심코 시작한 요리가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보는 것 같은 시간이 되었다. 불 위에서 끓는 감자탕처럼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솥 안의 모든 재료들이 각자의 맛을 내어주며 하나의 국물로 어우러지는 모습은 함께했던 순간들, 주고받았던 말들, 공유했던 시간들이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감사함이 밀려왔다. 아무리 힘들었던 시간도 결국 지나고 나면 내 삶의 맛을 더하는 양념이 된다.
감자가 완전히 익어갈 즈음, 부엌의 공기는 이미 감자탕의 진한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익숙한 냄새가 집 안 구석구석을 채웠다. 문득 현관문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향기에 이끌려 불현듯 돌아보게 되는 빈자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습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더 이상 열리지 않을 문을 바라보는 순간, 시간은 마치 멈춘 듯했다.
마침내 감자탕이 다 완성되었다. 불을 끄고 뚜껑을 열자 진한 향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테이블 위에 그릇을 놓고 감자탕을 담았다. 뽀얀 국물 위로 동그란 기름방울들이 떠올랐다. 홀로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았다. 창문 너머로 어느새 저녁이 깊어가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뜨거운 국물이 혀끝에 닿는 순간, 온몸으로 퍼지는 감각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맛이 입안에 번지는 듯했다. 기억 속 모든 얼굴들이 함께 앉아 국물을 나누는 듯, 육수의 깊은 맛과 함께 기억 속 목소리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
감자를 하나 집어 천천히 씹었다. 씹을수록 입안 가득 퍼지는 육수의 맛은 마치 시간을 씹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세월의 의미를 씹어 삼키는 일이기도 했다. 뼈에서 우러나온 진한 맛이 혀끝에 남았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이다. 기억은 늘 그렇게 변형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홀로 하는 식사지만 테이블 위 그릇에는 둘이 먹을 양의 음식이 담겨 있었다. 습관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여전히 남겨두는 마음, 그 빈자리가 있어 내가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저로 국물을 저으니 숨어 있던 여러 재료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치 오래된 기억의 서랍을 뒤적이는 것처럼, 잊고 있던 순간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의 웃음소리, 다투던 순간들, 화해하던 시간들, 모든 것이 국물 속 재료처럼 뒤섞여 하나의 풍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녁 하늘에 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하늘 아래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같은 맛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다른 맛에 익숙해져 있을까. 무심코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텅 빈자리가 말해주는 존재의 부재조차도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국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진한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이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견디기 힘든 진한 맛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 맛이 그리운 듯 옛 기억은 때론 더 선명하게, 때론 더 부드럽게 변형되어 내 안에 살아간다.
식사를 마치고 남은 감자탕을 작은 용기에 나누어 담았다. 하나씩 뚜껑을 닫으며, 마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듯 조심스럽게 냉장고에 보관했다. 깊어진 국물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과 진득하게 우러난 맛을 함께 음미할 누군가가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만 혼자서 먹는 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요리를 하며 기억을 꺼내보는 시간이 치유가 되었다. 내 몫은 추억을 저장하고 보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창문을 닦으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하늘,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간, 일상과 기억 사이의 경계도 어느새 모호해졌다. 견디기 힘들었던 감각이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냉장고를 차곡차곡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것이 삶의 모습이 아닐까. 지나간 것들의 맛을 보존하며, 그것을 때때로 꺼내 음미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요리를 마친 부엌은 고요했지만, 공기 중에는 여전히 감자탕의 향이 남아 있었다. 그 향기처럼 우리 안에 남은 기억의 흔적들은 마음속에 자리한 누군가의 목소리, 웃음소리, 발자국 소리, 이제는 그것들이 위로가 된다. 아픔보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남긴 따스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부엌 불을 끄며 생각했다. 감자탕처럼, 그리움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풍요로워진다. 그 맛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내일은 어떤 맛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기억이 떠오를지,
그것을 발견하고 추억하는 것.
이제는 내 삶에 깊이를 더하는 특별한 맛이 되었다는 것.
이 또한 삶의 맛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