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가¹ 나의 선물일 때

작은 손의 위로가 건네는 의미

by 새틔

2022년 6월 어느 날, 유치원에서 부모 참여 행사가 열렸다. 강당에 가득 찬 학부모들의 설렘과 기대가 공기를 따뜻하게 데웠다. 무대 위에 일렬로 선 아이들이 합창을 시작했고,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었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은 등 뒤에 숨겨두었던 팻말을 꺼내 들었다. 작은 손 모양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그 아래에 적힌 '내가 바로 선물이에요'라는 아홉 글자가 코팅지 아래서 반짝였다. 아이들은 각자의 부모에게 달려가 안겼고, 그때의 따스함과 감동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2023년 12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부엌에서 계란말이를 뒤집고 버터를 녹이고 팬에 불을 끄고 잠시 멈춰서 있었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겨울 빛이 반쪽짜리 식탁을 비추고, 텅 빈 집안은 유난히 정적만 가득했다. 세 켤레에서 두 켤레로 줄어든 현관의 신발과 벽에 남은 액자의 흔적만큼이나 공허한 공간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상이 기계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무언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일 년 반 동안 책장 한구석에 고이 간직되어 있던 그 팻말이 부엌의 공기를 순식간에 변화시켰다.


"아빠, 내가 선물이잖아~"


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 한 번도 아이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과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확인하던 의연한 표정,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라는 반복된 위로의 말들이 단단한 방어벽을 쌓았지만, 아이의 순수한 한마디에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쓰러지듯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아이를 끌어안았다. 어른의 몸에 갇힌 어린 영혼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단순한 슬픔이 아닌, 외로움과 위로, 고독과 연결, 절망과 희망이 뒤엉킨 복합적 감정이 밀려왔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작은 손의 온기가 전해지는 역설적 순간,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보호하는 존재를 위로하는 깊은 울림이 가슴을 채웠다.

'내가 바로 선물이에요' 팻말

그 누구도 치료해 줄 수 없고 알아주지도 못하는 마음을 아이가 위로해 주는 뜻밖의 순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켜볼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관계는 단순한 의무나 책임을 넘어서는 것이며, 아이의 위로는 차가워진 집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는 작은 불씨와 같았다.

한참을 울고 난 후, 마음속에는 새로운 생각들이 자리 잡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살아가야 하는 이유의 발견,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겠다는 다짐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삶의 균형에 사로잡혀 보지 못했던 본질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생명과의 연결이었다.

식탁 위의 계란말이는 이미 식어버렸지만, 버터향이 전해주는 편안함과 따뜻함 덕분인지, 아이는 맛있다고 한다. 빈자리가 주는 무게는 여전히 삶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었지만, 아홉 글자와 그 말을 현실로 만들어준 작은 손의 위로가 마음속에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시간은 흘러 지금은 또 다른 계절이 찾아왔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 준 아이를 생각하며, 나 역시 그 아이에게 변함없는 위로의 존재가 되고, 우리의 작은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로 남기 위해 오늘도 걸음을 내딛는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