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후 Aug 29. 2022

단감

 주유소 몇 군데와 드문드문 지나가는 카페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공원묘지로 버스가 도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산골로 들어선 것이다. 창문을 살짝 밀었다. 늦여름의 숲은 습하고 비릿하지만 너무 덥지 않은 바람으로 다가왔다. 아직은 따가운 햇살 사이로 약간 건조한 가을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엄마를 뵈러 가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다. 버스는 10여분을 더 달리며 오르고 돌고 내리막을 달리다가 멈췄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도착이겠다.


 걸을 때마다 가방에서 콩콩 소리가 났다. 깎아온 단감이 통 안에서 나뒹구는 것이었다. 꽃 대신에 엄마가 좋아했던 것을 챙겨 온 것. 작년까지는 생화 몇 송이만 챙겨 왔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쓸데없이 사 오지 말고 차라리 돈으로 줘라.” 하셨다. 아니,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평생 비싼 옷을 사거나 꾸미지 않은 데다가 필요한 것이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았으니. 그래서 이후로는 엄마가 좋아했던 것들을 챙겨 왔다. 계획을 하고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딱 하나를 고르는데 나름 의미도 있었다. 명절이든 아니든 혼자 찾아오는 것이라 튀김이나 전 같은 음식을 준비하기도 부담스러웠고, 제사 같은 거는 신경도 쓰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단감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과일이다. 밀도 높은 주황색 과육과 고동색의 매끈한 씨앗이 보이도록 깎아서 흰 접시에 올려놓으면 내가 하나 먹을 동안 엄마가 세 개를 먹을 정도였다. 앞니로 베어 물면 아삭, 엄마는 그 이상으로 단단한 과즙이 좋다고 하시면서도 훨씬 달달한 홍시는 이상하게 드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가 먹을 홍시와 엄마가 먹을 단감을 따로 놓을 정도였다. 엄마가 단감을 깎을 시간이면 냉동고에 살짝 얼린 홍시가 적당히 녹았다. 톡! 나는 단감 머리맡을 유쾌하게 튕기는 모습이 재밌어서 턱을 괴고 가만히 바라봤다. 엄마 손에서 단감이 돌아가면 기다란 껍질이 천천히 내려왔고, 나도 언젠가는 엄마처럼 과일 깎을 수 있겠지, 물으면 엄마는 당연하다며 웃었다.


 아직 올해 단감이 나지 않은 탓에 저장된 것을 박스로 샀던 나는 이번 기회에 직접 깎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왼손에 쏙 들어오는 단감과 작은 과도를 쥐고서 엄마처럼 톡, 경쾌한 시작이었다. 매번 깎아준 과일만 먹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호기롭게 깎기 시작했지만… 세 번째 단감까지는 너무 오랫동안 손에 쥐고 거의 조각하듯이 깎았던 탓에 도저히 가져올 수가 없었다. 얼마나 꽉 쥐었는지 왼손에는 끈적한 과즙으로 흥건했으며 미적지근하다 못해 따뜻한 감이었다. 생각보다 미끄러운 탓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윤진희 씨, 89세, 여, 검은 하의에 노란 꽃무늬 상의. 경찰에서 실종자에 대한 안내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치매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160cm 초반의 키에 50kg의 마른 할머니라면 거동도 쉽지 않으시겠는데, 생각하며 다시 걸었다.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웃자란 풀들이 듬성듬성 비었던 떼를 메꿔서 이전보다 나아 보였다. 그래도 삐죽 튀어나온 것들은 정리를 해야지, 크림색 에코백을 옆에 놔두고는 두어 가닥을 손끝으로 끊었다. 왼손으로 살짝 쓸어주니 습한 흙내가 올라왔다. 손 닦을 게 없었지! 생각난 김에 가방에서 밀폐용기를 꺼냈다. 씨앗 몇 개가 떨어져 나와있었다. 평일 대낮의 묘소라 통 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 순간이었다.

 “이제 왔는가.”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헝클어진 흰머리에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나를 보고 계셨다. 쭈그리고 앉아있었는지 구부정한 자세로 서있었다. 바람이 살랑 불자 분홍 꽃무늬가 들어간 몸빼바지가 유난스럽게 펄럭였고, 형광에 가까운 연두색 조끼는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였다. 공원묘지에서는 보통 가까이 있어도 말을 걸지 않는데, 네… 나는 심란한 웃음을 지으며 답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 올라오더니 내 옆으로 오는 게 아닌가!

 “일은 잘했고?”

 할머니들은 용감하다고 했던가. 무턱대고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어영부영 답을 했다. 바람이 다시 불자 곰팡이와 오래된 비누가 섞인 할머니 특유의 냄새가 밀려왔다. 귀신은 아니었다. 뒷짐을 지고 옆에 멈추더니 먼 곳, 다른 것을 보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반대편 묘소와 엄마를 보다가 내가 들고 있던 통의 감으로 옮겨왔다. 아무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에 못 이겨 하나 꺼내 드리자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엄마를 등진 채 쭈그리고 앉으시더니 나를 보는 것이었다. 아이를 보듯, 언니를 보듯, 엄마를 보듯. 손끝으로 쥔 단감 한 조각을 들고서 올려다보는 눈빛에 나도 옆으로 앉았다. 그제야 그녀는 감을 한입, 손보다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

 “어쩌다가 혼자 오셨어요.”

 내 물음에도 그녀는 답이 없었다. 노쇠한 할머님이 혼자 오기엔 조금 거리도 있어서 분명 주변에 가족이 있을 터였다. 한 입 베어 물고는 숲 너머의 하늘을 보다가 다시 한 입. 이상한 느낌에 나도 말없이 감을 집어 들었다. 조금 말랑말랑해져서 따뜻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과즙에 기분이 좋아졌다. 약간은 습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불어왔다. 파랗게 높아진 하늘 멀리서 짙은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아, 생각해보니 오늘 소나기 예보가 있었는데. 이럴 때에만 정확한 기상청이었다. 그녀는 10원짜리 동전만 한 씨앗을 구름 쪽으로 휙 던지고는 통에 있는 감을 자연스레 꺼내 들었다. 엄마도 이렇게 변했을까? 문득 떠오를 뿐이었다.


 시간을 보니 3시 반이 조금 넘었다. 두 조각이 남았지만 나는 통을 닫고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벌써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기에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가만히 올려다보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설마 하는 생각에 안전 안내 문자 탭을 열었다.

 “할머니, 혹시 연세랑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녀는 갑자기 경계하는 듯이 몸을 반대편으로 움츠렸다. 그러나 키와 옷차림이 얼추 비슷했다. 비록 검은색이라지만 분홍색 꽃무늬가 더 많았고, 노란색보다 연두색에 가까운 조끼에 등산복 같은 흰색 티를 입고 계셨지만 말이다. 곧바로 나와있는 번호에 연락해서 그녀의 모습과 위치를 알려주었다. 조금 떨어져 있는 데다가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나는 아래에 버스 정류장으로 가 있겠다고 말했다. 통화를 마치자 그녀는 잔뜩 삐진 것처럼 등 돌리고 앉아있었다. 할머니라 불러도, 어머님이라 불러도 그녀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서 화를 낼 수도, 놔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에 있겠다고 할 걸, 후회하며 한숨을 푹 뱉으니 그녀가 일어났다. 마치 혼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에 시선을 떨군 채 내 손을 잡는 그녀였다.


 다행히 내려오는 숲길까지는 비가 쏟아지지 않았다. 습한 바람에 비릿한 풀냄새로 가득한 산책로에서 그녀는 아이처럼 내 손을 쥐고 살짝 뒤에서 따라왔다. 거칠다 못해 메마른 수건 같은 그녀의 피부와 생각보다 꼭 쥔 손아귀가 느껴졌다. 주황과 파랑으로 칠해진 정류장 그늘로 들어와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빗소리가 들렸다. 나뭇잎을 치며 몰려온 비구름은 이내 도로를 진하게 물들였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내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치매라면 지금이 아니라 기억 속 어느 순간으로 지금을 인지할 터, 나는 남아있던 단감이 떠올랐다. 통을 열어서 앞에 보이니 예상대로였다. 그녀의 손이 떨어지며 시원한 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불었다.

 “잘 지내야 혀, 탈없이.”

 마지막 한 조각을 다 먹고 그녀가 말했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연갈색의 반짝이는 씨가 톡, 앞으로 떨어졌다.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천천히 해가 나고 있었다. 고맙다고 말하려는 순간,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울렸고 나와 그녀는 어떤 버스가 오나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먼 도로에서 경찰차와 승용차 한 대가 오고 있었고, 이내 정류장 근처에서 멈췄다. 곧이어 중년의 남성이 우산도 쓰지 않고 운전석에서 내려서는 달려왔다.

 “어머님! 아이고, 어머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제가 한눈을 판 사이에,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도통 알아볼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그 뒤로 아내와 경찰이 걸어왔다. 이 분이 맞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하던 그 남자는 거의 울먹이며 내 손을 잡고는 고개를 연신 숙였다. 얼떨떨한 분위기 속에서 할머니는 시무룩하게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러나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우연히 알아보고 연락한 거라며 다행이라 그에게 웃어 보였다. 해가 나면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반짝일 즈음에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이에요. 전 이만 가봐야 해서.”

 사례라도 하겠다는 아내의 말에 괜찮다며 버스에 올랐다. 방울진 창문에 비친 햇살이 반짝였고 그 사이로 할머니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정류장을 뒤로하고 순식간에 새로운 장면으로 들어섰다. 힘이 빠진 손끝에서 은은하게 할머니 냄새가 났다. 창문에서는 선명하게 반짝이는 숲이 한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은색의 그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