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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Sep 14. 2022

심심풀이

 그들은 각자 소유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시체 근처에는 유서와 비슷한 몇 장의 문서가 함께 발견되었다고 전해졌다. 몇 장이 아니라 뭉치라는 사람도 있었고 가방에 가득 들어 있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재산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적혀 있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언을 남겼다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이 계획된 퍼포먼스라고 했다. 그들이 건물주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특히 한 장은 붉은색으로 적혀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들의 사인이 모두 과다 출혈이었다는 점과 함께.

 범인들은 예상외로 금방 잡혔다. 잡혔다는 말보다는 발견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CCTV가 도처에 깔려 있던 것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 반쯤, 혹은 아예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숨만 겨우 붙어 있거나 온전치 않은 상태였는데 모두 특정한 마약을 과다 복용한 것이었다. 그들의 지문이 찍힌 야구 배트나 파이프도 발견되었다고 전해졌으나 흉기로 사용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언론은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냈다. 5명의 피해자와 27명의 가해자 사이에는 특별한 원한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수법으로 볼 때 집단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경찰의 발표. 문서의 존재도 언급이 되었지만 그 내용은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모자이크로 가득 찬 화면과 겁에 질린 최초 발견자의 인터뷰가 덧붙었다.

 이내 사람들은 그 사건에 빠져 들었다. 사건을 다룬 주요 언론사의 영상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백만 조회수를 찍어냈고 무수히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신기한 것은 피해자나 가해자에게 애도를 표하는 것보다 “그럴 법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누군가 피해자가 소유했다는 빌라와 상가와 토지들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적으면, 다른 누군가는 그런 주장이 억측일 뿐이라며 부자가 모두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고 화를 냈다. 열등감에 휩싸여 음모론을 펼치지 말라는 댓글에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해당 건물에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한 사람이 등장하면 그런 걸 왜 당하냐며 욕을 하는 사람이 답을 했고, 범죄자들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글이 있는가 하면 부동산 투기를 일삼은 사람들도 함께 처벌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잔혹한 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거짓말하지 마. 그런 거 다 음모론이라고.”

 “심심하니까 그냥 보는 거지. 지하 주차장 모습만으로 건물을 찾아봤더니 건물주 행적이 뭔가 의심쩍다거나 하는 것들, 재밌지 않아? 추리소설 같잖아.”

 나는 질색을 하며 두꺼운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당겼다. 가볍고 메마른 모텔 특유의 냄새가 살결에 닿는 가는 소리와 함께 얼굴로 밀려왔다. 바스락거리며 천천히 데워지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그러나 새벽, 그중에서도 겨울이면 아무리 두꺼운 이불 속이라 하더라도 혼자 있기가 싫었다.

 “춥지 않아?”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핸드폰만 보는 그에게 물었다.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검은 속옷 위로 마디마디 척추뼈가 눈에 들어왔다. 말랐지만 야위지 않은 등과 어깨를 지나 뒷목으로 가면 작은 점이 하나 보였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희미한 진동이 울렸다.

 "나 추워."

 “아, 응.”

 그제야 그는 탁자에 핸드폰을 엎어 놓으며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 이불만큼 까슬까슬하면서 약간 차가운 그의 피부가 느껴졌다. 목과 베개 사이로 들어오는 그의 팔을 따라 아이처럼 옆으로 돌아 누우면 그의 목과 흘깃 웃는 눈이 보였다.

 “그래도 나름 잘 맞아떨어지는 게 참 신기하단 말이지.”

 살짝 드러난 어깨 위로 이불을 올리며 그가 말했다. 그가 미스터리니 음모론이니 하는 것들에 푹 빠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혼잣말에 내가 반응을 하면 이야기해주는 것이 하나의 루틴처럼 우리는 시간을 보냈으니. 그러나 새벽 4시의 피곤한 몸을 서로 안고 있는 시간에도 그런 심심풀이 이야기를 듣고 있기는 힘들었다. 조금 있으면 아침이기도 했다.

 “미안.”

 옹알거림 속에서 피곤함과 짜증을 읽어낸 그는 나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팔뚝에 퍼지는 그의 온기와 이마에 닿는 입술이 느껴졌다. 조용히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와 그의 숨소리가 어두운 방을 메웠다. 나는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지금 이렇게 잠을 자겠다고, 벌써 코를 고는 그를 보며 눈을 감았다. 그 모든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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