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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ul 15. 2022

세탁기 안에, 2

그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나는 꺼져, 그의 낮은 한 마디를 듣자마자 손을 놓아버렸다.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시부모님은 연락을 받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친정에 연락할 수도 없었다. 친정이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3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고 엄마는 연락을 받지 않을 것이다.

 10여 년 전의 번호는 알았지만 그대로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부모님은 덤덤하게 이혼하셨다. 우리는 이제 자유라는 것을 선언하고 통보하듯 내게 이혼 사실을 알렸다. 이전에도 그런 기조가 없던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다행히도 엄마와 아빠는 어느 정도의 돈을 모아두었고 내 명의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한 번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불안하다는 아빠의 말에 따라 용돈처럼 조금씩 타서 쓰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아빠를 선택한 것에 서운한 눈치였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야 했다. 엄마는 나를 잡아줘, 티를 내며 떠나갔을 뿐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알았는데도 쉽지는 않네.”

 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만 바라보며 내 옆에 있던 아빠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의미로 나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된 거였다. 떠난 것도 엄마의 선택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문을 나간 엄마를 다시 본다면 나는 말할 것이다. 당신이 떠난 것이라고, 당신은 왜 나를 잡지 않았냐고.


 아빠는 어느 날 쓰러졌다. 골프도 안치고 당구도 싫어하고 누구 하나 만나지도 않으니 술도 마시지 않던 아빠는 오직 담배만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았다. 아파트에 살다가 담배연기에 민원이 너무 심해져서 혼자 살기 좋은 단독주택으로 이사 간 아빠는, 오래된 책이나 바둑 기보를 혼자 두고 담금주를 담았다. 광주가 아닐 정도의 외곽에 위치한 집에 도착하면 담배냄새와 먹지도 않을 술이 즐비했다. 팔뚝만 한 더덕을 넣은 것부터 뱀이나 벌집을 넣은 것까지.

 “마시지도 않을 거면서 왜 이렇게 쌓아 두셨어요.”

 매번 그렇게 말해도 아빠는 별 말이 없었다. 당신에게는 취미가 필요했어요, 일이 필요했고 일상이 필요했어요, 당신에게는 엄마가 필요했어요.

 ‘그럴 거면 왜 잡지 않았어요.’

 나는 엄마를 붙잡지 않은 아빠가 안쓰러웠고 원망스러웠다.


 마당에 쓰러진 아빠를 본 옆집에서 구급차를 불렀지만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다. 모든 과정을 치르면서 엄마에게 연락을 했지만 단 한 번도 받지 않았고 마지막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쿨하다 못해 얼어버릴 듯한 엄마의 성깔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담뱃재가 뭍은 책들을 모두 버렸다. 2년간 술에 담겼던 뱀이 살아있어서 어느 할아버지가 물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술을 마시려는 생각도 술과 함께 버려야 했다. 거대한 더덕과 산삼(으로 보이는 더덕)이 담긴 것은 옆집 분에게 드렸다. 귀한 술이라며 좋아하셨다.


 시부모님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다. 여전히 받지 않으셨다. 문자로 이 사태를 말하기엔 괜한 오해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다시 계단을 올랐다. 슬리퍼는 쩍쩍 짖는 소리를 냈다. 아파트 계단에서 한 시간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이다. 9층, 집이 보이는 복도에 멈췄다.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해결해야만 한다면 미루는 것이야 말로 독일 것.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밝은 벽과 나무 식탁, 회갈색 소파를 지나 베란다에 도착했다. 나는 다시 시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가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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