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이미 쏟아부은 돈이 아까워 더 큰 손실을 자초하는 심리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주변 사람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은행이 대출을 거절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뜻으로 100% 직결되지는 않는다. 신용 점수나 서류 준비가 미흡해서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믿고 돈을 건네는 건 위험하다. 은행이라는 기관은 받지 못할 돈은 되도록 빌려주지 않는 것이 원칙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최근에 돈을 빌리고 갚은 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다음에 더 큰돈을 빌리기 위해 미리 치밀하게 계획한 각본일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의도를 가진 사람이 실제로 나에게 돈을 빌리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이 시일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게 되면 처음에는 “이자 말고 원금이라도 빨리 갚아달라”는 식으로 호소하게 되고, 나중에는 원금의 절반이나 그 이상도 깎아주겠다며 오히려 빌려간 사람에게 사정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순간부터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을”이 되어 상대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법적 분쟁이나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해 재산을 미리 다른 가족이나 지인 명의로 돌려놓는다는 점이다. 통장도 남의 것을 빌려 쓰기 일쑤고, 법원 판결문을 받아도 사실상 건질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게다가 내가 어떻게든 찾아냈다 해도 이미 다른 피해자들과 1/n(안분배당)로 나누어야 할 형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돈 문제에서 누구에게 우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보통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내 돈이 상대방에게 건너가는 순간, 나는 상대방의 태도와 사정에 묶이게 된다. “채무자님”이라는 표현이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돈을 빌려간 사람은 '갑'이 되고, 빌려준 사람은 '을'이 된다.
돈이 오가는 이야기를 할 때는 일이 잘 될 것만 기대하지 말고, 반대로 잘못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투자나 사업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 돈을 투자하면 그 돈이 마치 그래프의 오른쪽 위로 쭉 뻗어나갈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실은 여러 변수가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심리학적으로 주의해야 할 함정이 있다. 흔히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하는데, 이미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자꾸 더 큰 돈을 쏟아붓는 심리 현상이다. “조금만 더 도와주면 이전 것까지 전부 해결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계속 ‘조금씩’ 보태주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된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다가, 적금이나 연금을 깨고, 가족과 지인에게 빌리고, 심지어 사채까지 손대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유명 화가의 그림을 들여오겠다며 시작해 결국 200억 원을 날린 사례는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심리는 비슷하다. “이만큼 투자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에 매달리다 보면, 사소한 의심도 무시하게 되고, 오히려 상대방의 변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더 가져다 바치게 된다. 소송 끝에 돈을 지급하라는 판결문을 받아놨다고 해도, 상대방 명의로 된 재산이 없다면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전제를 잊지 않는 태도다. 조금 더 도와주기만 하면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거나, 두 배로 갚아주겠다는 말에 ‘한 번 더 속아주자’ 하는 마음으로 뛰어들면, 이어지는 피해는 앞선 피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질 수 있다.
결국 이런 이야기는 권투 경기와 비슷하다. 운 나쁘게 상대의 주먹이 턱에 한 번 제대로 꽂히면,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면서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회복이 되기 때문에 한 번의 충격으로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싸울 수 있어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 그런데 연거푸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게 되면 쉽게 회복하지 못해, 심판이 하나에서 열까지 카운트를 다 세는 동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현 시대에는 투자나 대출을 유혹하는 창구가 더욱 다양하고, 정보를 포장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SNS를 통해 성공 신화를 과장해 올리거나, 소위 ‘크라우드 펀딩’처럼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방식도 많아졌다. 이럴 때일수록 ‘혹시 이게 허상은 아닐까?’ 하는 작은 의심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오히려 그런 의심이야말로 날 지켜주는 방패가 될 수 있다.
돈 문제에서 가장 큰 함정은 ‘확신’이다. 나에 대한 확신, 상대에 대한 확신, 미래 수익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마다 잠시 멈춰야 한다. 그 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만큼의 현실 검증을 거친 것인지 곰곰이 따져보는 태도가 결국 내 돈과 삶을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