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재판,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심리
고소나 고발을 했는데, 정작 피의자의 소재를 알 수 없다면? 예컨대 해외로 도망치거나 행방이 묘연하다면,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찾기 전까지 최종 결정을 유보하는 ‘기소 중지’ 처리를 한다. 가령 중요한 참고인조차 찾을 수 없으면, 그 참고인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인 중지’ 상태로 두기도 한다.
한편,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이전에 불기소 결정을 받은 사건을 새 증거도 없이 다시 고소·고발하는 등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명백해 보일 때는 ‘각하’ 처분을 내린다. 2020년에만 고소·고발 사건이 약 74만 건이었는데, 이 중 20%가량이 각하 처리되었다고 하니, 무작정 고소한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수사와 재판은 기본적으로 ‘불구속’ 상태로 진행하지만, 범죄가 중대하거나 도주 우려가 높으면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신병을 확보한다. 반면, 폭력이나 영업정지 위반처럼 비교적 사안이 가벼운 경우에는 ‘약식기소’ 절차를 밟아 벌금형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약식명령이 내려지면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되고, 검사가 제출한 서면과 증거만으로 심사가 이루어진다. 만약 무죄를 주장하거나 벌금이 지나치다고 느끼면, 약식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 정식재판을 청구해 반박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까 봐 항소(또는 정식재판)를 쉽게 못 하겠다”는 심리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불이익 변경 금지의 원칙이 적용된다. 간단히 말해, 피고인만 항소했을 땐 원심보다 형이 더 무거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일단 불복하고 보자”는 식으로 남용되는 일이 잦아지자, 약식명령에 대한 정식재판 청구 사건에서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도록 법이 바뀌었다. 그래서 벌금 100만 원이 너무 많아서 재판을 청구했다가, 도리어 200만 원 벌금을 선고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또, 검사가 형이 가볍다고 생각해 항소하거나, 아예 검사와 피고인 모두가 항소하는 상황이라면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럴 땐 형량이 더 무거워질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특히, 항소 이유가 “1심에서 내 진술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거나 “중요 증인을 새로 세우고 싶다”는 것이라 해도, 검찰까지 함께 항소한다면 1심보다 무거운 처벌도 가능하다.
이렇듯 절차가 반복되다 보면, 실제로 사건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는 데까지 2~5년씩 걸릴 수 있다. 항소심 과정에서 사건 담당자가 인사이동으로 바뀌게 되면, 새로운 담당자가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도 한다. 결국 당사자들은 “그래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과 “이 시간이 너무 길다”는 좌절감 사이를 오가게 된다.
현실적으로, 대법원까지 상고하는 피고인이 한 해에 2만 명 정도인데, ‘파기율’(원심이 잘못됐다며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에서 파기하는 비율)을 얻는 경우는 5% 미만이다. 더군다나 그 5% 안에도 피고인에게 꼭 유리한 결론만 있는 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낮은 확률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보려는 건 사람들에게 ‘최후의 희망’ 같은 심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인 셈이다.
고소·고발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꽤 익숙한 분쟁 해결 방식이지만, 그 안에는 이렇게 복잡한 절차와 예외 규정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법이 좀 더 빨리, 간결하게 처벌이나 무혐의를 결정해주면 좋겠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제도가 세밀할수록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충분한 기회를 갖게 되고, 억울함을 해소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이 모든 절차의 핵심은, ‘사람과 사회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제도적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