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면 면제? 친족상도례의 허점
‘친족상도례’는 말 그대로 “가까운 혈연 관계 내부의 재산 범죄는 국가가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다”는 옛 개념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대가족 중심이었던 로마법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핵심 취지는 “집안 문제는 가급적 집안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 법 역시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또는 그 배우자)처럼 가까운 친족 사이에 발생한 절도·공갈·사기·횡령·배임·장물·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서는, 강도·손괴죄를 제외하고는 **“형벌 자체를 면제”**해 버린다. 먼 친족 사이의 범죄라 하더라도 고소가 없으면 수사·기소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제도가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상황을 종종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짜 차용증으로 부모나 형제의 예금을 빼돌렸는데, 범행이 드러나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는 사례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핵가족화가 일반적인 지금 “아예 친족상도례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부모·자녀 정도로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온다. 특히 노인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가족이 더 교묘하게 착취하는 사건도 적지 않아, 부당 이득을 얻고도 처벌받지 않는 부조리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렇다면,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가까운 친족’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이 범위가 생각보다 넓고, 해석도 달라질 여지가 있어 혼란이 커지기도 한다. 형법 제328조에 따르면, 8촌 이내 혈족과 혼인으로 맺어진 4촌 이내 인척, 그리고 혼인신고가 된 배우자 등이 포함된다. 또한 ‘직계혈족’은 부모·조부모·자녀·손자녀 같은 세대차가 직접 연결된 친족을, ‘동거 친족’은 한집에서 생계를 함께하는 친족을 의미한다. 예컨대 옆집에 사는 동생이 형의 집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면, 둘은 혈연으로는 형제이지만 ‘동거 친족’이 아니므로 친족상도례의 절대적 면책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신 ‘상대적 친고죄’가 되어, 피해자가 범행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안에 고소장을 내야만 수사와 기소가 가능하다.
한편,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반드시 전제되는 범죄를 말한다. 범죄자·피해자의 관계에 따라 두 종류가 있는데, ① 절대적 친고죄: 모욕죄·비밀침해죄·사자명예훼손죄·업무상 비밀누설죄처럼 누구든 간에 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이 이뤄지는 범죄, ② 상대적 친고죄: 범죄자와 피해자가 형제 같은 친족이어서,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되는 범죄다. 반면 최근 개정으로 성폭력범죄는 모두 ‘비친고죄’가 되어, 고소가 없어도 처벌 가능하다.
심리학적으로도, 가족 간 문제는 공적 갈등이 아닌 사적·정서적 문제로 간주되기 쉬워, ‘친족상도례가 처벌을 면제해 준다’는 사실이 악용될 소지가 크다. 특히 노약자나 장애인을 돌봐야 할 가족이 되레 그들을 착취할 경우, 피해자는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죄책감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과거 대가족 시절에는 집안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으나, 핵가족화된 지금은 집안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피해 규모도, 고통도 훨씬 커지고 있다.
실제로, 친족상도례 폐지나 범위 축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법이란 사회 변화를 담아내야 하는데, 수십 년 전 정서와 관습에 기반한 제도가 오늘날까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벌 적용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죄로 얻은 이익을 당사자끼리 해결하지 못할 때, 국가가 책임 있게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니 봐줘야 한다”는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가족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얻고도 법적 처벌을 교묘히 피해 간다면, 그 ‘불신’과 ‘배신감’은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친족상도례를 어떻게 재정비하느냐는, 현대 가족 관계와 개인 권리 보호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일종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