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자기 성찰의 시간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오후의 햇살이 엷게 비칠 때의 바람결이 여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요즈음이다. 출퇴근길에 언뜻언뜻 보게 되는 들꽃도, 억새풀의 너울거림도 가을의 정취와 여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조금 있으면 단풍이 본격적인 가을 산행이 시작되고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 산에 오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명산이 아니더라도 가까이에 있는 곳들도 휴식을 취하고 사색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청정한 하늘 아래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 그 바람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 그 위를 맴도는 고추잠자리. 가을엔 바람이 불어도, 햇볕이 내리쬐어도, 그리고 비가 내려도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산자락의 들국화들이 향기롭고, 이름 모를 다양한 풀꽃의 향기가 넘쳐나는 산길을 걷노라면 마음도 어느새 맑아진다.
가을 산행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울긋불긋 물들어오는 단풍 때문일 것이다. 수려한 산자락에 물들어오는 가을 단풍은 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日常)은 어느 때보다 답답하고 초조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고 위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상공인들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위기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 의회가 연방정부 부채 상한을 늘리지 않을 경우 오는 10월 디폴트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코로나19로 금융위기에 직면한 국제적인 문제다. 더불어 고용시장 악화 등 현재의 어려운 경제사정이 소비심리를 억누른 데 따른 자영업자들의 극한 상황은 ‘위드 코로나’를 서두르게 하지만, 이 역시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보다는 긍정적 사고와 경제 동인을 위한 적당한 소비, 시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건강한 우리들의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원효는 행, 불행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갈파했다.
원효 대사가 중국 유학 길에 심한 갈증을 느껴 시원하게 마신 물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다. 원효는 심한 구토를 느껴 전 날 먹은 음식까지 몽땅 토하는 고통 속에서 큰 진리를 발견하고 참 깨달음을 얻었다. 일체의 사상(事象)이 오직 마음의 분별에서 생긴 것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밤중의 마음과 아침의 내 마음이 다르지 않을 터인데 모를 때는 시원하던 것이 알고 나서는 기분이 좋지 않으니 더럽고 깨끗한 것이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갑갑한 일상을 훌훌 털고 자연과 동화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연이 주는 이치를 발견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관조해 보노라면 어려운 시기를 타파할 지혜도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아니면 또 바빠서 언제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겠는가. 나무들은 한 해를 마감하며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닥쳐올 모진 겨울을 준비하면서 그 아픔을 단풍이라는 아름다운 빛깔로 승화해 낸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온갖 끝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어지는 인간의 욕심과 비교하면 참 부끄럽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진부한 일상을 탈출해 한번쯤 단풍 빛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사색하는 가을 산행을 가져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