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제주항공참사. 망연히 하늘을 봅니다. 세월호 이후 끊이지 않는 대형 참사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에 닿습니다. 생명이 꺼져버린 이들 앞에서 삶을 통곡합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무엇입니까? 왜 그들입니까? 저 잔악한 이들은 여전히 오늘도 숨어 숨을 쉬고 있는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그리운 어머니, 나의 언덕이었고 모든 것이었던 엄마, 갑자기 엄마가 떠오릅니다. 어머니, 세상을 살면서 알지 못했던 가장 작은 것부터 가장 큰 것 까지를 생각하는 지금, 조그만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돌아봅니다. 삶이 견디기 어렵도록 고통스러울 때, 당신의 궤적을 그리며 버릇처럼 강가를 거닐었습니다. 영육을 촉촉이 적셔주던 그 아름다운 강가를....
사랑하는 엄마, 이렇게 부를 때 제 가슴은 그저 영원처럼 아득합니다. 그저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는 엄마, 어머니... 참사 때마다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부르던 엄마, 그리고 “사랑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런 선한 사람들이 자꾸만 희생되는 것입니까? 인간이라면 모두 답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슬픔을 운명처럼 끼고 살아야만 하는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민족은 선한 사람들인데…, 역사상 1천 번에 가까운 침략을 당하면서도 단 한 번도 타민족을 침략하지 않은 선한 민족인데 왜 이런 참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까? 도대체 어떤 연유로 하여금 이런 엄청난 슬픔을 멍에처럼 안고 살아야 합니까?
사회심리학적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상식을 갖고 살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안전한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제아무리 물질이 풍요로운 사회라 할지라도 엄마나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면 공직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도 실격입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이런 슬픔에 맞닿아 있습니다. 12·3 이후 줄곧 그러합니다. 참담합니다.
왜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까? 거의 모든 사고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러-우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그리고 수많은 분쟁들과 더불어 우리사회가 연이어 대형참사를 거듭하는 데서 우리가 사람이라면 ‘인간의 존중’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존중한다면 인류가 이토록 잔인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총을 쏘라”는 말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인간 공동체는 '신뢰'를 기반으로 기능합니다. 믿지 못한다면 어느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차를 탈 수도, 대화를 할 수도, 심지어 밥을 먹을 수도 없습니다. 이 모든 바탕에는 신뢰, 즉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권력과 탐욕에 눈먼 인간들로 하여금 불신지옥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 이번 참사나 지금까지 계속된 대형 사고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왜 모두 투명하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밝혀진 게 없습니까? 어떻게 이런 사회에서 신뢰와 국민통합이 가능합니까?
오늘의 한국 사회는 신뢰가 무너져 매일이 소란하고 국민들은 우울과 슬픔을 일상처럼 여기고 삽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사법신뢰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누구도 믿지 않고, 암흑 같은 두려움이 국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구장천 건국에 버금가는 리셋과 혁명을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나이 30에 동양평화론을 주창했습니다. 최상목 대행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몸을 던진 우리의 선조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평생을 두고 스스로를 괴롭힐 것이고, 더 심각하게는 죽음 이후에도 그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이것이 인간의 영원성입니다. 누군가는 훌륭하게 기억되고, 누군가는 전두환이 되는 게 그 표징입니다.
우리의 삶은 공동체와 더불어 존재합니다. 우리사회에 보고 배울 게 있어야 합니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늘 소란하고 강대강으로 대치하며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당신의 역할은 명징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당신 스스로를 도우십시오. 그러면 하늘이 도울 것입니다. 당신의 자유의지로 정의를 바로 세울 때 하늘은 비로소 돕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는 기도입니다.
12·3 이후, 다시 인권을 생각합니다. 헌법을 뒤지고 세계 인권선언문을 찬찬히 읽어보며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의 존엄과 가족, 그리고 행복에 대한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가집니다. 우리 모두 함께 차가운 ‘이성’으로, 그것이 법적 제도이든 서로 다른 국가 간의 이념이든 간에 ‘자연인’ 사람에 대한 권리, 즉 ‘인권’을 성찰해 보자고 권합니다. 저는 '사람'을 여전히 믿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연인으로서 순수성이 있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류가 다하는 날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는 공동 운명체이니까요.
누구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하느님마저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신성한 수준에 이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지요. 엄밀하게 따지자면 인권은 국가를 초월한 개인의 존엄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존재 이유도 국민, 즉 사람을 위한 것이고 정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조직이나 과학기술 역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해야 좋은 사회이고 삶입니다.
칸트는 인간 존엄의 존중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인간 존엄과 명예를 구분하면서 법은 도덕에 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으며, 법규범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인간은 이성적∙윤리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평등한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헌법 제2장 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된 점에서 천부인권, 즉 자연권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나아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하여 불가침∙불가양의 전 국가적인 자연권을 헌법에서 선언함으로써 이를 실정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은 헌법이 지향하는 최고의 궁극적 가치이며, 모든 법령 제정과 해석의 기준이 됩니다.
더불어 세계 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제1조에서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이고 또 존엄 및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그들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형제애의 정신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Article 1. All human beings are born free and equal in dignity and rights. They are endowed with reason and conscience and should act towards one another in a spirit of brotherhood.) 또한 제3조에서는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돼있습니다. (Article 3. Everyone has the right to life, liberty and security of person.)
한 사람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일은 국가를 그렇게 여기는 시발점이며 휴머니즘입니다. 어떻게 ‘살인통치’를 묵인할 수 있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머뭇거립니까? 평화와 상생(win-win)을 도모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가 지성이고 문명인입니까? 계엄에 반대한 최상목 대행은 국민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역사적 책무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당장 공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역사와 하늘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참사로 인해 하늘에 닿은 분들을 기억하고 삼가 명복을 빕니다. 또한 유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서 한없이 죄송합니다. 부디 인간을 용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