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의 삶과 사랑

바닥 모를 그리움

by fantasticbaby

강릉 영진, 베란다에 서서 창밖을 내다본다. 파란 하늘과 흰색 구름, 반짝이는 초록빛 풀잎, 바다 밑에 숨 막힐 듯 드러누워 있는 것 같은 그리움이다. 집을 나서며 우편함 속, 손 넣어 우편물 한 웅큼 잡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강원 도립대학교 솔바람길 걷기 코스. 모래빛 땅바닥, 나무며 풀들은 푸릇푸릇 청록색으로 허둥대고 있다. 산책길은 두 갈래로 뻗어 있다.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있다. 솔향 가득 불어오는 산들바람 속에, 나를 스치고 앞서가던 그녀 향기가 느껴진다. 길 옆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나를 불러 세운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지, 그 존재 지금에야 깨닫는다. 모든 것은 나를 위로하는 듯, 꽃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나조차 침묵할 것만 같다. 빠꼼히 쳐다보다가 한마디 내뱉는다.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니? 함께 왔었는데, 그땐 왜 아무 말 안 했니?" 마치 평소 알던 누군가를 만난 듯, 한번 입을 여니 이어지는 나의 궁금증이다. 여전히 말없는 야생화.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어느덧 봄은 가고 초여름도 떠나려 하고 있다. 바다 위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배는 바람을 잔뜩 안고 물살을 가르며 지나간다. 멀고 먼 수평선은 희뿌연 해무에 녹아들고 있다. 바람은 다소 쌀쌀했지만 구름은 한가롭게 수평선 따라 떠 내려가고 있다. 나의 내일은 수평선이 아득한 바다 같다. 손안에 만져지는 가방 속 우편엽서. 1년 전 이맘때 한국 왔다가 부산 놀러 갔었던 둘째 딸 일행. 부산 영도 어디선가 나를 기억하며 써 내려갔을 그 마음, 이제야 받아보는 느린 우편이다. 나도 영종도 휴게소에서, 또 한 번은 묵호 등대에서, '몇 번이던가?' 손으로 써 내려갔을 느린 편지, 한 번도 받지 못했던 그 엽서를 오늘 받았다. 모든 슬픔과 외로움 한 순간에 날려 보낸 행복한 순간, 사랑하는 두 딸들을 그리워한다.


배우자 사별 후 잠시 손 놓았던 온라인 사업, 다시 시작해야 하건만 차일피일 늦어진다. 미친 듯 다닐 것만 같았던 역마살도, 한 풀 꺾인 듯하다. 의욕상실 무기력감뿐 아니라 외로움이 어떤 공포감으로 엄습해 온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할 때 섬뜩해지는 것이다. 사실 아무도 없다. 두 딸들은 캐나다에, 친척과 형제들은 집안일 있을 때만 봐왔을 뿐, 개인적으로 한번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전 직장 동료, 지인들과의 만남도 이곳 강릉에서는 연례행사 마냥 되어간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비바람에 싹 쓸려버린 듯 주변은 적막강산이다.


내가 왜 이럴까? 마치 고장 난 벽시계 같다. 치매로 입원한 외삼촌은 어찌 지내시는지? 아픈 와이프와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고향처럼 그리워하던 강릉이 어째 이리도 낯설까? 이렇게 물속 깊이 잠기기 시작하면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만 끝이 날까? 와이프, 어머니 함께 한, 수년간의 항암 치료 과정, 차라리 그립기까지 하다. 그들을 잊은 것은 시간이지 감정은 아니다.


별안간 와이프 목소리가 뜨겁게 귓가에서 울렸다. "보고 싶을 때는 큰소리로 말 걸어줘요 항상 곁에 있겠으니" 그녀의 빈자리, 텅 빈 가슴, 더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빈 허공 바람 같은 허송세월을 보내야 한다. 나의 기분이 어둡든 밝든, 울든 웃든, 세상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바다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고 신선한 것을 이제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