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여러 교과가 존재하고, 그 여러 교과들은 크게 "주요교과"와 "비주요교과"로 나뉜다.
주요교과라 함은 수능과 직결되는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교과들이 있다. 이러한 주요 교과들은 한 교과에 속한 교사들만 3~4명이 훌쩍 넘는다. 반면 비주요교과는 주요교과와 반대로 1인교사 및 소수교사들로 이루어진 교과라 할 수 있는데, 내가 가르치는 교과가 바로 그 비주요교과 중에 하나인 제2외국어, 중국어다.
제2외국어는 학교에서 비주요교과이자 비주류교과로 불리곤 한다.
비주류非主流 : 조직이나 단체 따위의 내부에서 소수파를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학교 내에서 소수파를 담당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교과협의회를 할 때면 같은 교과의 교사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삼삼오오 모여서 회의를 하는 주요교과들과 달리 나는 항상 혼자이기에 혼자 교무실에서 수업연구를 하거나 다른 1인 교과 선생님들과 자리만 같이할 때가 많다.
여러 상황에서 억울하거나 외로움을 겪을 때도 종종 있다. 한 관리자분께서 나의 교과에 대해 무시 아닌 무시를 하는 발언을 하신 적이 있어서 그 발언에 발끈하여 그 관리자와 작은 언쟁을 한 적도 있다.
사실 이러한 학교 현장에서의 열악한(?) 대우는 이미 예견한 일이긴 하다. 대학교 재학 중일 때 중국어 교사가 되겠다며 교수님과 상담을 했는데 그때 교수님은 중국어 교사가 되려는 나를 말리셨었다. 교수님은 지금 네 성적이면 차라리 일반 회사에 들어가 중국어 가능자로 훨씬 좋은 대우와 좋은 월급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냐며 걱정하셨다. 그때는 젊은 청춘의 호기로 월급보다 사명을 택하겠다며 교수님께 당당히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던 것 같다. 중국어 가능자는 일부 회사 취직 시 가산점부터 받는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학교에서 중국어는 일명 비주류교과로 분류되니까 말이다.
학생들부터 이미 주요 교과에만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비주요교과 수업에서 다른 주요교과 개인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러한 교과 상황에 나는 항상 학기 초 첫 시간을 굉장히 공들이는 편이다.
학생들에게 "이것도 주요교과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비주류교과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집중할 가치가 있는 수업이라는 것, 이 수업을 꾸준히 1년간 열심히 듣게 되면 학년말 어떠한 능력치가 너희에게 생기게 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학기 초, 첫 수업에 학생들과 함께하는 가장 중요한 수업이다.
복직을 앞두고 수업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도 가장 공들여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첫 수업이다. 내가 학생이라도 동기유발이 되지 않는다면 그 수업은 전혀 흥미가 없는 수업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동기를 유발하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가를 매 수업 항상 고민하게 된다. 내 교과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일명 비주류교과라 불리는 제2외국어이다 보니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사실로는 소수파를 담당하고 있기에 '비주류'에 속하는 비주요교과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절대 비주류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외치고 다닌다.
비주요교과입니다만, '주요 치트키' 교과라고요!
치트키는 처음에 게임 용어로 시작된 신조어이다. 게임을 더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key와 같은 의미로 쓰인 치트키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웃음 보장이 되는 연예인을 보고 일명 '예능치트키'라 말하기도 하고, 맛이 보장되는 요리 재료를 두고 '요리치트키'라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치트키'라는 용어에 '필살기'라는 의미도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필살기 같은 존재를 '치트키'라고도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제2외국어, 중국어가 바로 그런 치트키 같은 교과라고 생각한다. 학교마다 제2외국어를 배우는 언어가 다 다르다. 어떤 학생들은 일본어를 배울 수도, 중국어를 배울 수도, 독일어나 불어를 배울 수도 있다. 이 말은 즉 모든 학생들이 똑같이 다 배우는 주요교과와 달리 제2외국어는 본인이 배우게 되는 그 언어가 모든 학생들이 다 배우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배우지 않는, 남들은 할 수 없는 자신만의 필살기가 한 가지 더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이 수업을 대충 시간 때우기 식으로 듣는다면 필살기는커녕 1년간 배운 게 무색하게 기억에서조차 잊히겠지. 그렇지만 집중해서 그저 재밌게 수업에 참여하며 듣는다면 이 수업을 듣지 않은 다른 누군가는 할 수 없는 나만의 언어 필살기, 언어 치트키가 한 개 생기는 거야."
"이 치트키가 언젠가 너희에게 너희의 능력치를 한 단계 레벨업 시켜줄지 누가 알겠니. 취업할 때 외국어로 가산점을 받기도 하는데 말이야. 선생님도 중국어에는 1도 관심이 없다가 학교에서 처음 배운 중국어가 너무 재밌어서 중국어를 좋아하게 되고 중국학과를 진학했을 뿐인데, 지금 이렇게 중국어 교사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주요교과가 아니면 어떤가. 비주류로 분리되면 어떤가. 언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와 더불어 세계 시민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인드까지 다양하게 가르쳐 줄 준비가 되어있다.
다행히 이런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나의 수업을 가치 있는 수업으로 만들어준 고마운 학생들이 있었다. 이런 학생들이 있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학기말 학생이 써준 편지
비주요, 비주류가 받는 설움에 굴하지 않으리라. 다가오는 새 학기를 기대하며, 중국어라는 새로운 능력치를 얻게 될 나의 학생들을 위해 다시 한번 더 가치 있는 수업을 만들어갈 준비를 해보려 한다.
2년이 지나 오랜만에 시작하게 될 첫 수업에서 이 말을 하게 될 순간이 기대되고 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