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만큼이나 학급경영과 상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1순위를 골라야 한다면 바로 '수업'이다.
사실 처음에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수업보다는 학생 상담 측면의 이유가 컸었다.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 이야기를 기사로 접할 때면 교사가 되어 그 학생들의 곁에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떻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싶었다.
사랑을 가르치고 싶어서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단지 교사가 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중국어라는 교과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교사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교과와 관련된 부분, 수업과 관련된 부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단순히 교과서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가서 수업을 할 수도 없고, 학생들의 귀중한 한 시간을 수다 떨며 보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비주요교과라 할지라도 첫 수업, 책상 위에 새 교과서를 올려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학생 상담을 생각하며 교사를 꿈꾸었지만, 나는 '상담교사'가 아닌 '중국어 교사'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중국어 시간을 기다리고 중국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수업에 비전문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수업이 우선이 되어야겠다.
학생들은 소위 젊고 예쁜 선생님들, 젊고 잘생긴 선생님들을 좋아하기 나름이다. 나 역시 20대 초임 교사 시절을 떠올리면 학생들은 그저 젊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나를 좋아해 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현상일까? 나이가 깡패라지만, 난 학생들이 그저 젊다는 이유로 나를 좋아해 주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나이와 외모를 떠나서 나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의 수업을 좋아해 주길 바랐다. 중국어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중국어 수업을 기다려 주기를 바랐다.
학생들로 하여금 수업 자체를 기다리고 기대하게 한다면, 교사로서 그보다 더 뿌듯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이 매일같이 등교해야 하는 학교를 지긋지긋한 공간, 싫은 공간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마냥 좋아하는 공간이 아닐지라도 싫지 않은 공간,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길 바랐고, 그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니라 수업시간이 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수업을 좋아하게 되면, 학교 또한 좋아지게 되지 않을까.
결국 수업.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이 수업시간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수업들이 잘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잘 세워진 수업을 만들기 위해, 그 한 시간 한 시간을 위해 교사들은 많은 노력을 해야 함을 말이다.
나의 수업, 중국어 수업은 어떨까. 영어단어 외우기 바쁜 이 시간에 왜 중국어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게 학생들 본인에게 유익한지, 학생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학생들에게는 내 수업을 집중해서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학생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흥미유발과 동기유발은 필수가 되었다. 스토리텔링과 대중매체의 활용은 이럴 때 유용하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시청하다가도 수업과 연계해서 얘기해 줄 만한 소재가 나오면 그 즉시 보던 영상 출처를 찾아 수업에 활용할 자료들을 만들곤 했다. 예능이나 드라마, 인기 있는 가수들이 나오는 음악방송 등은 학생들로 하여금 최고의 동기유발을 일으켜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동기유발의 완성은 1년 치 수업의 흐름을 소개할 때이다."시험을 위한 수업, 수업을 위한 시험"은 아주 짧은 단기간의 목표치만 설정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지레짐작 포기하게 하거나 좌절을 맛보게 할 수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포기나 좌절을 맛보게 하는 것이 아닌 도전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출처 : 픽사베이
본인들의 삶과 연결되게 하는 것.
일상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지식, 이론적으로 끝나는 수업이 아닌 실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수업. 그러한 수업을 만드는 게 나의 목표가 되었다. 한 단원, 한 단원 단편적으로 끝나는 수업과 평가가 아닌, 한 학기 혹은 1년 치 장기 프로젝트로 수업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사실, 장기간의 프로젝트 수업은 쉽지 않다. 모든 수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코앞의 바로 다음 수업만을 준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수업이 미리 계획되고 그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학생 개개인의 모든 성장 과정을 기록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많은 정성이 들어가게 된다.
한마디로 교사가 힘든 수업이 바로 장기 프로젝트 수업이다.
너무 힘들어서 내년에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수업이 너무 즐거웠다는 학생, 프로젝트 수업 때 준비한 것을 실제 자신의 중국여행에 써먹었다는 학생, 진짜 자신만의 치트키가 생긴 것 같다며 뿌듯해하는 학생, 중국어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학생......
그 학생들의 한마디 한마디면 프로젝트 수업을 접어야지 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음 해에는 어떻게 새롭게 업데이트를 하고 보완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쩌겠는가, 즐거워하던 학생들의 그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걸 말이다.
결국 그 미소들을 잊지 못한 채 내년에도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그 수업을 위해 또 몇 날 며칠 고민하고 고민할 날들이 눈에 선하다. 아직 새 학기가 되려면 두 달 하고도 보름이 남았는데 수업에 대한 고민과 계획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고되고 힘든 날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기대해보고자 한다. 교사 자신이 자신의 수업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어찌 학생들을 기대하게 만들겠는가. 기대감 장착하고 다시 또 용기를 가져본다. 걱정한 것과 달리, 어김없이 학생들과 같이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에 만날 새로운 학생들과는 또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로 신나는 중국 여행을 다녀올까, 또 어떤 치트키를 만들어 주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