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기다리자. 나비가 날아갈 때까지
퍼팅을 하기 위해 그린에 올라가니 공 위로 작고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 홀 컵 주변을 날아다니던 나비는 마침내 내 공 위에 앉았다. 내가 발걸음을 옮겨 다가가도 날아갈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는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나도 퍼팅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비를 바라보았다.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는 몸이 커져가는 게 느껴지지만 건강 상태는 차도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 바람을 쐬기 위해 지방의 친척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어른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언제까지 그 아기를 붙들고 있을 것이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여태껏 그런 상황을 잘 이겨낸 국내외 기사들만을 보면서 우리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하고 았었던 것이다.
의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런 경우 유산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목숨을 연명하는 기술이 발전되었기에 살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잘 자라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 기사를 하나 찾아서 보니 이런 상황에 대한 막연한 핑크빛 기대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아주 현실적인 내용의 글이었다. 신문이나 인터넷에는 이런 상황을 잘 이겨낸 내용의 글들만이 있다. 살려는 내었지만 심각한 장애 등의 후유증의 이유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이로 인해 가족들까지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기를 놓아준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그동안 담당의가 했던 질문들의 의미를 내가 이해 못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응급 처치에 대한 진행 여부 질문을 계속 받았었다. 당연히 조치를 해야지 그럴걸 왜 묻는 걸까 하는 생각에 항상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이는 어쩌면 나에게 의료적인 추가 처치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누구 하나 뭐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나는 계속해서 주변의 간접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선택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아기의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였고, 더 이상 기대를 할 수 없는 환자에 대해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그만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이 최근에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아팠던 큰 아이에게 더욱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대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그대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들었을 때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기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흐르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이젠 정말 보내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아기는 그렇게 떠나갔다. 아내의 생일날 떠난 것은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을까? 유난히도 햇살 눈부신 날 아기는 한 줌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 나비 동산이라는 곳에 뿌려졌다. 다 말라 버린 것인지 화장터에서부터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의 속 뜻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을 골프공 위에 앉아 있던 나비는 힘껏 날아오르더니 그날처럼 눈부시게 맑은 하늘 위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나를 잊고 잘 살아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이 하고 싶어서 잠시 날아왔나 보다. 나도 고맙다 이해해줘서.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