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피아노가 집에 들어온 뒤 내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분홍 잠옷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실 비용 걱정 없이 늦은 밤까지 실컷 연습을 하는 거다. 연습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저녁을 대충 쉐이크로 때우던 생활도 청산했다. 잘 먹어야 피아노를 오래 칠 수 있다는 집사람과 마주 앉아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다.
10년 된 20만 원짜리 방음부스는 에어컨이 없다. 조금만 연습해도 습도가 60%, 70%까지 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한 시간쯤 치면 옷이 축축하게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눈은 조금 따끔거리긴 했지만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싫지 않았다. 땀은 연습의 질과 상관이 없다지만 오늘도 열정적으로 연습에 몰입했단 뿌듯함이 든다. 이 정도 땀이면 운동 효과도 있지 않을까? 살 좀 빠지겠는데? 하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가던 9월, 나는 다시 피아노 동호회 정기연주회 무대에 섰다. 곡은 슈만 아베크 변주곡. 친구들도 안 만나며 아침, 저녁으로 모든 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곡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니 여전히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고통스럽긴 했지만, 이번에도 난 공포와 대면했다. 마음을 다잡으며 아베크 변주곡 테마를 연주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순식간에 마음이 풀렸다. 난 곧 슈만의 곡에 빠져들어 연주했다. 마지막 음을 연주한 뒤엔 동호회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아노 동호회 정기연주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슬희쌀롱을 했던 와인바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와인바에서 소속 뮤지션 콘서트를 하는데 객원으로 20분 정도 공연 해줄 수 있냐고 물으신다. 동호회 정기연주는 한 명당 최대 12분까지만 연주할 수 있어서 늘 아쉬웠다. 그런데 20분이나 내게 주신다니 난 따질 것도 없었다.
와인바 소속 뮤지션 콘서트에서 어떤 곡들을 칠지 고민에 빠졌다. 일단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가장 잘할 수 있는 곡들을 꼽아내야 했다. 최근에 무대에 올렸던 슈만 아베크 변주곡과 6월 정기연주회에서 쳤던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Hob.XVI:37 1악장, 대학 입시곡이자 홍슬희쌀롱에도 올렸던 리스트 라 캄파넬라로 연주 프로그램을 정했다. 난 또다시 무대 준비를 위한 연습들로 매일을 채워갔다.
9월 중순, 와인바 소속 뮤지션 콘서트 날이 됐다. 난 예정된 공연 시간 보다 두 시간 일찍 도착해 리허설을 했다. 피아노는 홍슬희쌀롱 때보단 소리가 좀 풀려있긴 했지만 칠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인바 입구에 걸려있는 사진에서 봤던 뮤지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컬리스트, 재즈보컬리스트, 통기타, 재즈피아니스트, 재즈클라리네스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나자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사장님의 안내가 흘러나왔다.
또 다시 긴장감에 온몸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긴장감에 차갑게 식은 손을 쪼물딱 거리며 뮤지션들을 쓱 쳐다봤다. 뮤지션들은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서로의 근황을 묻고 있었다. 역시 프로들이다. 이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하다니.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지 이제 막 1년하고 2개월이 된 초짜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뮤지션들이 돌아가며 무대에 올랐다.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관객들의 분위기를 돋우는 멘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연을 이끌어 나갔다. 음악에 몰입한 순간을 보고 있자니 너무 멋있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도 대학에선 저렇게 즐기면서 쳤는데…. 난 언제쯤 저렇게 여유롭게, 마음 편하게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가득 찼다.
난 잔뜩 위축된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은 둘째 치고 프로 뮤지션들은 내 실력의 민낯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 난 잔뜩 굳은 채 첫 곡인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Hob.XVI:37 1악장을 시작했다. 하이든의 마법인 걸까? 또랑또랑 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나오는, 맑고 밝은 분위기의 곡을 치고 있자니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난 어느새 통통튀는 움직임으로 빠르게 건반을 훑는 오른손과, 그를 받쳐주는 왼손의 짠짠짠짠 거리는 리듬에 몸을 맡겼다. 한 번씩 다른 음을 건들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치는 내내 어찌나 신나고 들뜨는지 온몸이 들썩거렸다. 마지막 음을 치고나자 관객들보다 뮤지션들이 더 크게 소리 지르며 박수를 쳤다.
뒤이어 슈만 아베크 변주곡과 리스트 라 캄파넬라를 쳤다. 보통 클래식 공연이라 함은 관객이 정숙한 분위기에서 연주를 듣고 마지막 음이 연주된 이후에나 박수를 친다. 그런데 와인바 뮤지션들은 달랐다. 화려한 기교나 감정을 끝없이 이끌어 내는 부분이 나오면 연주 중간에 감탄사를 외치며 호응을 했다. 난생처음 겪는 특이한 문화에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호응을 즐기기 시작했다.
와인바 소속 뮤지션 콘서트가 끝나고 한 달 채 되지 않아 식사나 한번 하자며 와인바 사장님이 날 찾아오셨다. 소속 뮤지션이 아닌데도 콘서트에 끼워줘서 감사하다고, 너무 좋았다고 인사를 건네는데 사장님이 진중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슬희씨, 우리 와인바에서 전속 뮤지션으로 활동해 보는 거 어때요?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 무대에 서는 걸로요.”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입이 떡 벌어졌다. 얼른 양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커진 눈은 가릴 수 없었다. 피아노를 다시 친지 1년여 만에 전속 뮤지션 제안이라니. 그토록 그리던 무대를 더 자주 설 수 있다니. 세상 모든 에너지가 나더러 피아노 하라고 등 떠미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현실들이 떠올랐다. 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느라 10분짜리 곡 하나 준비하는 데 석 달이나 걸린다. 그런데 30분짜리 프로그램을 매주 한다?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에겐 지독한 무대공포증이 따라붙어 다녔다. 그토록 서고 싶던 무대였는데 막상 기회가 오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난 말끝을 흐렸다.
“제안 진짜 감사하고, 저도 정말 하고 싶은데… 직장 다니면서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장님은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곤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잘 치지 못해도 되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똑같은 곡 계속 쳐도 되고, 30분이 어려우면 15분은 피아노 치고 15분은 멘트로 시간을 채워도 된다고 했다. 그러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셨다.
“슬희씨 무대를 봤을 때 참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에서 행복한 사람 의외로 흔하지 않거든요. 그런 슬희씨가 무대에 계속 섰으면 좋겠어요.”
맞다. 비록 무대공포증에 휘청거리는 나지만, 난 무대를 가슴 깊이 사랑했다. 무대에 서면 음악과 내 마음이 연습 때보다 더 이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이 너무 황홀하다. 마지막 음을 친 뒤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들을 때면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과연 내가 무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운명처럼 다가온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계속 오갔다. 오랜 고민 끝에 생각을 마무리했다. 난 말했다.
“네. 해볼게요.”
전속 뮤지션을 하기로 결정한 뒤, 동네방네에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친구들의 축하에 정식 무대에 서보지도 않았는데 어깨가 으쓱거렸다. 하지만 기쁨을 나누는 것도 잠시, 30분짜리 연주 프로그램을 짤 생각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난 해야 할 게 많았다. 직장 생활은 물론이고 앞으로 설 무대 준비와 더불어 나의 발전을 위한 피아노 공부도 해야 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첫 달은 피아노 동호회 정기연주회에 올렸던 곡들인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Hob.XVI:37과 슈만 아베크 변주곡, 바흐 이탈리안 협주곡 1악장을 재정비해 무대에 서기로 했다.
첫 무대 날, 난 연주 시간 보다 한 시간 빨리 도착해 손을 녹이며 무대공포증을 다스렸다. 연주 시간이 다 되자 사장님이 무대에 올라 나를 소개했다.
“새롭게 합류하게 된 클래식 피아니스트 홍슬희씨를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피아니스트? 내가?’
가슴이 철렁했다. 피아노 치는 직장인일 뿐인데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하시다니. 사람들이 내 연주를 보고 클래식에 대해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난 얼른 내 소개를 다시 했다. 피아니스트란 말은 쏙 빼고.
“안녕하세요, 낮엔 직장 다니고 밤엔 피아노 치는 홍슬희입니다.”
긴장감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부여잡은 채 오늘 칠 곡들을 소개했다. 피아노를 보고 앉아 크게 심호흡한 뒤 연주를 시작했다. 난 얼마 되지 않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대공포증이 문제가 아니었다. 와인바 문이 열릴 때마다 들리는 딸랑거리는 종소리, 와인바에서 나는 특유의 술 향기, 사람들이 무대 코앞까지 지나쳐 지나다니는 모습, 손님들의 대화 소리까지. 모든 게 커다란 자극으로 다가왔다. 난 모든 자극마다 휘청거렸고 그때마다 손가락은 제자리를 벗어났다.
가장 큰 문제는 와인바 손님들의 반응이었다. 클래식 애호가들이나 알법한 곡들을 연주하니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난 환호와 우렁찬 박수 소리에 힘을 받는데,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내 귀에 들릴 듯 말 듯 했다. 곡 선정 실패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연주 프로그램을 다 뒤집어엎었다. 언제나 효과 좋았던 리스트 라 캄파넬라를 넣고, 듣기 좋으면서도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쇼팽 왈츠 Op.42를 넣었다. 남은 시간엔 영화 OST, 뉴에이지 같은 곡들을 넣었다.
다음 연주 날, 오전에 잠시 업무를 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음부스 안에 틀어박혀 연주를 준비했다. 그런데 영화 OST나 뉴에이지를 평소에 듣지도, 치지도 않아서였을까. 이 곡들과는 좀처럼 마음이 연결되지 않았다. 난 리스트 라 캄파넬라와 쇼팽 왈츠 Op.42에 집중했다.
사장님은 오늘도 나를 클래식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했다. 난 피아니스트가 아닌데, 그렇다고 공표하셨다. 그러면 사장님께 누가 되지는 말자, 쉽고 유명한 곡을 골랐으니 망치지 말자 다짐했다. 난 무대공포증에 떨면서도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며 연주했다. 역시 유명한 곡을 연주하니 사람들이 연주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문제는 클래식 곡이 아니어서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재미없으면 관객들도 재미없을 게 분명했다. 다음 공연 때는 다른 곡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퇴근하고 나면 휴식을 포기하고 연습에 매달렸다. 이 정도면 무대에서 잘 칠 수 있겠단 확신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내 무대는 언제나 기복이 있었다. 일곱 곡 중 세 곡을 틀리기도, 클라이맥스를 찍을 한 곡을 대차게 틀리기도 했다. 난 이 기복을 줄여나가기 위해 무대에 서는 토요일이 되면 8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집사람을 습기 찬 좁은 방음부스에 가둬놓고 연주 리허설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부족했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불안함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머리카락부터 옷, 신발까지 모든 걸 통제해도 소용없었다.
툭하면 말아먹은 거나 다름없는 연주를 했다. 내가 사장님이었으면 “당신, 너무 피아노 못 쳐요. 우리랑 함께하지 못하겠어요.”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사장님은 매번 고생했다면서 맛있는 칵테일을 한 잔 내주셨다. 감사하기도 죄송하기도 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 채 칵테일을 단숨에 마셨다.
연주 회차가 쌓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원래는 집을 나설 때부터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이젠 와인바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에 도착해서야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난 조금씩 손님들과 눈도 마주치기 시작했다. “낮에는 직장 다니고 밤에는 피아노 치는 홍슬희입니다.”라고 소개하는 말에도 힘이 생겼다. 여전히 내 연주에는 확신이 없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출입문 종소리,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 손님들의 말 소리와 같은 외부 자극에도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하루는 업무를 위해 초등학생 2학년 예은이와 심층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근황을 나누고 인터뷰 질문을 하는데 예은이가 내 말을 끊고 물었다.
“선생님, 피아니스트예요?”
난 너무 놀라서 예은이에게 내가 피아노 치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예은이는 몇 달 전 내가 피아노 동호회 정기연주회 영상을 보여줬던 걸 기억하고 물은 것이었다. 예은이에게 “선생님은 피아니스트가 아니야.”라고 말하려던 찰나, 예은이가 말했다.
“저도 선생님처럼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에요! 선생님 피아니스트 맞죠?”
그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나도 예은이만 할 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음대생 시절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며 꿈을 접었고, 이젠 다신 못 이룰 꿈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리고 14년 만에 운명처럼 피아노를 다시 만나 독주회도 해보고, 독주회를 했던 와인바의 전속 뮤지션이 됐다.
난 벅찬 마음을 담아 예은이에게 말했다.
“맞아, 선생님 피아니스트야.”
지금도 낮엔 직장인 밤엔 피아니스트, 행복한 이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자주 틀린다. 어떤 날은 긴장감에 시작하자마자 손이 굳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난 무대에 서기 위해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