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회까지 마쳤는데 무대공포증?

박수받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일에 쩌든 직장인이 음대 졸업 14년 만에 독주회를 해냈다.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며 흐릿해졌던, ‘피아노 치는 사람’이라는 내 정체성을 다시 찾은 순간이었다. 무대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5년 넘는 시간 동안 우울과 공황장애로 사람들을 피하며 잔뜩 쭈그린 채 지냈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며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고, 결국 독주회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온전히 나로 서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박수 소리를 만끽했다. 나를 위해서라도 무대에 자주 서야겠단 다짐도 했다. 독주회를 또 하기엔 시간도 체력도 없으니 석 달에 한 번 열리는 피아노 동호회 정기연주회부터 빠짐 없이 서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1년에 네 번 열리는 동호회 정기연주회에 모두 참여한다면 적어도 50분 프로그램은 확보된다. 1년 뒤에 독주회를 또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홍슬희쌀롱 다음 날이 되자마자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알람에 맞춰 간신히 눈을 뜨고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겨우 도착한 회사에선 서류에 파묻히고 업무 전화에 시달렸다. 퇴근하면 연습실이 아닌 집으로 향했다. 집사람과 여유롭게 저녁을 먹고 다음 연주에선 어떤 곡을 쳐볼지 이 곡 저 곡 들여다봤다.


그 주 주말이었다. 핸드폰이 띠롱 울렸다.


2025년 3월 정기 연주회 알림

- 공지 글 선착순 댓글로 신청 접수

- 연주는 두 곡까지, 총 연주 시간은 12분 이내

- 대관비 입금해야 연주 신청 완료


한 달 뒤에 열릴 동호회 정기연주회 공지 글이었다. 또 무대에 설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곧바로 댓글을 달았다.


‘홍슬희/연주곡 미정/12분/입금완료


내가 처음으로 댓글 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내 앞으로 댓글 6개가 쌓여 있었다. 댓글엔 역시나 쟁쟁한 연주곡들이 보였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부터 슈베르트 소나타, 쇼팽 스케르쵸,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까지. 이 사람들은 진심이다. 보통이 아니다.


홍슬희쌀롱 4일 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쌀롱에서 쳤던 악보들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연주하다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4일 손 놨다고 손가락 움직임이 바로 둔해지다니. 동호회 연주까지 아직 한 달 가까이 시간이 남았으니 홍슬희쌀롱에서 했던 곡을 연주곡으로 삼으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았다. 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과 쇼팽 흑건 에튀드를 연주곡으로 정하고 한 달 치 연습실을 잡았다.




정기연주회 당일, 연주 준비를 마친 뒤 연주홀로 향했다. 난 차분히 리허설 차례를 기다렸다. 리허설은 연습하는 시간이라 사람들이 객석에 앉아 있어도 아무런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쇼팽 흑건 에튀드를 치는 내 손은 건반 위를 발랄하게 날아다녔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악장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음색을 고르게 낼 수 있었다. 본 무대에서도 이 정도만 치면 사람들에게 내 피아노를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연주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둘 연주 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와 따로 출발했던 집사람도 들어와 내 옆자리에 자리 잡았다. 연주 시작을 알리기 위해 사회자가 앞으로 나가는 순간, 차분하던 심장이 쿵쾅거렸다. 손은 순식간에 차가워지고 손가락과 손바닥엔 땀방울이 올라왔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긴장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리허설을 잘했는데도 불구하고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은 심장 소리에, 나보다 앞선 연주자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내 순서가 다가왔다. 리허설에선 잘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하며 마음을 다잡으며 무대로 걸어 나갔다.


첫 곡인 쇼팽 흑건 에튀드를 시작하기 전에 가만히 헷갈리던 부분을 되짚었다.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린 후에 여유 있는 척 미소도 지으며 발랄하고 명랑한 기분을 한껏 담아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빠르게 첫 여덟 마디가 지나고 뒤이어 다시 흑건 테마가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악보 두 페이지를 건너뛰고 세 번째 페이지로 절로 넘어가 버렸다. 당혹스러웠다. 단 한 번도 이렇게 친 적이 없었다. 재빨리 수습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연주를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건 내 피아노 인생에 없던 일이었고, 넘어간 부분에서 계속 이어가자니 시작하자마자 바로 곡이 끝나버린 꼴이 된다. 멈출 수도, 계속 이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난 멈추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손가락이 흘러가는 동안 재빠르게 어디로 넘어갈지 생각했다.


흔들리는 정신도, 흔들려버린 내 음악도 견딜 수 없어 너무 고통스러웠다. 간신히 되돌아갈 곳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뒤 빠르게 넘어갔다. 실제론 몇 초 걸릴까 말까 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겐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나선 완전히 멘탈이 나갔다. 심지어 팔 마저 단단하게 굳어 위로 붕 떴다. 손가락이 건반에 깊게 닿지 못하니 흑건 에튀드 마지막에 나오는 풍부하고 센 화음은 힘으로 때려버리고 말았다. 빰! 빰! 빰! 하고 끝나야 할 흑건이 쨍! 쨍! 쨍! 하고 끝나버린 것이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야 말았다. 피아노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곡을, 내가 초등학생 때 쳤던 곡을 망치고야 말았다. 그것도 전공생이.


아직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이 남았는데 좀처럼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난 한참 동안 오른손 검지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객석에선 그 누구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적막이 괴로웠다. 차라리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같이 숨 좀 쉴 텐데.


내겐 베토벤에서 만회해야만 한다는 압박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쇼팽을 털어내고 무너진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을 연주했다. 만회하겠다는 생각은 더욱 완벽하게 해야 한단 강박으로 이어졌고, 내 손가락이 닿는 모든 음이 툭툭 튀어나와 귀에 거슬렸다. 완벽이고 자시고 글렀다. 난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어떻게 들려주냐에 집중하기보단 멈추지 않아야겠단 생각만 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마지막 음까지 치고 난 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 굳은 얼굴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을 바라봤다. 지금 내게 보내는 박수는 어떤 의미일까? 전공생이라고 으스대더니 보기 좋게 망쳤다고 생각할까? 연주를 못해서 불쌍하다고 생각할까?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무대에서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독주회도 한 내가 아마추어들 앞에서 왜 이토록 긴장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동호회 사람들은 아마추어지만 클래식 매니아였다. 음대 졸업생인 나보다 음악 지식에 해박했고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도 열심히 다녀 듣는 귀도 좋았다.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머리 텅텅 음대 졸업생인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했던 정기연주회를 생각해 보니 관객들은 박수로 연주자를 평가하고 있었다. 오늘의 나처럼 무대를 망친 사람에겐 잔잔한 박수를, 누가 들어도 인정할 만한 실력의 사람들에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이들에게 평가 받는 게 무서웠던 게 틀림없다. 음대 출신이란 감투가 소용없어질까 봐, 아마추어와 다를 바 없게 보일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난 곧바로 3개월 뒤에 열릴 정기연주회 준비를 시작했다. 곡은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Hob XVI:37 전악장. 12분짜리 곡을 위해 난 3개월 동안 그 어떤 약속도 잡지 않았다. 회사, 연습실, 레슨뿐인 생활을 이어가며 홍슬희쌀롱을 준비할 때보다 더 지독하게 연습했다. 아마추어 피아노인들에게 피아노 못 치는 전공생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6월 정기연주회날 아침, 눈 뜨자마자 연습실로 향했다. 컨디션 관리는 사치였다. 5시간 내리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와 연주회에 갈 준비를 했다. 머리는 한 올도 흘러내리지 않게 틀어 묶고 옷과 신발은 가장 편안한 걸로. 손 땀 닦을 손수건도 챙겼다.


연주홀에 도착해 리허설을 했다. 피아노는 치기 편하게 적당히 가볍고 맑은 소리가 났다. 내가 준비한 하이든과 딱 맞는 음색이었다. 짧은 리허설 시간이 끝나고 핸드폰 알림창만 봤다. 차가 밀려 리허설 시간에 도착 못 하니 자신의 시간을 양보하겠다는 사람들이 가끔 나타나면 바로 시간을 낚아채야 하니까. 두 사람의 리허설 시간을 내가 꿰찼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염치없지만 별수 없었다.


모든 리허설이 끝나고 연주 시간이 되자 연주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직은 심장이 괜찮다. 조금 콩콩거리긴 하지만 견뎌볼 만했다. 무대에서도 이 정도로만 두근거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때, 직전 연주가 떠올랐다.


사회자가 앞으로 나오자마자 따뜻하던 손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차오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심장도 터질 듯 쿵쾅거렸다. 아무리 천천히 숨을 깊게 내쉬어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하필 순서도 첫 번째였다. 사람들의 집중력이 가장 좋을 때였다.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를 애써 숨기며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들고 나간 손수건으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손 땀을 닦아내야 했다.


의외로 연주는 잘했다. 연주 호흡은 매끄러웠고 박수도 우렁찼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하지만 이 무대 이후로 무대 직전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됐다. 난 그다음 무대도, 그다음 무대도, 또 그다음 무대도 첫 음이 연주되기 전까지 연주를 망칠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무대공포증은 다수의 청중 앞에서 공연을 할 때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를 의미하며, 전 세계적으로 특히 음악이나 관련 전공자들이 연습이나 공연을 할 때 경험하고 있다. (출처 : 2024.11.18 정신의학신문-‘무대공포증 원인과 치료법’.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는 무대공포증이 생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