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번뜩 뜨였다. 아침이면 배 위로 올라와 얼굴 곳곳을 핥으며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던 고양이들도 발치에서 아직 단잠을 자고 있었다. 수면을 기록하던 스마트워치를 흔들어 시간을 봤다. 2025년 2월 26일 오전 6시 41분. 난 벌떡 일어나 발밑에서 자고 있던 돼지 고양이 타미를 흔들어 깨웠다. 잠에서 덜 깬 타미가 눈만 꿈뻑거리는 동안 말랑거리는 타미의 뱃살에 얼굴을 묻었다. 오늘이 드디어 왔단 사실이 너무 좋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타미의 꼬릿하고 꼬수운 냄새를 맡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진정됐다.
난 시원한 보리차를 한 잔 마신 뒤 디지털 피아노 앞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러곤 홍슬희쌀롱에서 칠 곡들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바흐는 통통거리는 소리 표현과 리듬감을 살리고, 쇼팽은 왼손은 리듬만 주고 오른손이 끌고 가고, 베토벤은 리듬감과 셈여림의 대비를 더 살리고…. 곡들을 되짚은 뒤 연습을 시작했다. 한 곡 한 곡 칠 수록 가슴 터질 것 같던 설렘은 불안으로 바뀌었다. 일상을 포기하고 연습에만 매달렸는데, 완벽하진 않아도 잘 쳐지지 않던 부분들을 나름 해결했는데, 자주 틀리던 곳에 가까이 가면 손가락이 절로 멈췄다. 틀릴까 봐 겁을 먹고 손이 먼저 굳어버린 탓이었다. 심지어 잘 치던 부분조차 머리가 새하얘져 손가락이 허둥지둥했다. 한 시간 내내 그랬다. 오늘 잘할 수 있을까? 힘이 쭉 빠졌다.
거실로 나와 냉장고에서 집사람이 사둔 커피우유를 꺼내 빨대를 꽂고 천천히 마셨다. 시원하고 달디단 커피우유를 마시고 나니 순식간에 에너지가 몸에 도는 기분이 들었다. 에너지도 채웠겠다, 가방에 악보와 점심에 먹을 단백질 쉐이크를 담고선 연습실로 향했다.
예약한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총 5시간. 교수님은 컨디션 관리를 위해 연주 당일에는 연습을 조금만 하라고 당부하셨지만, 난 교수님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반년 동안 퇴근하면 최소 4시간, 주말에는 6시간이 넘도록 연습했다. 하지만 음대 졸업한 지 14년이 넘어 손이 굳어버린 직장인의 감각을 음대생 시절처럼 살릴 순 없었다. 마지막 연습 5시간이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안도감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두 시간은 속도를 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천천히 치는 연습을 했다. 느리지만 음악의 흐름은 유지하면서. 다음 한 시간 반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아 불안하던 부분, 잘 쳐졌지만 머리가 새하얘지던 부분들을 연습했다. 마지막 한 시간 반은 실제 연주하듯이 연습했다. 연습실 밖에서 방문을 열고 차분히 입장한 뒤, 아무도 없는 벽을 향해 인사했다. 앞엔 아무도 없는데 마치 수십 명의 사람들의 눈이 날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상상 속 손님들에게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곤 의자에 앉아 한 곡씩 소개하고 연주를 했다. 모든 연주를 마친 뒤에 칠 앵콜 곡도 연습했다.
5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난 습도가 올라 후끈해진 연습실을 정리하면서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실수해도 괜찮아. 무대를, 음악을 즐겨! 난 할 수 있어!’
한 겨울에 땀범벅이 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피아노 연습은 체력 단련과 다름 없단 생각을 하며 갈아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개운하게 씻고 나와선 화장대 위에 나의 모든 꾸밈용 장비를 꺼냈다. 반짝거리는 셰도우, 생기를 더해줄 블러셔, 눈을 더 크게 보이게 해줄 속눈썹까지. 직장에 갈 땐 누추한 곳에 귀하게 갈 수 없다며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니 최선을 다해 화장을 했다. 무대 조명에 화려함이 극대화 될 수 있도록 반짝이를 눈가에 한가득 쏟아냈다.
내가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사람으로 재창조 되는 동안, 집사람은 홍슬희쌀롱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가방 하나엔 어제저녁에 인쇄해 둔 홍슬희쌀롱 포스터와 순서지를 구겨지지 않게 돌돌 말아 넣고, 손님들을 기억할 수 있는 방명록과 네임펜, 포스터를 붙일 테이프를 담았다. 다른 가방엔 답례용 선물과 핫팩, 생수를 담았다.
화장을 마친 나는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가지런히 묶었다. 연주할 때 거슬리지 않게 스프레이를 뿌려 한 올도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켰다. 그마저도 불안해서 실삔을 곳곳에 꽂아 잔머리를 모두 숨겼다. 강렬한 록커가 된 것처럼 머리를 앞, 뒤, 좌, 우로 마구 흔들어봤다. 한 올도 흘러내리지 않는군. 안도감을 느끼며 남은 짐을 쌌다.
하고 싶은 거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1부, 2부 드레스를 따로 준비했다. 주름 하나 없이 다려 옷걸이에 걸고 집사람의 철봉 운동 기구에 걸었다. 악보와 앵콜에서 부를 멜로디언, 손 닦을 손수건도 챙겼다. 땀이 쏟아져 화장이 무너질 때를 대비해 화장품도 챙겨야지.
모든 준비를 마쳤다. 거실엔 짐이 한가득이었다. 난 집사람을 1일 로드 매니저로 임명했다. 짐은 모두 집사람의 몫이었다. 어쩌겠나. 전생에 나에게 큰 죄를 지었을 게 분명한 집사람의 숙명인 걸.
와인바에 도착하니 피아노 조율이 한창이었다. 난 조율에 방해 될까봐 살금살금 와인바로 들어왔다. 조율을 해주시는 선생님은 홍 교수님의 피아노 조율을 전담하는 실력자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조율하시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와인바 피아노는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조율사 선생님의 찌푸린 미간이 풀릴 틈이 없었다. 설마 조율이 불가능한 걸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조심스레 조율사 선생님께 다가갔다.
“혹시… 조율에 문제가 있나요?”
조율사 선생님은 한숨을 크게 쉰 뒤,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14년 만에 하시는 연주라고 하셔서 더 신경 쓰는 중인데… 피아노 관리가 전혀 안 됐는지, 소리가 좀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어떡하죠? 한 번 쳐보실래요?”
가슴이 철렁했다. 머릿속에선 잔잔한 곡을 연주하다 갑작스럽게 띵띵 거리는 건반 소리에 당황하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걱정을 안고 피아노에 앉아 88개 건반을 모두 고르게 쳐봤다. 어? 괜찮은데? 난 곧이어 오늘 칠 곡들의 도입부와 소리를 신경 써야 할 부분들도 짧게 쳐봤다. 와인바 대관 협의 때 워낙 상태가 안 좋았던 피아노를 쳐봐서였을까? 그 때에 비해 연주하기가 너무 편했다. 소리는 동글동글 예쁘게 다듬어졌고, 어느 음 하나 튀는 것 없었다. 이 정도라면 연주하기에 부족하진 않을 피아노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조율사 선생님께 쌍엄지를 날리며 말했다.
“선생님!! 완전 마법이에요! 피아노 치기 훨씬 편하고 소리도 너무 좋아졌어요!“
만족하는 내 모습에 조율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당황하셨다. 그리곤 조금만 더 손을 보겠다고 하시며 리허설 시간 직전까지 조율을 하셨다.
집사람이 와인바에 포스터를 붙이고 방명록과 답례품을 놓을 위치를 잡는 동안,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화장실로 갔다. 옷을 갈아 입기 편하게 셔츠를 입고 온 건 신의 한 수였다. 옷을 벗을 때 힘겹게 고정해 놓은 머리카락을 건들 일도 없었다. 다만, 변기를 제외하곤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좁아 드레스를 입는 게 쉽지 않았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상체부터 조심히 넣었다. 다행히 머리는 건들지 않았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지퍼를 올리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화장실에서 뻣뻣한 팔을 한껏 뒤로 보내 간신히 지퍼를 올렸다. 옷매무새를 만지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삼삼오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 쳐다봤다. 난 오늘의 주인공이니 이 시선을 맘껏 즐겨야지.
와인바로 돌아와서 리허설을 시작했다. 5시간 연습을 하고 온 효과가 있었는지, 자꾸만 틀리던 부분도 매끄럽게 쳐졌고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지던 부분도 막힘없이 쳐졌다. 긴장은 했지만 이 정도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 한 명이 리허설 중에 도착했다. 처음 하는 독주회인 탓에 리허설과 손님 입장 시간 사이를 비워놓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지도 못했다. 뭐, 어쩔 수 있나. 난 리허설을 멈추고 친구에게로 갔다. 이 친구는 내 우울과 공황장애의 시작부터 힘든 시절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친구였다. 홍슬희쌀롱 시작도 안 했는데, 즐기려고 준비한 피아노 파티인데, 친구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친구는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괜한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친구들, 봉사 동아리 언니들, 학교 선후배, 함께 음악을 하던 제자와 친구들, 사촌 동생과 동호회 사람들, 회사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난 자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용인, 서울, 인천, 부천 등 멀리서 나 하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여기까지 와주다니.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와인바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음식과 와인도 세팅이 마무리 됐다. 저녁 7시 30분. 연주 시간이 되자마자 난 무대로 우아하게 걸어 나갔다. 내 사진을 찍는사람들 앞에서 드레스 자태를 뽐내기도 했다. 연주회 시작을 알리는, “홍슬희의 첫 파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자 사람들은 큰 박수와 환호를 나에게 보냈다.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잠잠해진 뒤 ‘스리가 박수 받고 싶어서 하는 피아노 파티 『홍슬희쌀롱』’을 왜 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되게 의미 있는 날인 게, 14년 전에 마지막 무대를 했었고 14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서는 날이에요. 사실 다른 일을 하면서 피아노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어요. 무대에 서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신 없을 줄 알았고요. 그런데 무대에 서야겠다는 충동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네요. 연주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돼서 준비하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 멘트가 끝나자 사람들은 내가 다시 피아노를 친다는 것에 대해 감격하고, 기특해하고, 조금은 안쓰러워 하기도 했다. 나는 파티를 하려던 것인데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아 얼른 특별히 준비한 안내 사항을 공지했다.
“제 사진을 찍으셔도 되는데, 무조건 필터 카메라로 부탁드릴게요. 순서지에 필터 카메라 설정 세팅 값 나와 있거든요? 그 세팅으로 찍어주세요.”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만족스러웠다. 난 곧이어 1부에서 연주할 곡들을 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첫 번째 곡을 치려던 순간, 놓친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건배사였다. 내가 까먹은 게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물을 담은 와인잔을 들고선 내가 ‘홍슬희’ 하면 ‘멋지다’ 라고 해달라고 말했다.
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홍슬희!”
사람들도 큰 목소리로 외쳤다.
“멋지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를 만끽하며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다. 웃음기를 싹 빼고 내가 처음으로 칠 바흐 인벤션 4번의 앞 부분을 떠올렸다. 순식간에 와인바는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렸다. 난 머릿속으로 4마디까지 노래를 부르며 리듬을 탔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리듬을 타고, 마이너(minor, 단조)의 슬픈 감정을 담아 연주를 시작했다. 완전히 몰입한 나는 내 마음이 피아노와 연결된 것이 느껴졌다. 뒤이어 친 바흐 인벤션 8번은 통통 튀고 밝은 느낌을 담아 노래했다. 밝게 울리는 소리에 나도 어린 아이가 된 것 처럼 신났다. 4분 남짓한 바흐 연주는 성공적이었다.
난 곧바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 연주를 시작했다. 이 곡은 내가 우울과 공황장애라는 수렁에서 다시 일어나고 싶을 때마다 찾던 곡이었다.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던 내 감정들을 쏟아낼 수 있던 유일한 곡이자, 굳어버린 손가락의 바닥을 느껴 피아노를 아예 놔버리게 한 곡. 난 연주를 하던 중 자꾸만 수렁에 빠져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마다 손가락은 건반에서 제자리를 놓쳤다. 곡에 집중해야 하는데… 난 흔들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온 집중을 다해 곡에 몰입했다. 이번엔 피아노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곡의 마지막 화성을 치고 나자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환호 사이로 대학 친구가 현금을 흔들며 무대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곤 내가 미리 열어놓은 멜로디언 케이스에 현금을 넣었다. 사람들도 나도 웃음이 터졌다.
난 기타 케이스를 앞에 두고 버스킹 하는 기타리스트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초대장에 꽃이랑 케이크 살 돈으로 멜로디언 케이스를 채워달라고 써놨었다. 그런데 진짜로 채워주다니.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현금을 흔들며 무대 앞으로 나와 멜로디언 케이스를 채웠다. 주최자가 돈 받는 파티라니, 수렁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흥분감이 온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난 곧이어 이 흥분의 정점을 찍어줄 리스트 라 캄파넬라를 연주했다. 잔잔하게 시작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하게 내달리며 끝나는 이 곡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은 큰 소리로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역시 라 캄파넬라는 효과가 좋다.
난 피아니스트들처럼 인터미션도 가졌다. 쉬는 동안 화장실로 가서 2부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오자 사람들은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는구나.” 라고 말했다.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불과 1년 전까진 술에 의지한 채 아무런 의욕 없이 지냈으니까. 난 살아있음을 느꼈다.
2부 첫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전 악장이었다. 특히 1악장은 내가 연주한 곡 중에서 준비하기 가장 까다로웠다. 맑은 음색도 표현하기 어려웠고 빠르고 고르게 소리를 내는 것도 어려웠다. 게다가 페달도 거의 안쓰다 싶이 해서 비루한 내 실력을 가릴 수도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준비한 곡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연습했다. 메트로놈 연습도 극복했다. 열심히 준비한 덕분인지 리허설 때에도 분명히 내가 준비한 만큼 연주를 해냈었다.
그런데 실제 연주에선 예상하지 못한 몇 군데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정신적으로. 연주 시작 전, 과도하게 맑은 음색과 고른 소리를 내는 것만 머릿속으로 떠올려서였을까? 음악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했다. 1부에서도 음을 몇 군데 놓친 부분들이 있었지만 정신력이 흔들리거나 몰입이 깨지진 않았다. 하지만 정신력이 무너진 상태에선 포기하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난 1악장을 멈추고 다시 시작할까? 그럴싸한 곳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악장으로 넘어갈까? 하는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14년 만에 서는 무대에선 포기란 있을 수 없었다. 난 대차게 흔들리는 정신을 간신히 다잡으며 1악장을 마무리했다. 얼굴도 몸도 잔뜩 굳은 채 2, 3악장을 뒤이어 연주했다. 2, 3악장은 틀린 곳 하나 없었지만 내 마음과 피아노가 연결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만족도 0%짜리 연주였다. 사람들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앵콜 곡까지 3곡 남았는데 앞으로도 이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짧은 순간에 몰려 들어왔다. 잠깐 적막이 흐른 뒤 대학 친구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마치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박수 소리에 울컥해 그 어떤 멘트도 치지 못하던 순간, 대학 친구가 또 현금을 흔들며 무대 앞으로 뛰어 나왔다.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린 한참을 웃었다. 실컷 웃고 나자 ‘에이, 그냥 즐기자 즐겨. 오늘은 나의 날이야!’하는 마음이 들었다.
‘즐기자’라는 마음을 먹자마자, 사람들이 박수 소리에 신나기 시작했다. 난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다음 곡들을 연주했다. 맥도웰의 마녀의 춤과 쇼팽 발라드 3번에선 가끔 팔이 위로 떠 손가락이 건반에 붙지 않고 겉도는 상황이 펼쳐졌다. 극도로 흥분해 몸을 컨트롤 할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다행히 모차르트 때처럼 정신이 흔들리진 않았다. 난 가끔 나오는 실수에 개의치 않고 내 손끝으로 흘러 나오는 음악을 충분히 즐겼다.
마지막 곡인 쇼팽 발라드 3번을 마치고 나자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뒤이어 사람들이 앵콜을 외쳤다. 난 사람들을 향해 씩 웃은 뒤, 숨겨놨던 비장의 무기, 멜로디언을 꺼내 들어 올렸다. 그러곤 피아노 위에 멜로디언을 올려 놓고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어떤 곡을 할 것인지 소개를 하지 않고 도입부를 치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앵콜 곡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 <인생의 회전목마>였다. 아직 한 방 남았다. 첫 소절이 끝난 뒤 멜로디언 호스를 입에 물었다. 그리곤 멜로디언에 오른손을 올려 인생의 회전목마 테마를 연주하고, 동시에 왼손은 피아노에서 쿵짝짝 반주를 연주했다. 사람들은 ‘저렇게 연주가 돼?’라며 놀라다가, 이내 쿵짝짝 쿵짝짝 거리는 인생의 회전목마를 나와 함께 즐겼다. 온 몸을 던져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대 앞으로 뛰쳐나와 멜로디언 케이스를 채웠다. 봉사동아리 언니를 따라온 꼬맹이 딸까지도.
모든 연주가 끝난 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은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준비했냐며, 자랑스럽고 멋있다고 내 엉덩이를 두들겨 대기 바빴다. 회사 상사도 내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며,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줬다. 난 오랜만에 원망을 내려놓고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드렸다. 대관 시간이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뒤풀이 장소로 친구들을 먼저 보낸 뒤 집사람과 함께 와인바에 있던 짐들을 챙겼다. 와인바 건물 4층에 있던 포스터들도 조심히 떼서 챙겼다. 소란스러웠던 홍슬희쌀롱의 막이 내렸다.
새벽 2시, 흥겨웠던 뒤풀이가 끝난 뒤, 집사람과 난 집으로 향했다. 난 차에서 오늘 홍슬희쌀롱이 어땠는지, 내 기분은 얼마나 좋았는지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집사람은 그래, 잘했어, 우리 쮸리 최고야 하며 내 말에 장단을 맞춰줬다. 고개를 돌려 운전하고 있는 집사람을 쳐다봤다. 집사람은 늦은 밤에 운전 하느라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런 집사람을 보고 있자니 마음 깊이에서부터 고마움과 사랑이 솟구쳐 올랐다. 집사람은 반 년 동안 내가 홍슬희쌀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일상을 나에게 맞춰줬다. 리허설이 필요할 때면 늦은 밤에도 연습실로 달려와 내 음악을 들어줬다. 오늘도 매니저를 자처하며 나의 손발이 되어줬다. 난 기어봉을 잡고 있는 집사람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집사람의 서포트가 아니었으면 홍슬희쌀롱은 절대 못 했다. 난 집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낯간지러우니까 농담도 섞어서.
“오빠 아니었으면 나 홍슬희쌀롱 못했어. 진짜 고마워. 오빤 분명 전생에 큰 죄를 지었을 거야.”
집사람은 진심과 농담이 섞인 내 말에 크게 웃으며 답했다.
“쮸리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겠지.”
스리가 박수 받고 싶어서 하는 피아노 파티 『홍슬희 쌀롱』이 끝났다. 직장인인 내가 피아노 독주회를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난 몇 날 며칠을 연주 영상과 사진을 밤새 보며 그날의 감동을 되새겼다. 이 감동을 또 느끼기 위해 매년 독주회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굳게 했다.
절대 못 벗어날 것 같았던 우울과 공황장애의 늪에서도 한 걸음 빠져나왔다. 난 여전히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때론 숨을 못 쉬기도 하고 수면제 없인 잠들지 못한다. 하지만 깊은 수렁에 빠져있던 홍슬희와 지금의 홍슬희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의 난 죽어야 끝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피아노를 치며 나쁜 감정을 흘려보내고 금방 취하는 술에 의지하기 보단 소소한 성장을 발견할 수 있는 피아노를 의지했다. 손끝에서 되살아난 감각은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안겨줬다.
홍슬희쌀롱을 통해 14년 전에 내가 직접 떠나보냈던 나의 정체성을 되찾았다.
난 피아노 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