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단팥죽 사이
옹심이, 너란 녀석... ㅎ ㅎ ㅎ
초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다.
어른들을 따라 성도재일에 철야 정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음력 12월 8일 성도절(成道節)은 부처님 오신 날·열반절·출가 일과 더불어 불교에서는 4대 명절의 하나로 손꼽는 날이다. 그리하여 이 날에는 석가의 성도(成道)를 기념하기 위해 사찰에서는 철야 정진을 한다. 철야 정진 중 으뜸은 석가가 깨달음에 다다랐던 방법인 좌선을 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새벽 별이 뜨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석가가 보리수나무 아래 좌선을 한 6년이 지난 시점의 어느 새벽에 별을 보고 정각(正覺)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모두들 공기가 차디찬 법당에 모여 키 160 센티미터 정도의 피골이 상접하시고 빼빼 마르신 수행자 주지 스님을 중심으로 진지한 좌선을 하던 도중 스님의 친 어머니셨던 노보살님께서 주섬주섬 참선하기 전에 벗어 놓았던 겨울 이불만큼이나 두껍고 긴 목도리와 털장갑을 챙겨 법당을 빠져나가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찬 공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리들이 좌선에 몰입해 있었을 무렵, 법당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노보살님께서,
"신님 (스님의 사투리 발음), 옹심이 (새알심의 사투리) 띄워유?"
순간,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 듯,
노보살님의 말씀이 끝남과 동시에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고 정각을 이르게 하는 좌선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우리는 참선을 정해진 시간까지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좌선 후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먹었던
옹심이가 아주 알맞게 익은 그 팥죽 한 그릇의 맛과 따스한 온기이다.
정각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주지 스님의 어머니는 따뜻하고 맛있는 팥죽이 중요했나 보다. 그 추운 겨울 차디차다 못해 발가락 마디마디까지 시린 법당 안에서 밤새도록 기도와 좌선을 하는 신도와 딸의 출출함과 건강이 걱정되었었나 보다. 그녀에게는 정각에 이르는 결과보다 그 길을 가는 한 시 한 초에 쫀득 쪽 득한 식감이 살아있는 찹쌀로 만든 옹심이를 넣은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그녀의 장녀이자 시골 절의 주지가 된 수행자 딸과 그 딸과 더불어 좌선을 하는 신도들에게 때 맞게 보시하는 일이 더 중요했을 지리다. 그리하여, 그녀는 두꺼운 털목도리도 가려 줄 수 없었던 코 끝이 아리며 시퍼렇게 차갑고도 사나운 한 깊은 산골 겨울의 새벽 공기와 맞서며 옹심이를 넣는 타이밍을 사수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을 지리라.
널 보면,
난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넌,
도대체
깨달음과 어떤 사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