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부정의 역사

by 숨 Breath

3부 2막 제 이름을 갖기까지


<부정의 역사>


오래 인정하지 않았기에, 오랜 세월 느껴지는 감정들 또한 온전히 인정할 수 없었다. 부정의 시작이었다.


오랜 부정은 점점 더 외롭고, 예민하게. 완벽이 아니라면 뱉어버리는 걸 반복하다 결국 아무것도 삼키지 못해 허기지기만 할 뿐.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는지, 그 감정들을 느끼는 게 맞는지, 이게 정말 맞는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렸다. 그 답답함을 풀 수 없음에 품어도 되는 감정인지.


상처에 경계를 세우며, 확실하지 않다면 함부로 소비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일상을 가장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태도는 의심을 자라나게 했고, 입은 더욱 무거워졌다.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겠지.


느끼지 않으려는 사람에겐 무엇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너의 마음을 완전히 몰랐던 게 아니라 닿지 않은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억 속 모호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넌 원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나와 멀어지는 것. 그래서 네가 바라던 대로 너에게서 나만 멀어지면 네가 행복할 거라 믿었다.


너를 떠올리면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잊으려 했다. 너의 말만 따라 내게 차가웠던 네가 맞겠거니. 모호한 나보다 분명한 네가 결국 맞겠거니. 몇 번을 생각해도 모르겠어, 몇 번을 생각해야 알 수 있게 될까.


그 일이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고 꺼내기도 싫었다. 그 일로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싫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어떻게 잊으려 노력했는데. 그 노력에 배신하는 기분이었다. 나를 배신하는 기분이었다. 빗나간 진심은 진실을 부정하게 했다.




나를 정의하려 했다. 감정을 고정하려 했다. 안정을 위해. 흔들렸기에 상처받았던 과거가 나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것이 성숙인 줄 알았다.


오랜 기다림 또한 인정하기 싫었다. 기대하게 되어 실망하기도 싫었다. 의도마저 모호해졌다. 이럴 거면 다가오지 말지 원망했다. 오래가진 않았다.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나의 마음이 있기에 누군들 쉽겠냐고. 방식의 차이를 소통할 수 없기에 물러서는 마음이었다.


네가 남겼던 말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비슷한 말을 들으면, 돌아서면 절벽이 있을 것 같은 서늘한 아찔함이 오래도록 같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 걸 너에게 남기고 싶지 않았다. 뭔가 있었던 거라면 이 방식도 너에겐 안 좋은 기억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더라면 이런저런 말을 다 했을 것이다.


나름의 이유로 택했던 선택은 진심의 전부가 아니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방어적인 모습은 옳은 방식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진짜 안정이 아닌 임시방편으로 연명한 모습이었으니. 붙들어야 하는 생존이었으니. 실은 완전한 거짓이 아닌 또 하나의 방식이었음에. 철저히 인간이기에 택한 심리적 선택들이 지배하는 사고로 삶을 살아왔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의미. 혼자 견뎌야 했던 불안한 마음과 외로운 시간. 극에 치달았던 두통과 조여 오는 내일.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불덩이들.



edward-kucherenko-gjqk_OxMi28-unsplash(사용).jpg



나의 온 마음, 나의 온 마을이 불타고 있던 때. 사라지는 안전지대. 왜 이러는지 나조차 설명할 수 없었던 시간. 틀린 것만 같은 마음. 주체할 수 없던 감정에 기생했던 나.


너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이랬던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




william-krause-wPsDfkS_noU-unsplash(사용).jpg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