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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Him Apr 24. 2021

5. 왜 급하게 살았지

사라진 것들

먹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대낮에 머리가 아플 만큼 울고 나니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멍한 느낌이었다.


기억에 남는 건 울음을 겨우 참는 나에게 수님이

이성적인 의사와 감정적인 사람의 경계에 서서

해주셨던 성모병원에 가서 치료를 꼭 받으라는 조언이었다.


빠져나온 병원 앞에는 강남 성모병원 응급실로 당장 나를 데려다줄 것처럼 택시가 줄 서있었으며 당장 가서 입원 수속을 하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곳을 들어가는 순간 난 더 이상 이 사회와의 어떠한 접점도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병원 앞 길거리를 걸었다. 앞으로 백혈병 환자로서 살면 6월의 날씨를 한번 더 느끼지도 못하고

태양의 뜨거움도 못 느낄 테니 울고 난 얼굴을 햇살에 말리듯이 하늘을 한번 더 쳐다보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놓았다.


앞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어디에서 뭐하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전역 한 달 늦게 한다는 거짓말과 함께 1달만 아무도 몰래 치료받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건강하기만을 기도해주던 가족에게도

내 전역을 같이 기다려주던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습을 상상했던 나에게도


혼자 감당하는 모습이 최선인 줄 알았다.


그렇게 수 많은 생각에 사로잡히던 중 군대에 있어 먹고 싶었지만 항상 말로만 듣던 

서브웨이가 눈앞에 있었다.


그 순간 먹고 싶던 음식이 서브웨이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먹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맴돌고

백혈병 환자가 된 이후 첫번째 식사로 

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선택했다. 


의외로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평범한 샌드위치였지만

이 순간을 앞으로 느낄 수 없다는 생각에 지금의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평소에 너무나 할 수 있어서 하지 않았고 미뤄두었던 일상들이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샌드위치를 벽 보고 먹었다. 


조금만 부지런하게 살걸 

조금만 누리고 살걸


그 조금만 조금만 하는 생각들이

나를 조금씩 후회의 굴레 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나란 놈은 항상 그랬었다.

항상 급한 현실이 나에겐 우선이었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너무나 많았으나

당장 눈앞에 던져진 일들만 해치우다 보니

지나가는 건 시간이고 늘어가는 건 후회뿐이었다.


지나고 보면 급한 일, 우선이었던 일 정말 아무 일도 없었으나 가 항상 모든 걸 급하게 만들 내 스스로 핑계를 만들며 하고 싶던 것들도 못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급하게 날 찾아온

급성 백혈병도 내가 만든 걸 지도 모른다.


급하지도 않을 때는 모든 현실을 급하 만들고

빠르게 사는 것만을 원했으며

역설적이게도 정작 치료가 한시가 급한 그 순간에는

지금까지 못 누리고 살았다면서 브웨이를 먹고 강동역을 걸으면서 평소에는 누리지도 않던 여유를 누렸다.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세상을 마주하는 날

지금 느낀 이 여유를 잊지 않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날 한 번만 살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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