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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Him May 10. 2021

6. 응급실에서

사라진 것들




평소에 남들을 향해 있던 마음의 가시들이

내면으로 방향을 바꾸는 순간

내 마음이 쉽게 다치기 시작하였다.


남들에게 향했던 가시들이 꽤 날카로웠나 보다.




많은 고민 끝에 부재중 전화에 남아있던

엄마에게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절대 이 상황을 숨길 수 을뿐더러

나도 어디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일단 나라도 당당하고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해야

그나마 엄마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다짐을 하고 택시를 탔다.

내가 간 대학병원은 백혈병 치료센터가 없기에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서울성모병원으로 야 했다.

급하게 치료를 받기 위해 탔다기보다는

매일 돈 아끼기 위해 걸어 다니거나

버스, 지하철을 탄 내가 

이제는 돈을 아낄 이유가 없었고

내 병의 완치보다 병원비를 더 걱정한 내가

그 순간만큼은 보기 싫었기 때문에

돈걱정은 미뤄 둔 채 택시를 타버렸다

항상 택시를 탈 때는

얼마 나올지 예상 금액을 네이버에 쳐

달리는 내내 미터기에 찍힌 요금을 확인했지만

그때만큼은 택시에 타 성모병원으로 가

풍경만을 바라보았다.


택시기사님은 심한 택시 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누구 병문안 가냐는 질문을 하지만

내 진솔한 대답이 더욱 심심하게 만들 것 같아

짧게 대답을 하고는 말을 아꼈다.


아마 버릇없는 놈이라 생각하셨을 것 같.


하지만 그때 나에게 그 시간은

창밖에 지나가는 풍경과 사람들을

내 기억 속에 담기에도 너무 바쁜 시간이었다.


택시 밖 사람들은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고작 택시 안에서도 이렇게 창 밖에 사람들을 부러워하는데

병원 안에서는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한강 다리 위 우연히 있던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커피 한잔만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채

응급실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말 그대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니

한강 다리 위를 건너는 택시를 멈출 수는 없었다.


날씨는 좋았으나 하늘은 맑지 않았다.


멈출 수 없는 택시 안에서

살려달라는 내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내 친구 중에서 가장 신실하며 교회를 매주 나가는

친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마 군인 휴가 나와서 이 날씨 좋은 날

뭐 하고 있냐 라는 질문이 너무 뻔한 통화였지만

창밖 구경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뻔한 첫 질문이 그날따라 낯설게 들려왔다.


"뭐하?"

"내가 좀만 이따 다시 전화할게"


대답을 정말 아무런 일도 없듯이

뻔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택시 안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눈물샘이 다 마르기 전까지는

더 이상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 우는 건 괜찮아도

남 앞에서는 울지 않고 싶었다.


남 앞에서 우는 게 버릇되면

내가 너무 불쌍하게 보일까 봐

나 혼자 실컷 울고 남 앞에서는 안 울겠다고

굳게 다짐했었지만 택시 안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결국 기사님께 큰 일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우는 걸 들키지 않게 기사님의 시선을 살피며

울었지만 덩치 큰 사내놈이 흐느끼며 택시 자리에서

울고 있으니 안쳐다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사실 큰 병에 걸려서 치료받으러 갑니다"

"... 내가 참 뭐라 해줄 말은 없는데 힘내요 학생"

"감사합니다"


낯선 이에게 서 오는 낯선 위로가 힘이 되었다.

버릇없는 놈에서 불쌍한 학생으로 바뀌

다행이지만 괜히 기사님의 하루를 망친 건 아닐지 싶었다.


그렇게 한바탕 흐느낀 채 택시에 내려

스스로 응급실로 걸어 들어갔다.


백혈병 환자가 들어가

모든 환자들을 뒤로한 채

당장 입원을 하고

당장 치료를 받을 줄 알았으나


혼자 세상에서 제일 큰 병에 걸린 줄 알고

착각했던 내게 약간의 생각할 시간이라도 주신 걸까


장염으로 급실을 갔던 예전의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끔 몇 번 이름 불리는

몇 가지 조사 그리고 수많은 대기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진짜 응급환자가 되기 위한

준비시간을 주신 것 같았다.


응급실에서

나 같은 백혈병 환자들은 

실려오거나 아니면 걸어 들어오는 환자로 구별된다고 한다.


그나마 난 이 곳을 

나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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