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현 Nov 24. 2017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What We're Reading #120 반추(反芻)

지난 11월 16일, 서울 성수동에서 '외환위기 20주년' 오프라인 행사가 있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초등학생부터 외국 증권사에서 일하고 있던 참석자까지 다양한 연령대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뉴욕에 있는 삼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당시 미국계 투자은행의 특수상황그룹(SSG) 소속으로, 한국의 외환위기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삼촌에게 물었습니다.


외환위기 사태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삼촌은 정부와의 관계, 부실채권(NPL) 매입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는 어디까지나 서구 투자자의 관점임을 밝혔습니다. 미국 은행원 또는 이민자로서 바라본 상황이 한국 정부의 시선과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또한 "20년이 지난 지금, 이헌재 전 장관의 기억이 사실인지 궁금하지만, 진실은 기록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문득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 떠올랐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모두 다르게 진술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다 보면 오히려 각자의 '사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진실이 존재할까요? 그리고 제대로 된 '기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실뿐 아니라 주관적인 생각까지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년~2017년 '촛불혁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눈앞에서 직접 겪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를 사실에 근거하여 제대로 기록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후대에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두 사건은 각각 진솔하게 기록한 책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재구성됩니다. 중요한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종종 잊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기록하고 계신가요? 그 기록이 거창하거나 대의명분을 지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간간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7년 전, 나름의 명분도 마련해놨고요.


성수동에서 나눈 대화는 오는 12월 중순, 정리된 리포트로 나올 예정입니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제현주 공공그라운드 대표,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와의 대화가 또 하나의 값진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맑고 시린 2017년 11월 24일,
서울 역삼동에서 손현 드림
* 사진: 「촛불혁명」 (느린걸음, 2017)


PUBLY 팀이 읽은 이번 주 콘텐츠


2016 겨울 그리고 2017 봄, 빛으로 쓴 역사 자세히 보기
"촛불로 켜져 있는 광화문역입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시는 분들은 몸조심하시고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 지하철 5호선 기관사의 안내 방송. 열차에서 이 방송을 들은 시민들은 박수와 함성을 터뜨렸다. 2016.11.12" (p.72)


다시 한번 기록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1년 전에 보낸 뉴스레터의 제목은 ''국가'라는 마법에서 깨어나기'였습니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고 여전히 변화는 진행형입니다. '촛불혁명'의 결정적 순간과 현장의 발언들 그리고 탄핵 선고문까지 꼼꼼하게 담은 귀한 기록물을 소개합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나눔문화의 김예슬이 글로 쓰고, 김재현이 사진으로 담은 「촛불혁명」입니다.


"100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왜 폭력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 100만 명이 모였기에 평화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언제든 폭력의 가능성을 지닌 100만이라는 인간 몸의 위력, 절제된 분노를 품은 100만 평화집회의 도덕의 높이." (p.114)

나침반과 기록
「에스콰이어」 신기주 편집장의 글 두 편을 소개합니다. 공통적으로 '나는 지금 무엇을 기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호에 실린 '나침반'과 6월 호에 실린 '기록'입니다. 6월 호에 실린 글은 지면으로만 보실 수 있습니다.

"원래 세상이 바뀌는 건 이런 식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자신을 바꾼다. 작은 것부터 바뀐다. 작은 조직이 바뀐다. 문화가 바뀐다. 나라가 바뀌고 변할 것 같지 않던 세상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나침반 / 「에스콰이어」 2017.5) 읽어보기

"문득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을 처음 읽었던 10년 전 그때처럼 피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사실의 재구성을 통한 진실의 기록을 저널리스트로서의 목표로 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당시 다니던 유명 매체를 그만뒀다. 취재 현장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깝게 다가가서 조금이라도 더 입체적인 기록을 할 수 있겠다 싶은 무명 매체로 자리를 옮겼다." (기록 / 「에스콰이어」 2017.6)

더 나은 기억을 위한 방법 읽어보기 (영문 기사)
앞서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재구성된다고 썼습니다. 장기 기억에 저장했던 것을 불러내 단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맥락이 생기고, 오류가 개입합니다. 이처럼 산만한 환경에서 우리의 기억은 무사할까요? 몇 가지 팁을 뉴욕타임스에서 전합니다.


* 뉴스레터 전문 보기: http://bit.ly/2iLB0wz

[What We're Reading 구독하기]
PUBLY가 만들고 큐레이션하는 콘텐츠를 좋아할 지인에게 뉴스레터 WWR(What We're Reading)을 알려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를 열심히 베는 사람은 숲을 볼 여력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