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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May 22. 2016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대식의 빅퀘스천> 북리뷰

지난 3월 12일,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3연승을 거둔 날이었다. 그날 저녁 독서모임에 참석했는데, 사람들 대부분의 표정이 어두웠다. 누군가 인공지능이 주도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고, 머지않아 우리들의 일자리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누군가 이를 법과 제도를 통해 다시 규정해야 할 거라며 ‘기본소득’을 언급했다. 한편 모두가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고, 이는 제도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임 초반부터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다음 모임에서 서로가 동등한 정보를 토대로 다시 토론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마침 뇌과학 분야에서 요즘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두 명이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와 김대식 교수였고, 그들의 최근 저서 중 <김대식의 빅퀘스천>으로 정해졌다.


<김대식의 빅퀘스천>은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 등 범주가 큰 질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직접적인 대답을 들려주는 대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고전, 철학, 현대 과학,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질문과 연관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 질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프레임 역할을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제법 많았다.


인생에 절대적인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반가운 것일까? 의미가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정해진 목표와 용도가 있다는 말이다. 나에게 용도가 있으면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무언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망치이고, 망치이기에 벽에 못을 박아야만 한다. (…) 그렇다면 ‘나를 위한 인생’은 인생에서 절대 의미를 뺀 후부터 가능해진다. 삶의 의미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가벼워진다는 말이다. / p.64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


그는 ‘결국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어차피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p,64)’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지 되묻는다. 또한 우리가 운명이라고 믿는 착각, 자율의지의 허점을 짚기도 한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선택이라는 실질적 점들을 연결해 그린 가상의 ‘선’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며, ‘나’라는 허상은 ‘선택의 자유’라는 그럴싸한 ‘스토리’를 통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는지도 모른다. / p.104 ‘운명이란 무엇인가’


문득 어느 컨설턴트와의 대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 대학원 MBA 과정을 막 마친 상태였는데, 처음 지원서를 쓸 때 과거의 행보에 대해 매우 상세히 적어야 했단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신이 자율의지로 내렸다고 생각하는) 선택들의 집합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구성한다는 이야기다. 덧붙여 예전에는 복직하는 대신 바로 은행권으로 옮기는 사람이 많았단다. 당시 은행권 연봉이 워낙 높아 전 직장의 스폰서십을 반환하더라도 손실보다 이득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에는 딱히 옮길 곳이 없어 최소 2년 이상은 회사에서 버티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요즘 상황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제는 돈을 비록 덜 벌더라도, 최소한의 여가 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하는 추세란다. 사람들이 ‘삶’을 찾기 시작했다고(they’re looking for ‘life’).


그렇다면 미래에도 우리들의 일자리는 안전할까? 이 때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지구의 모든 물건과 서비스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10개의 인공지능 회사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지구는 무한으로 부자가 되겠지만 99% 이상의 사람들은 직업도, 소득도 없어지지 않을까. 지구에서 소득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단 10명뿐이라면? 100년 후 인공지능 시대에 과연 민주주의가 여전히 존재할지 궁금해진다. / p.155 ‘민주주의는 영원한가’


어쩌면 ‘삶’이나 민주주의의 존속 가능성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기계가 지능을 가지는 순간, 인간은 기계에게 인간이 왜 필요한지 설득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 시나리오는 인류 자체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기에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적 복제가 가능한 현대 사회에 ‘원본’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가능한지 물었다. 사진기로 <모나리자>를 100만 번 똑같이 찍어낼 수 있는데, 왜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한 장의 그림만이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벤야민의 사촌동생이자 철학자였던 귄터 안더스는 책임감의 복제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서 한 명은 죽일 수 있지만, 혼자 100만 명을 죽일 수는 없다. 100만 명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고,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이 필요하다. 공장은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과학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100만 명을 죽인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을까? / p.132 ‘인간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간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마침 지난 4월 중순, 모터사이클로 짧게 전라남도를 여행하는 동안 진도 팽목항을 들렀다. 팽목항의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리본들을 바라보며 여전히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를 생각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그 책임이 서서히 증발하는 사이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책임이 생겨나는 과정을 봤다. 오는 여름에 진행될 인양 작업 때문에 현재 광양 수리조선소에서 필요한 장비를 제작 중인 지인은 작업에 대한 책임과 부담감을 토로했었다.


책의 흐름이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다. 지난 2013년 1월부터 작년 8월까지 모 주간지에 같은 이름으로 실린 칼럼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들이 눈에 보였다. ‘길가메시’의 사례가 반복된다든지, 같은 인물에 대한 한글 표기가 서로 다른 경우(303쪽에서는 모라베츠 Moravec, 311쪽에서는 모라비치 Moravec)가 있었다. 인간의 뇌에 관한 무게가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96쪽에서 약 1.5kg, 251, 261쪽에서는 1.4kg). 비록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자칫 글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한편 이 책이 교묘하게 정치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다양한 화두를 소개하다 보니 저자의 모습이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가치판단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자신의 의견이 드러났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묘사한 한국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모임을 마치고 나중에 한 명이 저자인 김대식 교수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책을 매우 흥미롭게 잘 읽었고, 모임 때 나눈 내용을 공유했단다. 한편 답신의 내용이 조금은 의외였다. 짧은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오타가 두 개나 보였다. 독일에서 오래 공부했기 때문에 한글이 서투른가? 아니면 이동하던 중에 스마트폰으로 급히 보내느라 저지른 실수일까? 이어서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는 왜 이 책을 썼을까. 빅퀘스천은 누구를 위한 기획일까. 지적 갈증을 느끼는 독자를 위해서? 사람들은 왜 지적 갈증을 느낄까?


다음 날인 3월 13일,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네 번째 경기에서 180수 끝에 불계승으로 이겼다. 언론에서는 이세돌의 승리를 ‘인간의 승리’로 포장하며 기사를 내보내기에 바빴다. 어쨌든 지난 대국을 계기로 인공지능은 그 존재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인지시켰다.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그것을 전망하기는 점점 어려울 것이다. 31가지 빅퀘스천을 관통하는 하나의 물음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인간’에게서 그 답을 찾고 싶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모든 것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냐고.(p.309)’라고 할지라도, 답이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답이라도 그것을 믿고 싶은 것이 나약한 인간이니까.


* PUBLY에 기고한 '31가지 질문들'의 원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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