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독일의 풀뿌리축구(Grassroots)
주인장은 모 활동에서 유소년 축구 관련 해외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다. 현지에서 함께 동행하며 느끼고 생각한 점을 4편에 걸쳐 전하려 한다. 1편과 2편에선 각각 잉글랜드와 독일의 유소년 축구에 대해, 3편에선 두 나라의 풀뿌리축구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끝으로 선진 축구의 대표 국가인 두 나라가 한국 유소년 선수 육성, 더 나아가 한국 축구에 던지는 시사점을 짚어보며 글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부족한 글솜씨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 연재 순서
① 잉글랜드 유소년 축구 이야기
② 독일 유소년 축구 이야기
③ 잉글랜드, 독일의 풀뿌리축구(Grassroots)
④ 두 나라가 한국 축구에 던지는 시사점
어떤 운동 종목이든 발전을 위해선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 대표 축구 선진국인 잉글랜드와 독일은 주말만 되면 온 동네 축구장에서 여러 연령대의 아이들이 리그나 대회를 치른다. 직접 가서 본 현장 열기는 프로 경기 못지 않다. 이들의 풀뿌리축구는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한국과 차이를 보이는 특징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엘리트가 아니어도 편하게 즐기는 축구
잉글랜드와 독일에선 한 지역 내에서도 주말 리그가 여러 곳에서 운영되고 많은 유소년들이 축구를 즐기고 있다. 바로 풀뿌리축구(Grassroots)다. 각 나라 축구 인구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길거리를 조금만 걸어 다니면 큰 축구장에서 지역에 있는 많은 유소년들이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선 모든 어린이가 팀에 들어가서 리그와 대회를 뛰고 팀 스포츠 속 협력을 경험하며 축구를 즐길 수 있었다. 소위 동네 축구였지만 이들은 굉장히 진지했다. 잉글랜드의 경우 지역 축구협회가 리그와 대회 운영을 체계적으로 맡고 있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에 등록된 심판이 경기를 주관하고 각 팀마다 지도자가 있으며 연령대에 따라 7인제, 9인제 등 세세하게 나눠져 운영되고 있었다. 이 안에는 승강 시스템도 존재한다.
큰 푸드트럭이 맞이한 축구장 입구에는 구장 별 일정표와 규칙이 붙어 있었고 경기장 안 풀뿌리축구 현장은 굉장히 뜨거웠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격려했으며 가족 모두가 나와 축구장에서 즐기는 분위기였다. 자연스레 축구와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고 축구라는 스포츠에 진입 장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가족이 경기장으로 나와 아이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동네 축구 경기에도 정식 심판이 존재했고 경쟁적인 분위기가 아닌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다. 선수들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플레이를 했고 지도자와 학부모들도 선수들에게 용기를 끊임없이 북돋아줬다.
이 곳에 있는 학부모들은 모두 자녀 교육 방식의 하나로 축구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프로 선수의 꿈을 가질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팀 스포츠를 하면서 사회에서 쓰일 다양한 걸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컬스앤애스턴 U9팀의 학부모 A씨는 "축구를 통해 평생 지속될 수 있는 우정을 쌓고 있고,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을 즐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축구를 하며 친구들과 형성한 유대감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편하게 자기 수준에 맞춰 축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부러운 대목이었다. 한국에서 축구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기 어렵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려면 높은 비용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 하기에 취미로 즐기기 어렵다. 이곳에선 유소년들이 축구를 즐거운 것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모두가 돕고 있었고 어릴 때부터 갖춰진 축구에 대한 좋은 경험이 탄탄한 축구 발전의 기초가 되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저변확대의 중심 '자원봉사자'와 '적은 비용'
풀뿌리축구의 중심에는 자원봉사자가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팀의 지도자 대부분은 자원봉사자였다. 이들이 나선 이유는 축구를 좋아하는 열정과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채우고자 하는 책임감에서 비롯됐다. 누구가는 자발적으로 나서 코치를 해야 축구를 즐기고 싶은 아이들이 경기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노스앤드 U8팀의 학부모 B씨는 "팀의 코치에게 너무 감사하다. 자원봉사자로 이 일을 하면서 보수를 받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업 외에 훈련 세션을 계획하는 데 남는 시간을 다 투자해주신다. 아이들의 재능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게 돕는 점도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트렛포드 패독 U12팀의 학부모 C씨는 자녀가 뛰는 팀의 코치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 풀뿌리축구 환경에선 부모가 자녀 팀의 연령대를 맡아 코치를 자원하는 일이 꽤 흔하다. 보수를 받지 않는 데다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팀의 코치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흔했다. 선수 출신의 학부모가 중학생 팀의 코치를 맡고 있었고 한 유소년 클럽의 감독은 같은 클럽의 다른 연령대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선수가 자원봉사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ESV 뮌헨 U12 감독 벤스키는 "선수가 더 낮은 연령의 코치를 맞는 일은 흔하다. 실제로 축구를 할 때 도움이 되기에 좋은 기회가 된다"고 이야기했다.
축구를 하기 위한 낮은 진입장벽도 저변확대를 이끌었다. 두 나라 모두 축구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굉장히 적다. 잉글랜드의 경우 팀 유니폼 비용과 클럽비를 포함해 한 달에 20~50파운드(약 3~9만원) 정도 비용이 대부분이었고 독일도 한 해에 약 200~300유로(약 30~45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3~4만원 꼴이다. 이런 비용이 가능했던 주된 이유가 앞서 말한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다.
모든 요소가 경기장 위 선수에게 집중
잉글랜드의 풀뿌리축구 현장에선 독특한 규칙을 몇 가지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선수 보호 규정이 독특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헤딩 경합을 하면 간접 프리킥이 주어진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머리 부상 관련 규정이 강해지고 있는데 동네 축구에서도 경향에 맞게 규칙을 만든 셈이다. 현장에 가면 경기 중 높게 뜬 공을 잡기 위해 여러 명이 발을 휘젓고 있는 귀여운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드로잉 파울이 없다. 그래서 공이 터치라인을 나가면 선수들은 제자리에 뛰면서 공을 던지거나, 멀리서 달려오면서 한 발만 지면에 닿은 채로 던지기도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의적인 던지기 공격을 볼 수 있다. 이는 아이들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축구를 편히 즐길 수 있게 배려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그 밖에도 연령에 따라 5인제, 7인제, 9인제로 경기를 진행해 아이들이 더 많은 볼터치를 하고 과감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고 팀 격차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진표를 조정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추운 겨울에도 공을 찰 수 있게 동네 별 실내 풋살 리그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집 앞 동네 공원에서 뛰는 유소년 축구인을 위해 이뤄지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