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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Jan 10. 2019

아버지의 누런색 월급봉투

아버지의 월급날에 대한 추억

나의 고향은 시멘트 회사가 즐비한 강원도쯤 어딘가의 소도시이다. 먼지나는 시멘트 회사가 먹여살렸던 동네.

학창시절, 교실의 40여 명 아이들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의 아버지들은 시멘트 회사에 근무하셨다. 어쩌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교실 내에서 편을 나눠야 하는 경우 아버지의 회사 이름을 따서 편을 가르기도 했으니까. '쌍용팀' '현대팀' '성신팀' 등등...

그래서 우리는 다들 살림살이도, 사는 방식도 비슷했다. 시멘트 공장은 1년 365일 돌아갔다. 3교대를 하는 아버지들은 종종 야간근무를 하셔야 했다. 그 덕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조무래기들은 종종 저녁에 아버지가 야간근무하시는 친구의 집에 모여 밤새 떠들곤 했다.


tvN '응답하라 1988중'


지금은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무미건조하게 입금이 되고, 그 마저도 숫자가 찍히자마자 서로 앞다투어 내 월급을 가져간다. 나의 한 달의 수고스러움에 스스로 토닥여 줄 찰나의 시간도 배려해 주지 않는다. 월급은 들어왔지만 잔액은 늘 비슷하다. 하지만 그 옛날 아버지의 월급은 달랐다. 아버지의 월급날은 온 가족에게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저녁 먹어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놀던 아이들도 그날만큼은 모두들 집에 일찌감치 들어갔다.

아버지의 월급은 두꺼운 누런 봉투에 들어 있었다. 알 수 없는 항목들이 칸마다 적혀 있었고 그 칸마다 각각 금액이 적혀있던 그 봉투는 성스럽기까지 했다. 두둑한 그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도 천 원짜리도 그리고 십원짜리 동전도 들어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직장인 월급이 매달 바뀌어야 얼마나 바뀌겠냐만은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 월급을 세고 또 세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세종대왕님의 얼굴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까지 하셨더랬다.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은 그 옆에서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월급이 얼만지는 아예 관심이 없다. 우리는 어머니의 옆에 앉아 그저 지난달보다 단돈 천 원이라도 월급봉투에 돈이 더 들어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래야 ‘기분이다!’하며 우리에게 동전 몇 개라도 더 쥐어주실 테니 말이다.


아버지, 아니 우리 동네 아버지들의 월급봉투는 다만 돈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돈육권’이라고 보라색 도장으로 큼지막하게 찍혀 있는 명함 크기보다 조금 더 큼직한 누런색 종이가 한 장씩 더 들어있었다. 그 돈육권은 자연스럽게 나의 것이었기에 도장이 조금이라도 삐뚤게 찍히거나 보라색 잉크가 선명하지 않으면 괜스레 서운하기까지 했던 그런 종이가 있었다.


또한, 월급날은 각 가정의 즐거움만도 아니었다. 아버지들의 월급날에 가장 바쁘고 분주한 곳은 바로 정육점이었다. 정육점 앞마당은 온몸이 깨끗하게 분해된 소와 돼지들이 치렁치렁 걸린다. 정육점 아저씨의 입 역시도 귀에 걸린다. 그렇다. 돈육권(豚肉券)은 고기 교환권이다. 시멘트 회사에서 온갖 돌 먼지를 먹어가며 일하는 근로자들의 목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떼어내라고 주는 일종의 복지 차원인 셈이다. 매월 15일 어슴프레한 저녁이 되면 동네 꼬마들은 돈육권 도장이 찍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쫄래쫄래 정육점으로 모여든다. 얼마 후 온 동네는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늦은 저녁시간의 소박한 삼겹살 파티는 온 동네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돌이켜보면 돈 만원도 안 하는 삼겹살 한근이지만 나는 그 삼겹살이 고마웠다. 맛있었다기보다는 행복했다.


나는 아직도 대형마트 정육코너 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돈육권이 생각난다. 삐뚤하고 구깃했던 누런색 종이. 한 달을 고생하시고 힘겹게 받은 월급봉투와 돈육권을 어머니께 내어주시던 아버지. 그리고 그 돈육권을 나에게 건네주며 심부름을 보내셨던 어머니.
돈육권을 받고 신나서 폴짝폴짝 집을 뛰쳐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어떠한 표정을 짓고 계셨을까?



아버지 월급날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월급날만 되면 당연하다듯이 아들의 작은 손을 꼬옥 잡고 정육점을 간다. 그리고 삼겹살 한 근을 산다. 비록 예전처럼 누런 종이에 포장해주는 손맛 담긴 삼겹살이 아니기에 나의 그때 느낌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매번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면서도, 후련하고 뿌듯하다.


월급날의 의미와 아버지의 고단함을 아직은 알리 없는 천진한 아들이 신이 난 듯 삼겹살 봉투를 휘휘 돌리며 앞장서서 집으로 뛰어간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낸다. 우리 부모님의 표정이 이러하셨겠지? 이 나이가 되어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번 한 달도 무탈하게 회사생활을 해 낸 나에게

잘 버텼다고, 기특하고 수고했다고..

다만,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기억하는 돈육권의 모습을 재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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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같은 소리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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