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은 어벤져스급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입사 첫날을 회상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조직 앞에 내팽개쳐진 첫날, 그날 나는 인생 최대의 초라함을 느꼈다. 나의 것이라고 주어진 책상과 의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니터, 몇 개의 필기구. 내 것이 아니었더라도 익숙한 물건들이었지만 나의 그것들은 너무나도 생경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숨을 쉬어도 되는 건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도 되는 건지까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 갑작스럽게 앉게 된 것은 아니었다. 입사 후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은 물론 인사팀에서 주관한 OJT(on-the-job training)까지 무려 한 달이나 사전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훈련상황만 경험한 나에게 실제 전쟁터가 주는 압박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OO 씨, 미안해요 제가 좀 바빠서, 이따가 업무 알려줄게요, 그리고 전화 오면 대신 좀 받아줘요”
내 사수처럼 보이는 그녀의 첫마디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이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그 미션을 잘 해내고 싶었다. 전화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름의 시나리오도 머릿속에 그렸고, 타 직원에게 전화를 연결하는 방법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려가며까지 연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린 전화벨, 나는 쏜살같이 수화기는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막상 닥친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졌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 거리는 나에게 수화기 넘어 상대방은 다른 사람을 바꾸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 표정을 보고 전화를 홱 낚아챈 선배는 ‘네 상무님’이라는 말과 함께 아주 능수능란하게 통화를 마쳤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녀는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OO 씨는 어떻게 전화받는지도 모르면서 마음대로 전화를 받아요?’ 이후의 시간은 1초가 1분같이 흘렀고, 그랬던 나는 어쩌다 보니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다고 그 이후의 직장살이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직장은 늘 예측을 벗어났다. 알아서 일을 하면 왜 알아서 하냐는 꾸중을 들었다. 배우는 자세로 일을 하면 꼭 일을 시켜야만 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몰라서 물어보면 아직도 그걸 물어보냐는 호통을 들었고, 그렇다고 안 물어보고 일을 처리하니 건방지다는 훈계를 들었다. ‘예측불가’. 그것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였다.
그간의 내 삶의 근간은 예측이었다. 물론 지금의 직장도 예측을 통해 들어왔다. 내 전공과 경력을 좋아할 것이라는 예측과 최종면접 질문 예측이 적중했기에 입사가 가능했다. 삶은 ‘상식’과 ‘정보’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작 10년간의 직장살이 알고리즘은 '상식'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예측은 무의미했다. 직장에서의 나는 항상 예민한 상태를 유지했다. 일을 끝냈더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은 기분에 늘 찜찜했다. 불안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 시절 모시던 부장님은 항상 태평했다.
직장살이 20년이 훌쩍 넘은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결과는 뚜껑 열어보고, 결재 나 봐야 아는 거야”
이제야 그 말과 그의 심정이 문득문득 이해가 된다.
빼박 야근각이기에 툴툴거리는 나에게 동료는 그냥 퇴근하라고 종용한다. 야근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면서 무표정하게 이어가는 그의 말이 명작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지만 나는 믿는 사람이 있거든, 그는 바로 오늘 미룬 일을 어떻게든 해낼 내일의 나야. 일하기 싫으면 내일의 너한테 일단 미뤄”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의 말은 너무도 적절했다. 야근을 당장 하든 내일 하든 언제가 됐든 나의 일은 분명 내가 처리할 테니까.
내일의 나에게 일을 미루고 휘적휘적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한치도 예측되지 않는 직장 속으로 매일 아침 뛰어드는 내 모습이 새삼 엄청나게 느껴졌다.
마치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불구덩 속으로 뛰어드는 어벤져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