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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Jan 17. 2019

그래도.. 내일 봅시다.

식구(食口) :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

우리 팀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서원은 20여 명이지만 또 그 안에 팀이 있다. 인턴사원까지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된 작은 규모의 팀이다. 팀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마치 식구처럼 꾸려져 있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업무를 한다. 그저 팀을 만들어 둔 이유는 관리의 편리함 정도일 뿐. 팀이기에 시너지가 발생하는 그런 구조도 아니다. 팀장도 자기 프로젝트를 하고, 나도 내 프로젝트를 후배들도 마찬가지이다. 공통업무라면 그저 인턴이 우리 모두의 일을 조금씩 도와주는 정도.

혹자들은 그런 우리 팀을 보고 ‘개인사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은 자체 휴가이다. 오전 내내 클라이언트에게 시달린 나는 오후에 자체 휴가를 선포했다. 물론 스스로에게 마음으로만 선포한 거지만.. 누군가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해 주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퍼붓고 싶은 그런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필수적인 일만 후다닥 끝내 놓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팀원들이 보였다. 매일 사무실 책상 가림막 속에 숨어 일만 해서 인지 문득 바라본 그들이 낯설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1. 팀장 (45세, 남) : 게으르고 짠돌이임

그는 오늘도 웹서핑 삼매경에 빠져있는 듯했다. 분명 멍한 눈빛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으니까. 웹툰을 보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자리를 비운다. 분명 옥상에 담배 피우러 갔겠지.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와 책상 위를 한참이나 번갈아 본다. 뭐가 되었건 딴짓을 하는 건 확실했다.


2. 선배 (40세, 여) : 까칠하고 까칠함

그녀는 오늘도 전화로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아니 누가 그래요? 진짜 별꼴 다 보겠네, 누가 그래요 누가?” 로 시작한 그녀는 치! 참나! 허! 정말! 등과 같은 탄식조의 말만 되풀이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분명 오늘도 다른 부서 사람이나 클라이언트와 한판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3. 후배 1 (33세, 남) : 회사에서 주로 자기 계발을 함 

S대출신, 입사 5년 차. 그는 분명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분명하다. 석사학위 졸업을 앞둔 그는 요즘 논문 마무리에 정신이 없어 보인다. 매일같이 영어로 된 원서를 모니터 한 귀퉁이로 몰래 읽고 있다. 이놈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건지 자기 공부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예리한 눈으로 보았을 때 그는 분명 조만간에 어디론가 옮길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도 영어로 된 무언가를 읽고 있다. 머리를 긁적이는 거 보니 뭔가 잘 안 풀리나 보다.


4. 인턴 (25세, 여) : 틈만 나면 자소서를 씀 

팀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소위 말해 요즘 것이다. 일단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무슨 말을 해도 일을 시켜도 기억은 제대로 못하면서 말대꾸는 잘한다. 어렵다, 시간이 없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가끔 지나다니면서 보는 그녀의 모니터에는 늘 자소서가 띄워져 있다. 지금도 표정이 심각한 것을 보니 자소서를 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5.  후배 2 (31세, 남) : 캐릭터 없음, 곰처럼 미련함



"자자!! 잠시 회의 좀 합시다!!"

     

오또회(오늘 또 회의)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팀장이 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때마침 대구로 출장 갔던 후배 2가 들어온다.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은 뭐지? 항상 무음 상태로 해 두는 단톡방을 들여다보았다. 단톡방에는 후배 2가 ‘5분 뒤 사무실 들어갑니다. 잠시 팀 회의.. 부탁드려도 될까요?’라는 메시지를 싸질러 놨다. 이게 미쳤나...


팀원들은 모두 줄줄이 회의실로 들어간다. 후배 2는 자신의 자리에도 들르지 않고 출장 다녀온 상태 그대로 회의실로 들어온다. 그는 큰 가방에서 작은 빵 봉지를 꺼낸다. 대구지역의 유명한 소보로 빵이다. 곰처럼 미련해 넉살이라고는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후배 2'가 어울리지도 않게 코끝을 찡긋거리며 말한다.


이게 그렇게 유명하다면서요?? 제가 따뜻하게 드시게 하려고 급하게 회의 요청드렸어요”



서로 데면데면하기만 한 팀원들 모두가 함께 모인 자리에 오래간만에 작은 따스함이 깃든다. 소보로 빵을 먹으며 서로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던 중에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흠흠.. 이번 주까지 해야 하는 사내 필수교육 있잖아? 그거 시험도 있는 거 알아? 정답지 내가 구했어, 이따 공유해줄 테니까 다른 팀에는 말하지 말라구 허허”


팀장은 오전 내내 입사 동기인 교육팀장을 닦달해 정답을 받아냈다고 했다. 그리고 오전 내내 실제 문제를 풀면서 답을 비교해 봤더니 정말 답이 맞단다. 그리고 심지어 나는 교육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까칠한 '선배'가 이어 말한다.


“아까 영업 3팀에서 연락 와서 뭐라는 줄 알아? 지난주 대회의장 우리가 사용하고 정리 안되어 있었다고 막 우리 팀 욕하잖아. 그거 우리 팀이 쓴 거 맞지?? 근데 내가 딱 잡아뗐어. 우리 절대 아니라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그녀가 딱 잡아뗐다면 분명 완벽한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녀가 앞뒤 없이 잡아뗐을 리가 없다. 그 회의장을 사용한 나와 후배 2를 보며 그녀가 싱긋 웃어 보였다.

소보로처럼 달콤한 말이 오갔던, 어색했지만 따뜻했던 시간은 그렇게 아주 짧게  끝이 났다. 미련 곰탱이 후배가 융통성 없이 딱 6개만 사 왔기에 우리 팀원들만 숨어서 먹어야 했지만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맛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체인점이 있어 종종 사 먹었던 빵인데도...


다시 평소처럼 자리로 돌아갔다. 서로의 사이에는 여전히 칸막이가 있다. 그때 슬그머니 '후배 1'이 다가온다.


“선배, 저번에 말한 자료예요, 이거 찾느라 저 3일 고생했어요. 담에 밥 사줘요”


지난주 후배 1과 함께 외근 가는 길에 슬쩍 지나가는 말로 했던 별로 중요하진 않은 자료이다. 내가 자료를 찾아달라고 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미 필요가 없어진 자료이지만 그의 수고로움이 자료 겉면에서부터 풍겼기에 감사했고 미안했다.


건조하고 적막한 늦은 오후 시간이 계속 되던 중 갑작스럽게 이번에는 '인턴'이 나에게 1분만 시간을 내어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감히 메시지로 나를 오고 가라고 하다니. 툴툴거리며 나는 그녀와 회의실에 마주했다.


“지난번 점심때 과장님이 말씀해 주신 취업 관련 팁이 기억이 나서요... 제가 자소서를 썼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봐주실 수 있으세요?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언제 취업 관련 이야기를 했더라?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여튼 개인사가 모두 드러나는 자소서를 남에게 보여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도 자소서는 부끄러워서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그녀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최선을 다해서 첨삭해 주겠다고 말했다.



아까 잠시 따뜻했던 회의실 분위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무실은 평소처럼 건조하다. 그리고 익숙하다.

각자 자신의 모니터만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다. 사무실은 키보드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퇴근시간이다. 하나둘씩 사무실을 나선다. 무심하게 퇴근하는 모습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짧은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다들.. 내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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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같은 소리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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