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의 과도기
지인의 부탁으로 일주일간의 파트타임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얼마 전 찢어지고 해진 여름용 바지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파트타임 일을 끝내고 나의 파트타임 일을 위해 일터 근처로 향하던 중 남포동 국제시장을 지나가며 바지 하나 살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남포동 국제시장은 부산의 젊은이들에게 보세의류 거리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나 또한 종종 찾는 장소이기도 했다. 옷을 구매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연인과 이별한 후 옷을 구매한 기억이 없다. 그저 집에서 입을 잠옷류의 옷들만 구매했던 터였다. 오래전 개성 있는 옷과 패션에 대해 조그맣게나마 눈을 뜨게 해 준 옷 가게를 다시 찾았다. 몇 년 만의 방문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연인을 만나기 전 그리고 만나는 동안에도 몇 벌의 옷을 구매했지만 당시 여자 친구는 상당히 내색하지 않고 '걸벵이'라는 표현을 쓰며 다시는 그곳에 발걸음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여자 친구는 슬랙스에 셔츠. 겨울철이면 니트를 입을 것을 강요했기에 옷장엔 셔츠와 니트로 가득 찼다. 하지만 셔츠는 지금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셔츠 가슴팍의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신용카드를 넣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단발의 머리카락을 하고 자신 있게 개성 있는 옷을 고르는 나는 이 가게의 철학을 만끽하는 손님이었다. 가게의 직원일까. 사장일까.(편의상 사장으로 칭하겠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실례를 무릅쓰고 과거의 연인이 이 가게를 '걸벵이'라고 표현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사장은 가볍게 웃으며 "우리 옷이 세긴 세죠."라고 말했다. 몇 차례 이용했다고 해서 서로에게 개인의 직업을 묻는 것은 쉽지 않다. 대화를 주고받음에 스스럼없었기에 사장이 조심스럽게 나의 직업을 물어왔다.
"대학생(마지막 학기의 대학생)이긴 한데 창업을 했어요."
"어떤 종류의 창업이에요?"
"음료 브랜드를 만들 거예요. 마시는 경험에 즐거움을 선사할 거예요."
"오 멋지다~!."
"아직은 개발단계예요. 상호는 있지만 브랜드 네임도 정하지 못했어요."
"어떤 종류로 개발 중이에요?"
"지금은 ●●●● ○○○○이에요."
"●●●●? 와 내 스타일이네. 저는 ●●●● 이런 거만 마셔요. 혹시 제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브랜드 네임 정할 때 팁을 하나 줄까요?"
"정말 감사하죠!."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
"감사해요. 정말."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일터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근무시간 전까지 카페에 앉아 브랜드 네임에 대해 고민하고 독서하며 시간을 보냈다. 문득 자사 쇼핑몰을 함께 운영하는 사실이 떠올라 옷가게 쇼핑몰에 들어가 'About us'를 클릭했다. 그들의 브랜드는 어떤 철학을 담고 있을까. 역시나 그들과의 인연은 운명적이었을까. 그들의 여러 가지 철학은 결국 '자기다움'으로 합일되었다. 이별한 지 1년이 다가오는 무렵에 내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유에서였을까. 아직까지 슬랙스 바지에 셔츠와 니트 그리고 코트로 일관되었던 패션이 '나다움'의 패션으로 향하는 과도기를 겪는 것 같았다. 나는 카페에 앉아 오늘을 '패션 과도기의 시작'으로 정의했다. 옷 한 벌을 구매한 하루겠지만 나의 변화를 발견한 하루이기도 했다. 유난히 더웠던 하루지만 팔랑팔랑 살을 스치는 바지는 바람을 거부하지 않았다. 문득 방파제 앞에 앉아 이 글의 소재에 대해 노트에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에 열심히 잉크를 날리면서 왠지 운동화를 벗고 싶었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따끈하게 데워진 땅에 두 발을 얹어 놓았다. 내리쬐는 햇볕이 등을 녹일 것처럼 강렬했지만 이 느낌마저 좋은 하루였다. 그렇게 10여분이 흘렀을까. 이제는 출근할 시간이다. 생산성 있는 나날을 만들기 위해 프로세스를 구축했지만 이번 주는 계획되지 않은 파트타임 덕분에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르지 못했지만 프로세스에 맞췄다면 오늘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특별했던 오늘의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글의 소재로 삼았다.
2021.5.31 바지 하나 구매.
- '나'의 방향으로 한 걸음.
- 송도 방파제 등대 앞에서 신발을 벗고 기쁨을 만끽하다.
- 행복함.
나는 파트타이머이자며 창업자이고 인도 여행자이다. 인도 여행자라고 칭하긴 짧은 30일이었지만 나는 인도 여행자가 맞다. 인도를 사랑하고 인도에서 얻은 지혜(누군가에겐 개똥철학)와 변화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를 인도 여행자라고 칭한다. 장기 여행자들에게는 고작 30일의 여행일 테지만 그래도 나는 인도 여행자!. 언젠가 인도를 다시 누비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인위적인 것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들 속에 살고 있다. 신발을 신고 옷을 입고 현대식 화장실을 이용한다. 언제부터 화장실이 있었고 신발이 있었을까. 현대문명의 이기들을 만끽하면서도 인위적인 것들을 싫어한다. 그것이 나다. 음식을 먹을 때면 첫 한입은 소스를 찍어먹지 않는다. 돼지국밥의 경우도 먼저 양념을 넣기 전 충분히 음식 그 자체의 맛을 느끼려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많은 파트타이머의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짧지만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한 회사에서 보냈다. 냉동참치의 껍질을 벗겨내고 참치의 뼈들을 추려내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쉽게 기술을 배워 냉동참치를 톱으로 가르기도 했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진이 빠지도록 일을 해왔다. 이후 몇 차례 다른 일을 해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노동에 대한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돈을 받으면 프로가 돼야 한다." '프로'는 돈을 받고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적합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나의 회사생활은 '최선을 다했던 시절'로 표현할 수 있다. 나는 프로였다. 그렇기에 공장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술자리와 같은 혜택을 받아왔다. 언젠가 퇴사를 결정하자 경리부 과장과 동석한 자리에서 가벼운 압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거부했다. '나의 일'을 해보면 어떨까. 정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각오는 되어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창업이 점점 실체를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피고용인의 위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있을까. 해고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고용됨과 동시에 해고의 가능성은 잠재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고용인들로부터 받는 언어적 폭력들.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나의 어머니를 보며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창업의 시작은 '돈'이었다. 돈이 있기에 그들은 그런 행위에 무던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멋지고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사업을 구상하며 좋은 인연들을 만난 덕분이었다. 동시에 돈에 대한 집착은 사라졌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보자. 팔리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나의 철학을 담은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물론 높은 판매량을 바라지만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는 알 수 없기에 포기하지 않으련다. 앞으로 나의 직업은 연쇄 창업가이다.